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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in 가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

1987년 11월 1일 새벽 3시가 지난 시간, 유재하는 술에 취한 친구 차에 동승해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남대교 북단을 지날 무렵 빗길에 미끄러진 차는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택시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재하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5살. 한국 대중음악계의 기대주가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스러지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의 죽음이 더 애석한 건 이때가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내놓은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허망한 죽음 때문인지 유재하(1962∼1987)는 지금도 가요팬들의 기억 속에 ‘요절한 천재’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본격적인 활동은 고사하고 가수 유재하가 남긴 음반은 데뷔앨범 하나뿐이다. 삼십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재하를 비운의 천재로 기억하게 되는 건 이처럼 충격적인 죽음과 그 짧은 시간 동안 국내 대중음악계에 남겨놓은 발자취가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 아닐까. ‘비운의 천재’ 유재하의 짧고도 안타까웠던 음악 인생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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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을 꿈꿨던 ‘요절 가수’

유재하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 양친 슬하의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어릴 적 부모를 따라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그의 성장기는 비교적 순탄했다.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던 1969년, 소년 유재하는 서울 은석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가족들의 회고에 의하면 유재하는 초등학생 때부터 기타를 쳤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또래에 비해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삼선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유재하는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겨듣던 학생이었다.

1981년 한양대학교 음대 작곡과에 입학한 유재하는 순수 음악을 전공했지만 어릴 적부터 접해온 대중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무렵 그는 벌써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기타, 키보드 등 클래식과 대중음악 악기를 완벽히 연주할 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가끔 그는 친하게 지내던 피아니스트 정원영 등과 집에서 합주를 하기도 했는데 당시 그가 즐겨 연주했던 곡은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래리 칼튼(Larry Carlton)이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ewey Davis)의 곡들이었다.  

유재하의 집은 또래 음악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이곳에서 유재하는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놀다 흥이 오르면 즉흥 연주나 합주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유재하는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에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켜 보려는 음악적 지향점을 갖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대한 집착, 과격함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잔잔한 음악 취향은 대개 대학시절 자주 듣던 영미권의 재즈, 클래식과 일본 음악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던 유재하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화성악이었다. 유재하는 훗날 데뷔 앨범에 실린 자작곡에서 독특한 코드 진행은 물론 메이저와 마이너코드가 섞인 변형 코드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재즈로부터 영향 받은 의도된 불협화음이었다. 그런가 하면 유재하는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 기존 세션포맷에 안주하지 않고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오보에 같은 클래식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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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한 유재하의 음악

대학에서 순수 음악을 전공하던 그가 왜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대학시절 그의 지인들이 전하는 얘기로 유재하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다.
“재하는 항상 자기 음악은 혼자 피아노 치고 노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듣고 즐기는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싶고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자기 이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대학가의 촉망받는 음악가로 기대를 모으던 유재하는 마침내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영입되며 본격적인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유재하의 대표곡으로 평가되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조용필에 의해 먼저 수록되게 된 것도 그가 당시 조용필과 함께 활동하던 인연 때문이었다. 평소 멤버들에게 곡을 써보도록 주문했던 조용필은 유재하의 음악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986년 조용필 밴드를 나온 유재하는 이번에는 김현식이 주도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원년 멤버로 참가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김현식과도 음악적 동반자이자 술친구로 매우 친하게 지냈다. 유재하는 김현식에게도 <그대 내 품에>, <가리워진 길> 등 2곡의 노래를 선물했다. 당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로 유재하와 함께 활동했던 가수 김종진은 그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미소년처럼 곱상한 외모와 우수어린 눈빛과는 달리 유재하는 사실 꽤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었다.  

“재하는 늘 우스갯소리로 자기 음악의 목표는 무대에 올라가서 ‘꺅!’ 하는 환호성을 듣는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관객들이 ‘오빠!’ 하고 소리 질러주는 걸 좋아한다고도 했고요. ‘봄여름가을겨울’의 첫 무대에서 김현식 형이 멤버들을 소개하면서 ‘키보드에 유재하입니다’ 하고 인사를 시켰더니 키보드를 밟고 올라가서 객석을 향해 막 손을 흔들었죠. 그날 공연 끝나고 내려오면서 ‘야, 내가 해냈어.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야!’ 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생각이 나요.”  

하지만 유재하가 추구했던 음악적 지향점은 조용필이나 김현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더욱이 클래식에 버금가는 고급스런 대중음악을 꿈꾸던 유재하는 밴드의 세션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밴드를 탈퇴한 유재하는 그 동안 만들어 두었던 곡을 들고 당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로 불리던 동아기획을 찾아가 음반 발매를 타진했다.
동아기획을 이끌던 김영 사장은 유재하의 노래를 듣고 고민에 휩싸였다. 때마침 그에게 음반 취입을 부탁하며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온 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유재하의 한양대 음대 선배이기도 한 포크 가수 이재원이었다. 김영 사장은 결국 독특하지만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유재하 대신 이재원을 택했다.  

사후에 더 유명해진 비운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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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낙담한 유재하는 자비 제작을 결심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서울음반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수차례 심의가 반려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87년 8월 발매된 이 앨범에는 총 9곡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연주곡인 ‘미뉴에트’를 포함해 모두 유재하의 자작곡이었다. <우울한 편지> 역시 이 앨범의 여덟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 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질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 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안타깝게도 수록곡 대부분은 독특하게 변조된 코드진행 때문에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노래가 이상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이 때문에 이 비운의 음반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가 싶었다. 그리고 첫 앨범이 나온 뒤 3개월 만에 일어난 가수의 안타까운 죽음…. 

그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작이 된 데뷔앨범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가식 없는 목소리와 정제된 멜로디, 이질적이면서도 편안한 ‘유재하 음악’의 진가를 알아본 대중들은 뒤늦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울한 편지>는 그 중에서도 타이틀곡인 <사랑하기 때문에>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2003년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의 전주곡으로 차용되었지만 <우울한 편지>는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훗날 그와 절친했던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는 그가 대학 1학년 때 만난 한 여대생의 편지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첫사랑 여인에게 편지를 받은 청년 유재하의 불안과 머뭇거림이 단아한 목소리에 실려 가슴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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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