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모두의 테라스
[커피 시네마] 페루 영화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

감자 꽃에 투영된 페루 여인의 일생

페루의 역사는 원시 수렵농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만 년 전, 한 무리의 몽골계 이주민이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뒤 그들의 자손들은 볕이 잘 들고 먹을 것이 풍부한 땅을 찾아 남하를 시작했다. 기원전 10세기경 현재의 페루 영토인 안데스 산악지대에는 이미 그들이 이룩한 정교한 토착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5세기에 이르러 ‘망코 카파크’란 전제군주가 등장한 이래 잉카(태양의 아들)는 한 때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중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1,200만 명의 백성을 가진 대제국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페루 남부의 우르밤바 계곡에서 발견된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가 잉카 제국의 문명 수준을 당시의 유적이다.

2_GettyImages-a12278302.jpg

하지만 화려했던 영화도 잠시, 남미의 모든 나라들처럼 페루 역시 중세 들어 유럽인들의 침략을 비켜갈 수 없었다. 1532년 에스파냐의 피사로에게 정복되어 식민지로 전락한 페루는 이후 300여 년 간 에스파냐의 학정에 시달렸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원주민들이 비참한 노예생활로 연명하거나 식민통치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1824년 아야구초 전투에서 에스파냐군을 격파하면서 독립을 쟁취할 때만 해도 페루는 금방이라도 잉카의 영화를 재현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페루의 근현대사 앞을 막아선 건 빈번한 군사쿠데타와 군부독재의 악순환이었다.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대립이 심각한 수준인 데다 수도 리마 중심주의자들과 지방 도시 쿠스코 중심주의자들의 반목도 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독립 이후 이백여 년 간 페루의 근현대사는 질곡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페루 국민들의 삶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015년 기준 페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5,962달러로 우리나라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총인구 3천만 명인 페루는 토착원주민이 45%, 메스티조(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 가 37%, 백인이 15% 등으로 구성돼 정치, 사회적 통합이 어렵고 빈부 격차도 심각한 편이다. 더욱이 접경국인 칠레와의 국경 분쟁이 70여년 계속되었으며, 1965년부터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군정에 반대하는 게릴라 군이 출몰해 크고 작은 내전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나는 영혼 없이 태어났다’

이 와중에 가장 고통스런 삶에 직면했던 건 그나마 기댈 곳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 페루의 여성들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공포 속에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이중 삼중의 억압과 고통은 숨길 수 없는 페루의 민낯이었다. 드물게 만나는 페루 영화,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2009)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의 내전 당시, 함부로 학대당하고 버려졌던 여성들의 공포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영화이다. 영화의 원제목은 ‘두려움에 떠는 젖가슴’이란 의미의 ‘La Teta Asustada, The Milk Of Sorrow’.

2커피시네마.jpg
<밀크 오브 소로우> 영화 포스터

페루에 전해지는 민간전설에는 임신한 채로 능욕을 당한 엄마의 공포는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해진다는 얘기가 있다. 이 때문에 페루 사람들은 공포를 이기지 못한 아이의 영혼은 점점 땅속으로 스며들며 결국엔 영혼 없는 육신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영화 속, 페루의 수도 라마 교외에 사는 파우스타(마갈리 솔리어) 역시 자신이 ‘슬픈 모유병’에 걸렸다고 믿는 내성적이고 겁 많은 처녀다. 그녀의 엄마는 1980년대 후반에 시작돼 이십여 년 간 지속된 내전의 와중에 임신한 몸으로 누군가에게 겁탈 당한 아픔이 있다. 그런 엄마의 모유를 먹고 자란 파우스타는 겁 많은 비둘기처럼 잔뜩 움츠러든 채 살아간다. 혼자서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길을 걸을 때도 떠돌이 영혼들을 피하기 위해 악착같이 벽에 붙어 다닐 만큼 겁이 많다.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그녀의 ‘슬픈 모유병’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파우스타는 남자들로부터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아예 자신의 질 속에 감자를 넣고 다닌다. 하지만 감염 때문에 파우스타는 툭하면 기절하거나 코피를 흘린다. 파우스타를 진찰한 산부인과 의사는 지금이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유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한다. 감자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장치인 까닭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평생 회한 속에 살던 그녀의 엄마가 숨을 거둔다. 파우스타는 가엾은 엄마를 생각하며 시신만이라도 고향에 묻어드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삼촌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파우스타에게 엄마의 시신을 운구할 만 한 돈이 있을 리 없다. 딸의 결혼준비로 가뜩이나 돈이 궁해진 삼촌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다. 결국 낯선 사람, 특히 남자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그녀는 엄마의 장례식을 고향에서 치르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랜 동안 갇혀 있던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다.

젊은 여성감독의 눈으로 본 페루의 비극

다행히도 파우스타는 시내에 있는 대저택에 일자리를 얻는다. 커다란 대문 안쪽 집 주인의 저택은 지금껏 파우스타가 살아온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다. 파우스타는 피아니스트인 안주인의 시중을 들며 낯선 세상 안으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는다.

