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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시네마] 과테말라 영화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진실’은 무엇일까

[커피 시네마] 과테말라 영화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됐던 피의 대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2013)은 국내에 소개됐을 당시 적지 않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인 희대의 학살극에서 행동대장을 맡았던 안와르 콩고라는 노인. 그의 증언처럼 상대가 정말 공산주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공산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만으로도 그는 정권의 비호 아래 수많은 이웃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해 고문하고 살인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와중에 정권유지에 위협이 될 만한 민주인사, 무고한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극악한 공산주의자로 몰려 살육의 희생양이 됐다.  

“죽일 사람이 너무 많이 대기하고 있어 나중엔 피가 나지 않게 가는 철사로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냈다”고 얘기하는 노인의 얼굴엔 아직도 지난날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이 가득하다. 피로 물들었던 당시의 살육 현장으로 안내하며,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인도네시아를 위해 헌신해온 애국자인지를 ‘자랑스럽게’ 증언한다.  

정말 끔찍한 건 그가 여전히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를 위해 움직이는 ‘판카실라’라는 준군사조직의 청년들은 지금도 안와르 콩고를 영웅처럼 떠받들며 장차 그처럼 국가를 위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안와르 콩고는 그때보다도 더 단단한 권력으로 철옹성을 쌓은 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 2019년 10월 78세로 망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이런 영화를 접할 때마다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권력이 대체 무엇이기에 같은 ‘인간’을 학살한 살육의 역사마저도 정당화되는 것일까.  

실제 살인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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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저스틴 웹스터 감독의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I Will Be Murdered)> 또한 과테말라의 부조리한 정치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300여 년 간 에스파냐(스페인)의 식민지에 속해 있었던 이 나라는 1821년 멕시코 독립에 자극을 받아 과테말라 총독령의 독립국으로 탈바꿈했고, 그 후 내전을 거쳐 1847년 과테말라 공화국(Republic of Guatemala)으로 완전히 독립했다. 

민주적 헌법과 의회가 있으나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 과테말라 역시 잦은 정변과 독재정치로 인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1871년 혁명으로 집권에 성공한 바리오스 정권은 친미정책으로 일관해 미국자본 도입에 활짝 길을 열어놓았고, 19세기 후반부터는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 커피 재배가 시작되며 영국인들이 다시 여기에 투자하게 됨으로써, 과테말라 경제는 완전히 외국인들에 의해 장악된다.
정치 역시 극심한 내홍을 겪어 1944년 쿠데타에 의해 정부가 전복된 지 8년 만에 군사 쿠데타가 다시 일어나 정권이 또 바뀌었다. 1966년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1970년부터 실질적으로 과테말라는 군부정권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영화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는 100건의 살인사건 중에서 98건이 미해결로 종결될 만큼 믿을 수 없게 열악한 과테말라의 치안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2009년, 과테말라에서 로드리고 로젠버그라는 변호사가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다 범인으로부터 다섯 발의 총알을 맞고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까지는 과테말라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얼마 뒤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로드리고가 생전에 직접 유튜브에 올려놓은 동영상이 발견된다.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나는 대통령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과테말라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영상 속 로드리고는 자신을 죽인 범인으로 현 대통령을 지목한다. 그보다 한 달 전 암살당한 대통령의 정적 칼릴 무사(Khalil Musa)와 그의 딸 마저리 무사(Marjorie Musa)의 변호인이었던 로드리고의 암살에 대통령이 연루돼 있을 거란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영상이 퍼지면서 과테말라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정적을 살해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에서 들불처럼 시위가 일어나고 보다 못한 국제사회에서도 UN조사단을 파견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정의와 신념을 위해 나아갔던 로드리고의 용기는 과연 부패한 국가권력에 저항하다 희생당한 영웅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그의 가족들과 동료들은 로드리고가 평소 얼마나 정의롭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인가를 거침없이 증언한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의 하야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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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그런데 조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진다. 전처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로드리고와 유부녀 마저리 무사와의 불륜관계, 그리고 그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히트맨(살인청부업자)과 로드리고의 석연찮은 연결고리….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껏 몰랐던 로드리고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과연 그는 정치 살인의 희생자인가. 국가의 폭력과 맞선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면 왜 그는 유튜브에 그런 괴이한 동영상을 남겨놓았던 것일까. 

영상 기록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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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로드리고의 사인에 대해 끝내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로드리고가 정적에게 암살당한 애인의 복수를 위해 벌인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즈음, 감독은 담담하게 영화의 끝을 맺어 버린다. 이 영화의 울림은 그래서 자극적인 소재나 다큐멘터리 특유의 도발적 질문보다 크게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는 섣불리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집착하는 건 다름 아닌 ‘영상이 가진 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개인의 삶까지도 영상으로 기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이 기록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이 꼭 진실인 것만은 아니다.

글 | 김정현

 

과테말라 커피산업 

5 과테말라_커피농장_via_pixabay.jpg


과테말라는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후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 본격적인 커피재배가 시작되었다. 지리적 특성이 다양한 덕분에 커피생산지에 따라 향미가 다르고 트레디션 아티틀란(Tradition Atitlan), 레인포레스트 코반(Rainforest Coban), 하이랜드 휴휴(Highland Huehue), 안티구아(Antigua) 등 많은 종류의 커피가 생산된다. 이 가운데 주로 화산지역에서 경작되어 고급 ‘스모크 커피(Smoke Coffee)’의 대명사로 불리는 안티구아가 가장 유명하다.

 

전형적인 아라비카 품종인 타이피카(Typica)와 버본(Bourbon)종을 주로 경작하는 과테말라는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커피가 수확되며 연간 커피생산량은 2020년 기준 22만5천 톤이다. 전체 인구의 1/4이 커피산업에 종사할 만큼 국가적인 산업이며 커피수출은 한해 수출품목의 30%를 차지한다.

주요 커피생산지는 스모크 커피로 유명한 안티구아 과테말라, 중부 산악지역의 코반 및 우에우에테낭고, 동부의 산타 로사(Santa Rosa), 서부의 산 마르코스(San Marco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