웹진 카페人  
카페의 서재
[문학산책] 재미? 비결은 이 안에!

모티브, 이야기 속 진짜 이야기

문학산책1.JPG

우리 고전 소설에는 단순히 흥미와 재미를 넘어 삶의 근원적인 비밀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많다. 얼핏 생각하면 케케묵은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삶의 진실을 말하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인물의 설정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 현실적 재미가 덜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인물의 설정이나 다채로운 성격을 표현하는 현대 소설과는 달리 소설적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치밀한 문장이나 구성으로 꽉 채워진 현대 소설과는 완성도나 이야기의 밀도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의 뿌리가 고전 소설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이 땅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접근일 수 있다. 어릴 적 할머니나 어머니에게서 입으로 전해 듣던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사실은 이야기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공동체가 기억하는 이야기 안에는 언제나 ‘우리’가 주체였다. 만약에 어린 아이나 조카가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챈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북유럽에 전승되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구연하다가 아예 판타지 소설로 만들어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만든 사람도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북유럽의 옛이야기와 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개인이 창작한 고전소설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아는 옛이야기는 글쓴이가 알려져 있지 않은 작자 미상의 이야기들이 더 많다.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말에는 모두가 작가이고, 모두가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을 밝히면 보편적인 이야기의 뼈대를 알 수 있고, 이 뼈대는 현대적 소설의 창조적 영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어린 시절의 동화책이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분석해보면서 우리 이야기가 들려주는 서사의 힘을 확인해 본다.

재미와 기억의 요소, 갈등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읽다가 흠뻑 빠지는 경우는 주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갈등이 있다. 원래 갈등이라는 말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데서 온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 따위로 불화를 겪는 일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행복하고 충족된 이야기는 사람들이 이야기로 옮기거나 꾸미지 않는다. 그 안에는 결핍된 요소를 이겨내고 충만한 세계로 나가는 삶의 진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욕망의 반영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우리 모두 아는 이야기 중에 하나를 예를 들어 보자.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심술궂은 새엄마와 못되게 구는 언니들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행복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신데렐라가 훌륭한 청년과 결혼하는 이야기를 누가 기억하겠는가.

이야기가 재미를 갖추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적절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끼어들어야 한다. 흔히 갈등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의 단위를 모티브(motive)라고 부른다. 이야기의 단위가 된다고 해서 ‘화소(話素)’라고도 한다.

문학산책2.jpg
얼마나 매력적인 빌런(villain)이 나오는가에 따라 긴장도와 재미가 달라진다. 영화 <어벤져스> 포스터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어릴 때 엄마를 잃고 계모가 등장할 때 긴장감과 흥미가 유발된다. 주인공이 이런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흥미를 일으킨다. 이런 구조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얼개이다. 우리가 잘 아는 《콩쥐팥쥐전》에도 새엄마가 등장한다. 이처럼 어떤 이야기가 끼어듦으로써 서사가 흥미로워지고 이야기성이 풍부해지는 것이 모티프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새엄마와 같은 이야기 단위를 문학에서는 ‘계모 모티브’라고 한다.

비극적 결말의 문학적 성취는 제외하고, 행복한 결말을 좇아가는 이야기의 대다수가 이런 구도를 따른다. 심지어 선과 악의 대립이 분명한 영화에서도 얼마나 매력적인 악당, 즉 빌런(villain)이 나오는가에 따라 긴장도가 달라진다. 매력적이면서 강력한 악당이 출현한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는 모티브를 잘 활용한 경우이다. 새로운 모티프의 등장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셈이다.

비현실과 현실의 연결

용왕의 시녀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전에 사해용왕이 수정궁에 모여 잔치를 할 때, 용왕의 시녀가 유리종을 깨트렸기에 행여 죄를 얻을까 하여 감추었더니 용왕이 아시고 노하여 첩을 반하수에 내치시매 물가로 다니다가 어부에게 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 상서가 구해줘 살아났으니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어제 부왕이 궁에서 조회할 때 옥황상제 말씀을 듣사오니 ‘어린 여자아이가 천상에서 죄를 얻어 김 상서 집에 적강한 뒤로 도적의 칼 아래 놀라게 하고, 표진강에 빠져 죽을 액을 당하고, 갈대밭에서 화재를 만나고, 낙양 옥중에서 죽을 액을 지낸 후에야 태을을 만나게 하라.’ 하시고 물 지키는 관원을 명하여 ‘기다렸다가 죽이지는 말고 욕만 뵈어 보내라.’ 하시기에 제가 특별히 김 상서의 은덕을 갚고자 하여 자원하여 왔습니다. 이제 그대가 또 구하시니 저는 가겠습니다.”

인용한 부분은 고전 소설 《숙향전》의 한 장면이다. 이 소설은 작자 미상의 국문 소설로, 천상이라는 비현실계에서 옥황상제의 시중을 들던 신선과 선녀가 죄를 얻어 현실계로 내려와 고난을 겪다 다시 천상계로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각각 적강(謫降;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거나 사람으로 태어남)하면서 헤어졌다가, 이후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만나 가혹한 시련을 극복한 후 결국 천상에서의 인연을 실현한다.

이 작품은 숙향의 삶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영웅의 일대기 구조에 따라 여성의 수난을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여성 주인공 숙향이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나 어려서 고아가 되고, 구출자를 만나 양육되었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한 삶을 누리는 영웅 소설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영웅 소설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학문이나 무예에서 최고의 실력과 승부를 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성인 숙향이 숱한 고난을 이겨 내고, 자신의 사랑을 찾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천상계와 현실계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고 이어진다는 설정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기 힘든 현실의 고달픔을 해결하는 주체로 비현실계가 설정된다는 점에서 당대인들의 사고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선과 선녀의 적강 모티프가 이 소설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지상과 천상의 순환론적 사고가 깊이 배어있어 삶과 죽음의 세계관을 확장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읽힌다.