상류층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음악가로써의 창작능력은 고갈되어 있던 안주인 아이다(수지 산체스)는 하녀 파우스타가 부르는 노래를 들은 뒤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한 곡 부를 때마다 진주알 하나씩을 주겠다는 것. 노래는커녕 남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파우스타는 하루 빨리 돈을 모으겠다는 결심으로 노래를 결심한다. 그 와중에 정원사로 일하던 노에(에프레인 솔리스)와도 조금씩 대화를 나누는 회수가 많아진다. 이 가여운 처녀는 과연 별 탈 없이 엄마의 시신을 운구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지난 2001년 설치된 ‘페루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80년대 후반 시작된 내전 중에 페루에서는 7만 명의 국민들이 살해되고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납치, 강간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안데스 산지의 원주민들이었다. 대도시 근교에 산다고 해도 파우스타나 그녀의 엄마 역시 원주민들이 겪은 불행을 비켜갈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인 건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만든 클라우디아 요사 감독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조카이기도 하다. 촬영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요사 감독은 숙부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페루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억압, 그 안에서 부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진짜 페루 민중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건 자체는 어둡지만 여성감독 클라우디아 요사는 영화 곳곳에 축제와 노래 형식을 빌려 페루의 풍부한 구전문화와 페루인들의 유머, 흥겨움을 드러내 보인다. 슬픈 전설이 모티브가 된 영화지만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는 그래서 동화적인 따스함이 가득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한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3_GettyImages-a9333353.jpg

이 몽환적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주인공 파우스타 역을 맡은 마갈리 솔리에르의 연기 덕분이다. 나이와 인종을 짐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외모의 마갈리 솔리에르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눈빛을 가진 잉카 원주민 출신의 영화배우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요사 감독이 가사를 쓰고 음악감독이 곡을 붙인 노래를 페루 원주민 언어인 ‘페추아어’로 직접 불렀다. 극중 파우스타는 한과 슬픔으로 응어리진 엄마의 일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노래 부른다.

가엾은 작은 비둘기야. 어디로 갔니? 두려움에 떨다가 영혼을 잃은 채 날아가 버렸구나.

네 어미가 전쟁 중에 널 낳았겠지? 네 어미는 두려움에 떨며 너를 낳았겠지?

아무리 사람들이 너를 아프게 해도 울며 헤매는 것이 너의 운명은 아니야.

고통스럽게 걷는 게 네 운명은 아니야. 찾으렴. 찾아 나서렴.

어둠 속에서 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봐. 이 땅에서 찾아봐.

“힘든 삶에도 깜짝 놀랄 선물이 숨겨져 있다”는 믿음

파우스타는 과연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파우스타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금씩 세상과 화해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삼촌 딸의 결혼식에서 이웃들은 신부에게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어딘가에는 깜짝 놀랄 선물이 숨어 있다”고 덕담을 건넨다. 이 말은 파우스타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슬픈 모유병’을 비롯해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 또한 현실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는 병이라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그 덕분에 파우스타는 주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페루인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긍정의 힘을 깨달아 간다.

정원사 노에를 통해 그녀는 오랜 동안 자신을 옥죄어 왔던 형벌로부터 자신을 풀어줘야 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질 속에 들어있는 감자를 꺼내달라며 울부짖는 파우스타의 절규는 그래서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한 여성의 자아선언으로 읽힌다. 그 순간, 노에가 애지중지 피워낸 감자꽃의 실체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 파우스타의 미래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글 | 김정현

 

페루의 커피산업

4커피시네마.jpg
by Hanumann, flicker (CC BY)

페루는 지금은 에콰도르 영토가 된 과야낄(Guayaquil) 지방에서 1760년대에 처음으로 커피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는 안데스 산맥 사이의 계곡과 고산지대에 걸쳐 커피 재배에 적당한 지역이 많은 덕분에 18세기 말부터 주요 커피생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우아누꼬(Huanuco), 꾸스꼬(Cuzco), 까하마르까(Cajamarca)를 중심으로 번성했으나 19세기 중반 이후 현재의 찬차마요(Chanchamayo)와 따르마(Tarma), 라 메르셋(La Merced) 지역을 비롯해 유럽 식민지였던 빼레나(Perene) 강 계곡에서도 본격적인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페루 커피는 현재 찬차마요 지방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가장 유명하며 안데스 산맥의 계곡지대에서도 양질의 커피가 생산된다. 전체적으로 안데스 계곡에서 재배한 페루 커피는 맛이 달고 부드러운 산도를 가지고 있으며 배합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커피는 페루에서도 중요한 산업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약 4,300여만 명의 농부들이 커피재배에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최근 몇 년 간 병충해로 인해 작황이 줄어들고 있지만 전체 생산량에서 꾸준히 10위권 내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