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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소동파의 음차삼절(飮茶三絶)

찻잔에 빠진 달을 마시다

서양 문학에 영감을 제공했던 두 뿌리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상징되는 태양과 술이라면 중국 문학의 상상력에는 달과 차(茶)가 시원이다.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시간을 돌려 보자. 약 900여 년 전인 1082년, 중국 황주(黃州)에서 당대 최고의 한 문인이 달밤의 정취 속에서 말차를 마시고 있다.

흐르는 맑은 물을 길어
반드시 활화(活火)로 달인다
스스로 바위를 찾아
깊고 맑은 물을 구한다
큰 표주박으로 하여 달을 함께 담아
봄독에 가둔다
작은 구기로 하여 강물을 펴
어두운 밤 병에 넣어둔다
말차는 눈같이 희게 달여져
그 자리를 뒤지며
순식간에 솔바람 소리를 일어나게 한다
말라붙은 창자는 차 세 잔을 금하기 어려웠으며
깊어가는 밤 앉아서
쓸쓸한 장단의 북소리 듣도다
_ 소동파, <강물을 길어와 차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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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시대의 문인인 소동파(1036~1101)는 ‘소식’이 본명이며 동파는 동파거사라는 호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3소’라고 일컬어지며 ‘당송 8대가(문장가)’ 중 한 명이다.
어릴 때부터 도교와 장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시를 썼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구양수에게 격찬을 받을 정도로 일찍부터 문재를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장원 급제 후 왕안석이 추진한 개혁정책에 반대한 소동파는 지방 근무를 자청해서 항저우(杭州)와 후저우(湖州) 등의 지방관을 역임한다. 후저우 지사로 있을 때 조정의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소동파는 체포된다.  

사형을 겨우 면한 그는 100일 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항저우로 좌천된다. 유형에 처해 진 삶은 비참했다. 부인은 생계를 위해 양잠을 하고 소동파는 군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연명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 짓고 동파거사라고 칭한 데서 그의 호가 유래한다. 

항저우를 대표하는 먹을거리인 동파육(東坡肉)은 소동파가 조리법을 만들어 그의 이름이 붙은 음식이다.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각종 향신료와 양념을 첨가해 푹 쪄내 야채를 곁들여 먹는 이 음식은 소동파가 이 고장과 얼마나 인연이 깊은지를 알려준다. 그의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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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인물화

가을 달밤, 적벽에서 길어 올린 성찰

소동파의 대표작인 <적벽부>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철학적 사색이 가득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그의 성격이 찻잎의 향기처럼 은은히 드러난다. 노장사상과 함께 불교의 제행무상을 실천한 작품으로 꼽히는 <적벽부>에는 우주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화를 거듭해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평소 그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적벽강을 배경으로 가을 달밤에 작가 자신(소자)과 손(客)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자연 현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동양사상을 빼어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부터 사람의 관점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인생사를 서술한다. ‘손’은 인생을 허무한 것으로 보고, ‘소자’는 무한한 본체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면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 말한다.  

소동파는 항저우와 인연이 깊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밀려나 항저우(抗州)의 관원으로 부임했을 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시후(西湖)였다. 특히 달 밝은 밤에 호수가 만드는 자태가 아름답다. 이곳에서 소동파는 중국문학이 자랑하는 걸작인 <적벽부>를 쓴다. 적벽부를 쓰는 틈틈이 차를 끓여 마시는 소동파를 생각하면 그의 문학이 차의 그윽한 향으로 가득히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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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pahjoy, flickr(CC BY)

일필휘지의 원천, 음차삼절(飮茶三絶)

소동파에게 다예와 다도는 정신을 수양하는 과정이었으며 일필휘지 문학가의 면모를 다지게 한 원천이었다. 그는 찻잎과 차를 끓이는 물의 수질뿐 아니라 다기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차를 마시는 세 가지 아름다움 차미(茶美), 수미(水美), 호미(壺美 ; 다기의 아름다움)을 꼽았다. 음차삼절(飮茶三絶)이다.  

소동파는 최상품의 차는 반드시 최상의 물과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차를 끓이는 물의 출처와 방법에 대해서도 매우 전문적인 식견을 보였다. 조석(釣石) 주변의 깊은 물을 길어서 맹렬히 타오르는 숯불로 끓인 후 차를 타는 것이 최고의 차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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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and Annemarie,flicker(CC BY-SA)


차에 관한 전문적인 그의 식견은 차를 끓이는 과정에서 더 구체화된다. 차를 탈 물이 끓어오를 때의 온도상태에 대해서도 조건을 제시한다. 시 <시원의 차 달이기(試院煎茶)>에서 소동파는 여러 비유로 물 온도의 중요성을 말한다. 즉, 물을 끓일 때 물 속의 기포가 게의 눈 크기에서 물고기의 눈 크기로 커졌을 때,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바람이 소나무에 부는 소리와 같을 때, 물속의 미세한 기포가 끓어올라 춤추는 눈꽃처럼 끊임없이 선회할 때, 이 순간의 물로 차를 끓이는 것이 가장 좋고 더 끓이면 지나치게 된다고 적고 있다. 

소동파는 차를 끓일 때 사용하는 다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동이나 철주전자로 차를 끓이면 비린내가 나고, 차를 마실 때 정주의 정요에서 만든 토호잔으로 마시면 가장 좋다고 권한다. 소동파는 직접 차 주전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 ‘동파호(東坡壺)’라고 한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