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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이야기] 모래알갱이를 보듬어 낳은 광채

어머니와 진주

여름 햇살이 반짝이는 알갱이처럼 거리에 쏟아집니다. 내 손을 쥔 어머니의 손바닥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습니다. 찬찬히 걸음을 뗍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새로 배운 서툰 걸음입니다.  

어머니는 1년여 척추질환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3개월 전 건강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척추수술을 받았고 힘든 재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로소 보조기를 떼고 혼자 힘으로 걷는 날입니다. 다행히 꽤 긴 거리를 무사히 걸어 벤치에 앉습니다. 어머니의 머리 위로 햇살이 차르르 진주처럼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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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3남매의 큰딸이었습니다. 9살 때 갑작스레 외할머니를 병으로 여의였습니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만주를 오가며 무역을 하느라 많이 바빠서 두 동생을 돌보며 안살림을 챙기는 것은 어린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먼저 가신 외할머니가 그립고 야속해 참 많이도 울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같이 외로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때문에 자식들도 서로 외롭지 말라고 7남매를 낳았습니다.  

세상 어느 어머니 힘들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선생님을 하면서 7남매를 키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한동안 저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많은 자식을 낳으며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 자식, 제자들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저는 진주라는 보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보석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진주는 우리들 어머니의 삶을 가장 많이 닮은 보석일지도 모릅니다.  

생명체 내부에서 태어난 특별한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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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신기하게도 조개에서 자라는 보석입니다. 호박(琥珀)과 더불어 유기질 보석 중 하나죠. 식물인 소나무의 송진으로 만들어지는 호박과 달리 조개, 즉 연체동물이 만드는 동물유기질 보석입니다. 즉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부에서 태어난 특별한 보석입니다. 

천연진주는 아주 우연히 만들어집니다. 조개의 몸속에 어쩌다가 모래나 기생물 등 이물질이 들어갑니다. 이물질을 머금은 조개는 고통으로 체액(콘치올린)을 내어 이물질을 감쌉니다. 수많은 시간동안 천천히 수 백 개의 진주층(nacre)이 쌓이며 단단해 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주층은 점차 원형에 가까워지고 마침내 진주가 됩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잠수부에게 발견된 진주는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엄청난 우연과 복잡한 조건에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산물이지요.  

이런 이유로 천연진주는 정말 귀하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쌌습니다. 로마황제 비델리우스는 자기 어머니의 진주 한 개를 팔아 전투자금을 조달할 정도였으니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지요. 천연진주는 중동의 페르시아 만의 청정한 바다에서 잠수부들에 의해 채취되었습니다. 원유가 채굴되기 전 그 지역은 진주조개가 자라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나마 간간이 나오던 천연진주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은 페르시아 만이 원유채굴로 오염되고 미끼모토가 양식진주를 개발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미끼모토는 다이아몬드의 드비어스와 더불어 보석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을 끼친 사람입니다. 1905년 미끼모토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드디어 양식진주의 개발에 성공합니다. 천연진주의 가치하락을 걱정한 보석상들의 엄청난 공격을 받으면서도 결국 천연과 동일한 품질의 진주라는 즉 양식진주(cultured pearl)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양식진주는 진주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으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만약 미끼모토가 없었다면 진주는 지금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나 가질 수 있는 매우 희귀한 보석이었을 겁니다. 19세기 중반 일본은 진주 산업의 메카로 떠올랐고 아시아의 최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천연진주 자취 감추고 양식으로 진화

미끼모토의 양식진주 성공이후 다양한 종류의 진주가 양식되었습니다. 먼저 담수진주는 민물에서 양식되며 중국에서 생산됩니다. 원형 핵을 삽입할 수 없어 모양이 부정형인 것이 특징입니다. 밥풀진주나 못난이진주처럼 광택이 좋지 않고 싼 진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수진주에 버금가는 퀼리티와 원형도가 좋은 담수진주가 개발되어 일본의 해수진주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남양진주는 주로 호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남태평양에서 양식됩니다. 진주조개가 대형이라 직경 10~18mm의 큰 사이즈의 진주가 나옵니다. 일본산 해수진주에 비해 수온이 높은 바다에서 생산되어 진주층이 단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퀼리티에 따라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주로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고가의 반지에 많이 사용됩니다.  

흑진주는 특별히 타이티 바다 인근에서 양식되기 때문에 타이티 진주라고 불립니다. 흑나비조개에서 채취된 진주이며 7가지의 흑색이 있습니다. 이중 최고의 퀼리티는 피코크 진주, 즉 청동구리 빛의 오버톤이 나오는 흑진주입니다.  

진주의 퀼리티는 광택, 면, 원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진주층이 단단할수록 광택은 뛰어나며 표면에 스크래치나 흠이 없고 좌우대칭이 좋고 원형에 가끼우면 최상의 품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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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진주를 바라보고 있으면 진주를 품었을 진주조개가 떠오릅니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여느 날처럼 입을 벌린 조개에 커다란 모래알갱이가 들어옵니다. 날카로운 모래알갱이는 내장 곳곳을 찢어놓습니다. 조개는 극심한 고통을 이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비물을 쏟아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바다 깊은 곳에서 일생을 건 사투가 시작됩니다. 

조개는 마침내 고통을 이기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물질을 보듬고 감싸는 것, 고통은 마침내 그의 몸의 일부가 되어갑니다. 긴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자신을 괴롭히던 모래알갱이는 단단한 진주가 되어 반짝반짝 빛납니다. 조개는 자신보다 훨씬 아름다운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모래알갱이의 어미가 되어 마침내 진주를 낳습니다.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이 붑니다. 어머니는 내손을 꼭 쥐고 벤치에서 찬찬히 일어납니다. 손바닥에는 더 이상 땀이 맺혀있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힘든 일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좋은 일이 되는 법이란다. 세상에,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니.”
어머니가 진주를 품은 조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글 | 이승우
이승우 님은 보석과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보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문예지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현재 보석회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국 보석감정사(Graduated Gemologist)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