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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인문학]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그때,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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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쓴 소설《순수 박물관》에 대한 글이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 출간 이후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을 시작하는 몇 줄의 문장에서 제시되는 정보만으로도 소설 《순수 박물관》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 ‘케말’은 아마도 아주 오래 전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몰랐고, 그로인한 잘못된 판단으로 그 후의 삶을 불행하게 보냈으리라.

또한 소설을 시작하는 몇 줄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케말이 경험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주인공이 경험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이전에 우리가 잠시 생각해보고 넘어가야할 단어가 있다.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말처럼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개념도 드물 것이다.

요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의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관념적인 추상성을 부정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복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행복이건, 구체적인 행복이건 만일 누군가 당신에게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 어떤 순간이었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쉽게 떠오르는 예시들은 이런 것들이리라.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았을 때, 인고의 시간 끝에 첫 직장을 갖게 되었을 때, 오랫동안 노력했던 사업이 성공했을 때 등등. 아마도 사람들은 이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이 말하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그의 행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 있었다. 바로 그러한 특별함 때문에 남은 인생 동안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 도입부에서 주인공 케말이 경험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간략하게 묘사했다. 그 때는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이었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의 한순간은, 범죄나 죄악, 형벌, 후회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세상이 중력과 시간의 규칙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더위와 사랑의 행위로 땀에 흠뻑 젖은 퓌순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천천히 그녀 안으로 들어간 후, 왼쪽 귀를 살짝 깨물었을 때, 귀에 걸린 귀걸이가 꽤 긴 순간 허공에서 멈췄다가 저절로 떨어진 것 같았다. (중략) 열린 발코니 창문으로 바다와 보리수나무 냄새가 나는 봄바람이 불어 들었고, 망사 커튼을 들어 올려 슬로모션으로 우리 등에 내려놓자 우리의 벗은 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2층에 있는 집의 뒤쪽 방 침대에는, 5월의 더위 속에서 축구를 하면서 흥분해 욕설을 하는 뒤뜰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이 서로에게 내뱉는 낯 뜨거운 말들이, 당시 우리가 하고 있던 행위 그대로임을 알아채고는 사랑을 나누다 한순간 멈추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본문처럼 소설의 주인공 케말이 경험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은 5월 어느 오후, ‘퓌순’이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여인과 두 사람만의 아지트인 ‘멜하메트’라는 이름의 아파트에서 은밀한 사랑을 나눌 때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는 이러하다.

그 무렵 케말은 다른 여인과의 약혼식을 한 달여 앞 둔 상황이었고, 케말보다 12살이나 어린 ‘퓌순’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어린 시절 이후 몇 년 만에 처음 우연히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첫 관계를 맺었으며, 그것이 여인의 첫 경험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남자의 약혼식이 거행되는 날까지 44일 동안 매일 사랑을 나누었으며, 소설에 묘사된 장면은 44일 동안에 걸친 두 사람의 정사 가운데 어느 날의 풍경인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케말은 불륜의 연인과의 비밀스러운 정사 가운데 어느 한 순간을 그의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이는 주인공이 경험한 것은 육체적 쾌락이지 행복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케말이 경험한 것은 육체적 쾌락의 절정의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그 순간을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쾌락이란 무엇인가? 기쁨과 즐거움이며, 흥분과 만족인 것이다. 모든 행복의 순간이 쾌락의 순간이기도 하며, 행복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 사회에서는 ‘쾌락’이라는 단어가 육체에만 국한되는 음울하고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지고지순하고 성스러운 의미에 포함시키기에 뭔가 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비록 주인공의 행복의 순간에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성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육체적 쾌락이 핵심적 요소이긴 하지만, 작가는 그것만으로 그 순간이 주인공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포르노와 에로스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포르노는 육체라는 물질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에로스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혼의 신비에까지 이를 만큼 크고 넓으며 자유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로스를 통해 그저 느끼고 깨달을 뿐이다.

또한 소설에서 묘사된 케말이 경험한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우리는 일상과 이상, 현실과 환상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의 경험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그의 경험이 일반적이고 흔히 있는 일이라면 결코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신비로운 현상들을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현상은 어떤 예지 혹은 계시와 함께 나타난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처음이자 긴 키스에서, 우리 사이에서 서서히 발전할 사랑의 의식과 세부적인 것들에서, 새로운 지식과 내게는 새로웠던 어떤 행복의 첫 실마리와 이 세상에서 아주 드물게 도달하는 천국의 문이 살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키스와 함께 우리 앞에 단지 육체적인 희열과 갈수록 증가하는 성적인 욕구의 문만이 아니라, 당시 경험하고 있던 봄날 오후의 밖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거대하고, 넓고, 커다란 ‘시간’도 열리는 것 같았다.

처음이자 긴 키스에서 주인공이 예감했던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과 그곳에 기다리고 있을 거대하고, 넓고, 커다란 ‘시간’의 세계는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무르익고 사랑이 더해갈 수록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은 실재하는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두 사람의 영혼과 무의식은 이미 새로운 우주로 이동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곳은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며 시간이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 케말은 그 순간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에 취한 채 존재하지 않는 어떤 나라에 다다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 드는 상상 속의 이 장소는 이상한 행성의 표면, 바위로 뒤덮인 한적하고 로맨틱한 섬, 달 표면에서 찍은 사진과 비슷했다. 기이하고 색다른 나라에 간 것 같았다고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퓌순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 차 있어 반쯤은 어두운 정원, 그리고 이 정원과 뒤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문, 그리고 해바라기가 바람에 일렁거리는 샛노란 언덕이 눈앞에 떠올랐다고 했다. 이 풍경은,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순간에,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순간에, 우리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 사이의 아찔한 친근감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은 서로의 눈 속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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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