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카페의 서재
[에로스 인문학] 권력과 에로스 에너지

복잡함과 단순함의 대결, 승자는 누구일까

소설《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1, 2회 루쉰문학상을 포함해 20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현재 중국 평단과 대중들에게 절대적인 호응과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가 옌롄커(閻連科)의 작품이다. 2005년 중국 광둥성의 격월간 문예지 〈화청〉에 소설 중 상당부분이 삭제된 채로 출간되었다. 그후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에 의해 3만부에 달하는 책이 전량 회수되기도 했다.

에로스인문학.jpg

1944년, 중국의 어느 목탄 탄광의 갱도가 붕괴되면서 중국공산당 전사인 장쓰더가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가난한 농촌가정에 태어나 어려서 고아가 된 장쓰더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투철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으로 마오쩌둥의 내위반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한 적도 있었다. 마오쩌둥은 장쓰더가 사망한 지 사흘 뒤에 가진 한 연설에서 “장쓰더 동지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도 중요하다. 지금 중국의 인민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연설의 제목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다.

이와 같은 마오쩌둥의 연설 이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한 마디는 혁명언어의 경전이며 무소불위의 금언이자 혁명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제목의 옌롄커의 소설에서 시종일관 관통하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금언은 혁명의 상징이 아닌 욕망의 발산기제로 작용한다.(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역자 후기 인용)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

소설의 내용은 중국혁명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오랜 시간 혁명정신으로 사회체제가 유지되고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러브스토리이다. 작가 옌롄커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대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영혼의 감옥은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의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영혼의 감옥은 비단 중국이라는 특정 공간과 중국혁명 직후라는 특정 시기만으로 한정지을 수 없다. 권력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나 항상 존재하여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 권력의 형태가 중국혁명 같은 이념적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반공(反共) 이데올로기처럼 국가의 통치이념이 될 수도 있고, 불교와 기독교 같은 특정 종교와 문화가 될 수도 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돈이 가장 큰 권력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우다왕은 시골출신으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평범한 젊은 남성이다. 우다왕은 가난한 시골생활에서 벗어나고자 군에 자원입대하여 출세와 성공을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 우다왕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소속부대 사단장의 사택에서 사단장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분대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사단장의 사택의 취사분대장 자리를 거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출세와 성공을 보장받았으므로 우다왕으로서는 다시없을 행운을 잡은 셈이었다.

사단장은 중국혁명 당시 전설적인 혁명전사였으며 그의 가족은 새로이 재혼을 한 젊은 아내 류롄뿐이었다. 사단 군병원의 간호사였던 류롄은 사단장과의 결혼 이후 사단장의 사택 안에서 사택의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고, 취사분대장의 가장 큰 업무 가운데 하나는 사단장의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환상적인 달콤함과 현실적인 두려움 사이에서

이야기의 배경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흔하디흔한 통속적인 불륜 이야기를 예감할 수 있다. 실제로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우리가 예상한 불륜의 러브스토리로 전개되어간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전부라면 이 소설이 당국의 출간 금지 처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전 세계적으로 이렇듯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으리라. 보다 구체적인 소설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은 직접 소설을 읽으면서 각자 해소하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다루고 있는 에로스적인 요소들에 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소설에서 몇 차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복잡함과 단순함’이다. 사단장이 오랜 출장을 떠난 이후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의 노골적인 유혹을 받은 우다왕은 숙소로 돌아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우다왕의 오랜 고민과 사색의 종착지는 결국 달콤함과 두려움 사이의 선택이었다. 사랑, 성욕, 혁명, 도덕, 인성 등등의 관념적이며 이성적인 수많은 복잡한 사념들은 결국 달콤함과 두려움이라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 귀결된 것이다. 그후 소설의 스토리는 환상적인 달콤함과 현실적인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다왕의 모습으로 전개된다.

우다왕이 겪는 고민과 갈등은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의 러브스토리에서 거의 필수적으로 다루는 갈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그 후 얼마간의 달콤한 연애 끝에 주위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러브스토리에 재미나 흥미를 느낄 독자나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동적이고 흥미로운 러브스토리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금기’이다. 뿐만 아니라 금기가 강할수록 그러한 금기를 마주하고 뛰어 넘으려는 두 사람의 사랑 또한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러브스토리의 필수요소, ‘금기’

_DSC0005.JPG

러브스토리에서 등장하는 금기는 대부분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일상과 대립된다. 현실과 일상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논리와 가치이며 생활의 방식이자 터전이다. 즉 현실의 세상을 유지하고 우리가 의지하는 사회시스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에서 흥미롭게 빠져드는 러브스토리에 등장하는 금기는 주인공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장악한 사회시스템이 금지하는 것들이다.

우다왕이 마주한 중국혁명 직후 사회시스템의 경우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래서 우다왕이 사랑의 달콤함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가 속한 사회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파멸과 극단적으로는 개인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다왕이 현실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사랑과 대립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이 권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사회시스템이라는 권력 앞에서 우다왕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결국 우다왕도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드라마와 소설이 아닌 현실의 실제 삶에서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회적 권력이 존재하였듯이, 그러한 권력을 뛰어넘는 사랑 또한 항상 존재해 왔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내재된 에로스의 에너지 또한 무지막지한 사회적 권력 못지않게 강력하다는 걸 의미한다. 우다왕의 러브스토리가 전개되는 걸 보면 1차전에서는 사회시스템의 권력이 에로스 에너지를 이겼지만, 뒤이은 2차전에서는 둘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우다왕의 러브스토리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류롄의 유혹을 받은 이후 우다왕이 겪었던 수많은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들이 달콤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적인 단순함으로 정리되었듯이, 사회시스템의 권력과 에로스 에너지의 2차전에서도 똑같은 복잡함과 단순함이라는 구조로 대결하게 된다. 여기에서 복잡함은 우다왕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권력이며, 단순함은 우다왕의 마음속에 뜨겁게 끓어오르는 에로스의 에너지이다.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복잡함과 단순함의 대결에 관해서 매우 사색적이며 아름답게 표현되어있다.

… 사실 과거든 현재든 아니면 미래든, 수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단순함이 항상 복잡함을 지배하는 법이었다. 단순함은 언제나 황제였고 복잡함은 신하에 불과했다. 무수한 복잡한 일들이 그 표피를 벗겨내면 남는 것이라고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과 같은 너무나도 간단한 핵심뿐이었다. 우다왕이 사단장 사택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바로 이런 단순함이었다. 영웅이 되살아나 그의 운명을 구해준 것 같은 단순함이었다.

두려움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복잡함은 우리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처럼 매우 복잡하고 촘촘하게 짜인 사회시스템에 얽매여 있다. 복잡한 사회시스템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우리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시스템에서 해방되기보다는 거기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 두려워 더욱 복잡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더욱 복잡한 시스템에 더욱 깊숙하게 갇히게 된다.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 같은 우리 운명을 구해줄 영웅 중 하나가 바로 ‘에로스의 단순함’인 것이다.

글 | 최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