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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넷플릭스 첫 스트리밍, 짐바브웨 영화 <쿡 오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넘어 희망을 요리하다

37년간의 철권통치로 악명을 떨쳤던 무가베 대통령의 독재정권 하에서 ‘아프리카의 식량창고’로 불리던 짐바브웨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유래를 찾기 힘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살인적인 물가상승률과 절대 빈곤에 시달려야 했죠. 2017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가베 정권이 막을 내린 뒤 짐바브웨는 다시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짐바브웨 최초로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된 영화, <쿡 오프(Cook off)>는 희망을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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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쿡 오프> 포스터

남아프리카 내륙국인 짐바브웨 공화국(Republic of Zimbabwe)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이 낯설기만 한 나라입니다. 1967년 식민지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로디지아(Rhodesia)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1980년 현재의 짐바브웨란 국호로 개명했지만 우리나라와는 김일성 사후인 1994년이 되어서야 수교 관계가 성립된 아프리카의 먼 나라일 뿐이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짐바브웨 역시 독립 이후 줄곧 비동맹노선을 천명했기 때문에 수교 전까지만 해도 우리보단 북한과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37년의 집권을 통해 짐바브웨 국민들 일부에게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한편, 대다수 국민들에겐 국가경제를 나락으로 빠트린 ‘무능한 독재자’로 비판받는 무가베(1987~2017년 재임) 대통령은 재임 시절 8번이나 평양을 방문했을 만큼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친북파였습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짐바브웨란 이름이 기억되게 된 건 ‘빅토리아 폭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는 너비가 1.7km로 남미 이과수 폭포의 4km보다는 작지만, 세계 최고 높이(108m)에서 쏟아지는 물보라가 평생 잊기 힘든 감동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여행자율화 조치 이후 아프리카를 찾기 시작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짐바브웨는 이제야 오랜 은둔을 마치고 우리 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중입니다.

‘독립 영웅’ 대통령의 강압적 토지개혁이 단초

일 년 내내 우리나라의 봄 날씨처럼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덕분에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던 짐바브웨는 빅토리아 폭포 외에도 세계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인공호수인 카리바와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비롯한 고대 석조유적지 등 국토 전역에 쓸 만한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해외 여행객이 감소하기 전만 해도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던 아프리카의 주요 관광산업 국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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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관광명소, 빅토리아 폭포


하지만 우리나라와 사람들에게 짐바브웨는 여전히 지리적, 정치적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간헐적으로 접하는 뉴스의 대부분이 이 나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영향이 큽니다. 아마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소식 중 하나가 ‘살인적’이란 말로도 부족한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에 관한 얘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국가 경제를 뿌리까지 뒤흔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무가베 대통령의 급진적인 토지개혁이 그 시발점이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1992년 가뭄 이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면서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진 무가베는 1997년 이후 국민적 관심사인 토지개혁을 독자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합니다. 인구의 1%에 불과한 백인이 전체 상업경작지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해결해야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죠.

사실 토지분배 문제는 독립 이후 가장 중요한 국민적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토지 불균형은 식민지 모국이었던 영국의 책임이 가장 컸는데 짐바브웨 독립에 합의한 랭커스터 평화협정 당시 영국이 ‘향후 토지 재분배 과정에서 토지를 매각하는 백인 농장주들에 대해 보상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한다’는 약속을 뒤집어 버린 것이 무가베 정권의 분노를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전례가 없던 초인플레이션의 참극

1997년 정권을 잡은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는 자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짐바브웨 토지 재분배 자금지원 약속을 전면 부인했고, 이에 따라 토지개혁 문제는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무가베는 더 이상 영국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토지 개혁을 밀어붙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정권의 묵인 하에 2000년 2월, 과거 짐바브웨 독립투쟁 참전 군인을 중심으로 한 재향군인들이 백인농장을 습격, 불법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사태로 인해 12명의 백인 농장주가 살해되는 등 전국이 거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부분 영국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백인 농장주들은 신변에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3년 영연방을 탈퇴하고 강경노선을 천명한 짐바브웨에 맞서 EU,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도 무가베 정부가 2000년 총선, 2002년 대선에서 투표용지 바꿔치기 등의 부정투표를 일삼았다는 것을 이유로 경제원조 중단, 나아가 경제봉쇄 조치로 맞불을 놓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입김이 강하게 미치던 IMF 및 세계은행도 짐바브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짐바브웨엔 서서히 경제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죠.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화폐를 찍어냈고, 이로 인해 짐바브웨엔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과의 자유무역이 위축되어 식료품과 연료 가격이 폭등하고 수도와 전기가 끊기게 된 짐바브웨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과거 ‘아프리카의 식량창고’라 불릴 정도로 넉넉했던 농업 생산량도 연이은 가뭄으로 크게 줄어 국민 대다수가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절대빈곤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죠. 국민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거나, 인접 국가로 탈출해 불법 체류자로 살아가야 했지만 수십 년간 철권통치로 일관해 오던 무가베 정권은 경제 위기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중남미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도 짐바브웨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00조짜리 지폐로 살 수 있는 건 고작 달걀 3개