변신 모티브로 거듭난 박씨

상공이 신부를 데리고 길을 떠나, 날이 저물매 여관에 들어가, 신랑과 신부를 데리고 한 방에 들어가니, 신부 무릎깨를 벗고 앉을새, 그 용모를 보니 형용이 흉칙하여 보기가 염려로운지라. 얽기는 고석(古石) 같고, 붉은 중에, 입과 코가 한데 닿고, 눈은 달팽이 구멍 같고, 치불거지고, 입은 크기가 두 주먹을 넣어도 오히려 넉넉하며, 이마는 메뚜기 이마 같고, 머리털은 짧고 심히 부하니, 그 형용을 차마 보지 못하겠더라. 상공과 신랑이 한 번 보매, 다시 볼 수 없어 간담이 떨어지는 듯하고, 정신이 없어 두 눈이 어두운지라.

… <중략> …

이날 밤에 박씨가 목욕하고 뜰에 내려서 하늘을 향하여 축수(祝手)하고 방에 들어가 자더라. 이튿날 평명(平明)에 일어나 계화를 불러,

“내 간밤에 허물을 벗었으니, 대감께 여쭈어 옥함(玉函)을 짜 주옵소서 하라.”

할 제, 계화가 보니 추비한 아씨가 허물을 벗고, 옥 같은 얼굴이며 달 같은 태도, 사람을 놀래며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한지라. 계화가 도리어 정신을 진정하여, 보고 또다시 보니 그 아름답고 고운 태도는 옛날 서시(西施)와 양귀비(楊貴妃)라도 미치지 못하겠더라.

인용한 부분은 《박씨전》의 일부이다. 천하 박색인 박씨를 소개하는 부분에 이어 변신을 통해 천하 미색으로 거듭난 박씨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변신을 거쳐 남편에게 인정을 받는 박씨는 이후 소설의 여성 주인공으로서 주체적인 활약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역사 군담 소설로,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변신 모티브를 중심으로 우부현녀(愚夫賢女) 설화와 전쟁 이야기를 이중 구성의 형식으로 배치하여 흥미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이시백의 아내 박씨가 영웅적 기상과 재주로 청나라 왕과 적장을 농락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적인 구성을 가미한 역사 소설로,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적 사건과 전란의 패배감을 정신적으로나마 보상받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창작된 것이다. 특히 개인적인 고난을 극복해 낸 여성이 사회적 사건인 전쟁의 주요 해결자로 역할을 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대소설 속 여성 고난사

김 진사는 오천 냥 어음을 써 놓고, 또 오천 냥은 돈표를 써 놓았으니, 허 판서가 받아 문갑 서랍에 넣고 웃는 낯으로 김 진사를 쳐다본다.

“내일이면 과천 현감을 할 터이니, 이제는 김 과천이라고 하지. 김 과천, 허허!”

“황송합니다.” / “내일이면 할 터인데 무슨 관계가 있나. 그런데 아까 우리 집 심부름 하는 아이를 보고 무어라고 했나?” / “위인이 하도 얌전하기에 칭찬하였습니다.” / “글쎄, 칭찬한 줄은 아네. 그런데 사위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그러지 않았나?” / 허 판서는 음흉한 생각이 있어서 묻는 말이지만 김 진사가 어찌 그런 속을 알겠는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황공하여 대답한다.

“네, 그러했습니다. 소인에게 미천한 딸이 하나 있사온데, 과히 모자라지는 아니하므로 그에 걸맞은 사람으로 짝을 지어 주려고 열여섯이 되도록 시집을 못 보냈습니다. 댁 상노를 보니 그 모양이 비슷하기에 무심코 속으로 말한다는 것이 대감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허 판서가 이 말을 듣고 불같은 욕심이 일어나서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 “여보게 김 과천, 나는 그 상노 놈과 비교해서 어떤가?” “황송합니다.” / “황송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김 과천에게 청할 말이 있으니, 부담 없이 들을 텐가?”

“대감의 분부라면 죽더라도 따르겠사오니, 어찌 안 듣겠습니까.”

“다른 청이 아니라, 내가 자네 사위가 되면 어떻겠는가?”

_ 《채봉감별곡》 중

 
문학산책3.jpg

아버지의 탐욕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주인공 채봉의 고난은 흔히 ‘혼사장애담’으로 표현된다. 이 작품은 ‘채봉’이라는 한 여성이 출세욕에 눈이 먼 부모 때문에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사랑을 성취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특히 주인공 채봉이 주체적 의지에 따라 부모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그 사랑을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여성관과 봉건적 세계에 대한 도전 정신을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여성이 고난을 겪는 이야기는 우리 고전 소설에서 자주 발견된다. 대표적인 소설이 《춘향전》이다. 채봉의 경우는 아버지의 악행으로 인해 고난을 겪지만 채봉의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혼사에 있어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대부분의 모티프는 신분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채봉감별곡》은 남녀 간의 애정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애정 소설로, 사건의 상당 부분을 우연성에 의존한 여타 고전 소설과 달리 현실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개, 사실에 가까운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외에도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희생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서사의 뼈대가 되는 ‘인신공희(人身供犧) 모티브’가 있다. 잘 알고 있는 《심청전》 등이 이런 이야기 단위를 풍부한 서사로 확장한 대표적인 경우.

어떤 이야기가 개입되는지에 따라 갈등의 재미와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모티브는 서사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전통 이야기를 식상해하거나 멀리할 게 아니라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들을 알고 읽어보면 어떨까. 보다 흥미롭게 옛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꾼을 위한 비결이 그 속에 있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