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카페의 서재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서

‘할렐루야(Hallelujah)’ _ 피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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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다보면 계속 마주치게 되는 친구들이 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처럼 느껴지고 결국 친구가 된다. 피엘이 그랬다. 그는 마르세이유에서 왔다고 했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어디서 왔냐는 내 질문에 “막세~” 라고 답했다. 막세~가 대체 어디냐. “파든(pardon)?”을 몇 번 하니 약간 지친 기색과 드디어 알았다는 느낌이 섞인 표정으로 “마르세유”라고 고쳐 말해준다. ‘그래, 첨부터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그제야 대화의 분위기가 활짝 피었다. 오늘 우리가 묵을 곳은 아주 허름한 공립 알베르게인데, 거의 최악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나 슬슬 초짜 순례자를 벗어나면서 어디가 머무르기 좋은 마을인지, 어떤 알베르게가 좋고 어디를 피해야 좋은지, 어디가 싸고 맛있는 음식점인지, 가게에서 어떤 브랜드의 비스킷과 견과류를 사야하는지 감을 잡게 되었다. 잘 익는 쌀로 밥을 짓고 볶음밥 도시락을 싸서 다닐 정도로 순례길에 잘 적응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런 알베르게가 있다니. ‘그래도 설마 공립 알베르게인데’ 하고 들어갔더니 어둠침침한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침대와 비좁은 테이블, 주방도 없어서 요리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근처 다른 알베르게에도 방이 없었다. 이 마을 전후 마을엔 아예 알베르게가 없었다. 대도시에 머무르는 게 싫다고 무리해서 멀리까지 걷다 만난 대참사였다. ‘까르데누엘라 리오피코’라는 발음하다 혀를 씹을 것만 같은 이름의 마을이었다. 공립 알베르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었다. ‘공립’은 스페인어로 ‘무니씨팔(municipal)’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피엘을 만난 것이다.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여자 친구와 함께였다. 한 눈에도 ‘산티아고 연인’ 같았다. 순례길에서 만나 동행하다 순례길을 마치면 헤어지는 관계. 피엘은 ‘스마트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프랑스인으로 마르세이유의 명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부티’가 났고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다. 말솜씨는 우아하면서도 세련됐다. 사상 최악의 알베르게와 어울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도 나만큼이나 숙소에 짜증이 난듯했다. 보름 사이에 낯가림이 많이 없어진 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노래 짓는 사람이고 산티아고 길에서 순례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관심이 있으며 자장가를 좋아해 사람들이 부르는 자장가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장가 이야기에 눈을 빛내더니 켈트족의 자장가를 하나 불러주겠다고 했다. 좋은 기회 같아서 서둘러 휴대폰의 녹음 스위치를 눌렀다. 허름한, 아니 최악의 알베르게에 굵고 멋진 목소리의 자장가가 퍼져나갔다. 켈트족의 자장가는 잠든 아이를 깨울 것 같았다. 아니면 무서워서 눈을 못 뜨거나. 물론 노래는 멋졌고 테이블 주변의 순례자들도 “부라보!”를 외쳤다. 본업이 가수 아니냐는 감탄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피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술이라도 한 잔 하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운 숙소야.”

다음날 아침은 안개가 자욱했다.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알베르게였다. 저만치 앞서 걷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피엘이었다. 어제 그 여자 친구는 어디 있느냐 물었더니 “어디서든 다시 만나겠지”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자 친구 아니었냐고 물었더니 어제 만난 사이란다. 이런 바람둥이! “각자 좋은 만큼 걷고, 만나게 되면 동행하고, 아니면 헤어져서 혼자 걷는 거지.” 피엘을 다시 만난 건 순례길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미사를 드렸던 온타나스 성당이었다. 온타나스 성당은 아주 평범한 시골 성당이다. 치장도 없고 흔한 성당 기물들도, 순례길에서 마주친 성당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세 스페인의 영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금박 장식도 없었다. 잘 가꾼 정원과 소중히 다루어진 듯한 의자들과 성물이 놓여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특별한 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특별하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순서가 진행될수록 내가 정말 무엇을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평범하게 인정받는 일. 애쓰거나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는 일. 너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 신자들을 다 축복하고 말미에 순례자들을 부른다.

