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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다문화 사회가 보여주는 몇 가지 풍경들

용광로와 샐러드그릇

지난 2006년 2월 6일 미국 디트로이트시에서 열린 경기가 우리의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우리와 무관할 것 같았던 미식축구(NFL) 경기가 한국 언론의 화제의 중심이 된 이유는 우승을 차지한 피츠버그 스틸러스 팀의 일원이었던 하인스 워드라는 선수 때문이었다. 흑인으로 알았던 그 선수는 사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었다. 미국 스포츠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는 한국을 방문했고 그해 거의 모든 언론은 한국계 혼혈인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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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이 던진 질문 ‘나는 한국인이 될 수 있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한국 방문 기사는 자취를 감춘다. 혼혈인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한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에 우리가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은 ‘나도 한국인이 될 수 있는가’였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스포츠 영웅으로 우뚝 선 그의 이력은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던 근본적 인종주의를 건드렸다. 혼혈인을 한국인으로 인정하게 되면 한국의 주류사회가 그토록 오래 주입시키려 했던 단일민족의 이데올로기를 우리 스스로가 파괴해야만 하는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 논쟁을 촉발시킨 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교과서에서 보이는 미래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 / 나영이 엄마는 / 필리핀 사람이고, / 알림장 못 읽는 / 준희 엄마는 / 베트남에서 왔고, /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 / 영호아저씨 각시는 / 몽골에서 시집와 / 길에서 마주쳐도 / 시장에서 만나도 / 말이 안 통해 / 그냥 웃고만 지나간다 / 이러다가 / 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 /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 그래도 할머닌 / 걱정말래. / 아까시나무도 / 달맞이꽃도 / 개망초도 / 다 다른 / 먼 곳에서 왔지만 / 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 

인용한 글은 한때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던 <걱정마>라는 시이다. 이 시는 논쟁 끝에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지금은 빠져 있는 상태이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이 작은 ‘사건’은 우리 사회가 다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정판에서 이 시를 빼야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이 시에 있는 표현들을 문제 삼는다.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우리 것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줘 미래세대인 초등학생들이 다문화 사회의 구성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반면, 개정판에서도 이 시를 계속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글에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가구가 약 35만 가구에 달하는 현실이다. 단일민족의 순혈주의를 역설하던 불과 한 세대 전의 교과서와 지금의 이 논쟁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변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문화 다원주의로 가는 길

멜팅 팟Melting Pot)’과 ‘샐러드 볼(Salad Bowl)’은 다문화 사회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적 통합을 거쳐 장기적인 정책 방향이 세워져야 할 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흔히 ‘용광로 이론’으로 번역되는 ‘멜팅 팟 이론’은 미국이라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로 보고 수많은 이민자들을 철광석에 비유하여 그들이 미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백인주류문화(WASP; White-Anglo-Saxon and Protestant)에 용해되어 미국이라는 새로운 인종으로 바뀐다는 이론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문화일원주의의 입장에서 이민자들을 기존의 주류문화에 완전히 동화시키는 것을 설명할 때 인용된다. 계몽사상과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 이 이론은 백인주류 문화를 바탕으로 생겼지만 현재 문화다원주의로 변해가는 추세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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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샐러드 볼 이론(Theory of salad bowl)은 모두를 녹여내 하나로 되자는 동화주의적 용광로 이론과 달리 이민자들이 모국의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주국인 미국인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호공존하며 각각의 문화를 조화롭게 통합해 또 다른 통합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등장했고, 세계화 이후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설득력이 있다.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허물고 이민자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니게 함으로써 다양한 고유문화의 특성을 살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문화다원주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한 광고

(내레이션)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
(자막)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일, 내일의 행복을 위한 일입니다. 이 캠페인은 oo금융그룹이 함께합니다.//
우리말을 잘 못 할 것이다. 우리말을 잘 할 것이다. 친구를 잘 못 사귈 것이다. 친구를 잘 사귈 것이다. 편견의 못을 빼면 더 큰 대한민국이 열립니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과 함께 크는 나라. 사랑해요 코리아. 이 캠페인은 ○○가 함께 합니다.

나열한 위 문구들은 몇 년 전 금융기업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사회적 광고 형식으로 방송하고 있는 광고의 주요내용들이다. 광고는 상품과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만나게 하는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의 대표적인 표현행위이다. 기업들이 다문화 사회를 광고의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다문화 가정을 주요 고객으로 인정했음을 나타낸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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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재단이 운영하는 다문화 동화 플랫폼 <올리볼리> http://ollybolly.org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일고 있는 후폭풍 중에 인종차별적 행태가 공공연히 일어난다는 보도도 바다 건너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다문화 정책에 대해 더 늦추기 전에 이제는 어떤 정책이든지 선택해야 하고 보다 정교하게 사회를 설계할 때가 아닐까.
여러분들은 용광로와 샐러드 그릇 중에 어느 것이 우리에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앞에 두고 있는 찻잔을 보면서 답을 내려보시길….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