경제난과 식량난이 절정에 달했던 2008~2009년 무렵, 짐바브웨 물가상승률은 2008년 2억3000%에 달했습니다. 물가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수준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통제 범위를 벗어난 초인플레이션)에 맞서 무가베 정권은 최후의 수단으로 액면가 100조짜리 지폐를 발행하기까지 했는데, 0이 무려 14개나 붙은 천문학적인 돈으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건 달걀 3개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시장에서의 공식 환율은 ‘1달러=300억 짐바브웨 달러’, ‘한화 400원=100조 짐바브웨 달러’로 평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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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이 지폐는 2008년 1월 발행을 시작해 불과 1년 만에 유통이 금지되었습니다. 2009년 2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짐바브웨 정부가 자국 통화를 전면 폐기하고 미국 달러, 유로화를 법정화폐로 지정했습니다. 그 뒤 100조짜리 짐바브웨 달러는 화폐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채 전 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30~50달러 사이에 기념품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초래한 무가베 정권은 결국 2017년 11월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37년간 이어진 무가베 철권 통치의 퇴장에 환호했습니다. 2019년 싱가포르에서 입원 치료 중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무가베는 더 이상 소수의 백인 정권에 맞서 흑인 독립 국가를 이끌어낸 독립의 영웅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치유와 화해의 첫걸음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버렸던 짐바브웨는 다행히 이제 경제 위기의 후유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주변국을 떠돌던 국민들이 다시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집니다.

그런 짐바브웨에서 2020년 화제를 모은 영화가 <쿡 오프>(2017년 제작)입니다. 저예산 로맨틱 코미디영화로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된 최초의 짐바브웨 영화입니다. 총제작비 미화 8천 달러, 7월 현재 환율로 한화 약 917만 원으로 만든 이 영화는 젊은 여성이 요리 경연대회에 참가하며 삶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지난 2017년 무가베 대통령이 실각하기 몇 달 전에 촬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을 공영방송인 ZBC에서 방송된 ‘짐바브웨 탑쉐프’(Top Chef) 세트장을 활용해 찍었는데 요리 경연대회의 의상, 세트장, 냄비들을 재활용해 제작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다른 호화로운 영화 촬영 현장과는 많이 달랐다. 모든 것이 아주 간소했고, 절대 NG를 내서는 안 됐다”는 여주인공 치티마(Tendaiishe Chitima)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의 제작 현실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촬영 당시 그들이 준비한 제작비의 대부분은 식비로 지출되었습니다. 연출을 맡은 브릭힐 감독은 “2017년 촬영 당시, 현금인출 제한조치가 시행되고 있어 하루 20달러밖에 현금을 구할 수가 없었다”며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짐바브웨에서 이 돈은 생수 한 병을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었다”고 촬영 과정의 어려움을 회상합니다. 전력난이 심해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제한된 예산 안에서 따로 발전기를 구입해 가동하느라 영화는 그야말로 악전고투 끝에 완성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는 여주인공의 말처럼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짐바브웨의 오늘을 확인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쿡 오프>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내려진 상태라 유튜브 등에서 짧은 동영상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라. 그러나 항상 최선의 것을 희망하라’는 서양 속담처럼 짐바브웨는 이제 비로소 길고 길었던 현대사의 아픔에서 벗어나 치유와 화해의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심리적으로 멀게만 느껴지겠지만, 저 멀고먼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는 짐바브웨 사람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오래오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 김정현

 

짐바브웨 커피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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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는 1890년대부터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업적 의미의 커피 산업이 정착된 시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로 볼 수 있다. 남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농부들에 의해 시작된 커피농장들은 대부분 동부 고원지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짐바브웨는 국가 경제가 불안정하고 농장 운영 및 커피 생산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커피 재배로 인한 재정적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에 실망한 농장주들이 커피 대신 환금성이 높은 담배, 바나나, 콩, 마카다미아 등으로 재배 작물을 바꾸면서 커피 산업 전반이 급격히 쇠락하고 말았다.

1980년대 말 1만5,000톤에 달했던 커피 생산량은 2017년 500톤까지 줄었고, 한때 700여 개에 달했던 전국의 커피 농장도 현재는 450여 개로 급감했다. 커피 생산량 자체는 미미하지만 짐바브웨 커피는 깊고 풍부한 과일향이 특징으로 서구 유럽의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드립용으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홍드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타무카 무 짐바브웨’라는 이름의 아라비카 커피가 출하되고 있는데 레드베리, 건포도, 크랜베리가 어우러진 풍부한 과일향과 산뜻한 산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