열 명 남짓한 순례자가 한 줄로 주욱 섰다. 피엘이 있다. 눈을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신부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며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만 축복받고 있다는 걸 알겠다. 그리고 서로 포옹한다. 이 멀고 먼 스페인에서, 너에게 받아들여지는 걸 알겠다.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안아주고 있다는 걸 알겠다. 피엘과도 포옹한다. 눈을 바라보니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겠다. 그렇게 미사가 끝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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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 여기저기서 마주쳤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에서, 작은 알베르게 주방에서 그때마다 반갑게 서로 안아주었고 같이 밥을 먹고 얼마간 같이 걷다가 또 편안히 헤어져서 걸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신을 만났다는 걸로 유명한 ‘오 세브로이로’에서도 만났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스치며 물었다. “오, 피엘 오는 길에 신을 만났나?” “신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난 맥주는 만났지.” 오 세브레이로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길이고 그 언더이 끝나는 곳에 식당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마시는 맥주는 과연 세상 최고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한다. “너도 같이 마셨구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 ‘주’님을 영접한다는 우리말 농담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 영어로는 무리.

다음날 출발할 때도 길에서 만나 잠시 같이 걸었고, 그는 잠시 잔디밭에 앉겠다며 내게 먼저 가라고 했다. 길가의 얕은 담장을 넘어 넓은 풀밭 한 가운데 배낭을 내려놓은 피엘은 편안히 팔을 무릎에 두르고 앉았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저 먼 숲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다시 걸었다. 피엘의 모습이 멋졌다.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충실한 모습. 타인을 밀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욕구에 민감하고 충실하다. 한참 언덕을 오르다 돌아보니 파란 잔디밭 가운데 깨알만한 점으로 피엘이 거기 있었다. ‘너는 지금 무얼 느끼고 있길래 그렇게 미동도 없이 그 잔디밭에 앉아있니, 코엘료처럼 신을 만난 거니?.’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당겨서 그 장면을 찍었다. 언젠가는 이 몰래 찍은 사진을 전해줘야지 생각했다.

만날 때마다 나는 피엘의 얼굴이 계속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도시 명품 판매점에 일하는 세련된 차도남 피엘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쯤에서 일하는 농부처럼 순박한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함께 걷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요정 같은 빠리지앵 마리와 문학청년 분위기의 매튜, 매튜의 여자 친구 나딘 이렇게 넷이서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를 부르며 다녔다. 악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넷이 ‘할렐루야’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노래를 부르던 친구는 자살을 했다네, 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잠시 했지만 생각해보니 원작자는 장수한 레너드 코헨이니 어떠냐 싶었다. 그 노래를 부를 때 피엘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듯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피엘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대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툭하고 누가 튀어나와 “도리!” 하고 불러서 돌아보니 피엘이다. 카페 유리창 안쪽에서는 마리와 두 친구가 창에 붙어 손을 흔들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만날 줄 알았지. 그래, 산티아고에서 우리가 안 만날 리가 없지.”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마르세유에 놀러갈게.” “응, 꼭 들러줘.” “혹시 관심 있다면 내가 노래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물론 ‘할렐루야’ 같은 노래를 만드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래? 그러면 나는 돈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물건을 파는지 알려줄게.” 우리는 유쾌하게 웃고 헤어졌다.

마르세이유에 놀러간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 언젠가 그곳에 갈 일이 생긴다면 나는 피엘에게 메일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할렐루야가 흘러나오는 항구의 가게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사진에 찍힌 파아란 잔디밭의 한 점을 피엘에게 보여주면서 그때 무얼 느끼며 앉아 있었는지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모습을 많이 부러워했다는 것도 같이 전할 것이다.

 

* ‘할렐루야(Hallelujah)’는 레너드 코헨이 1984년에 발표한 노래다. 구약성서의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시적인 노랫말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는데 제프 버클리의 리메이크가 제일 유명하다. 원작자인 레너드 코헨도 제프 버클리의 리메이크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_ <카페의 서재> 제2권 《산티아고 길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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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안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