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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 로드] 커피가 지나간 자리⑤ _ 아시아(1)

운하의 산물 ‘인도 몬순 커피’, 한 시대를 구가한 ‘실론 커피’

세계 약 50개국에서 커피가 나오는데요, 아시아에서도 많이 생산됩니다. 전 세계 물량의 30%를 차지하지요. 세계 10대 생산국(2021년 기준)에 베트남(2위), 인도네시아(4위), 인도(7위)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커피가 홍해를 건너 서남아시아인 예멘으로 전해진 것은 빠르게 보면 6세기 초 입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예멘이 제일 먼저 커피를 재배한 곳인데요. 하지만 오랜 내전과 혼란 때문에 커피가 잘 생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도에 커피씨앗을 심은 ‘바바 부단’

- 6세기에 예멘에 커피가 전해졌다면, 아시아에서 꽤 오래전부터 커피를 생산한 것일 텐데. 그렇게 보이질 않네요.
커피가 무슬림 사이에 종교적 음료가 되다보니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지요. 거의 1000년간 커피는 아라비아반도, 구체적으로 예멘에 갇혀 밖으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무슬림 사이에서 커피는 “그것을 몸에 담으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호메트를 살린 음료로 불리기도 했고, 금욕주의자인 수피교도들에게는 입맛을 떨어뜨리고 밤새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준 요긴한 음료였지요. 그러다보니 이를 외부로 내보내는 사람들은 붙잡히면 바로 처형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러다가 17세기에 들어서야 돌파구가 생깁니다.  

- 그런 커피가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됐나요? 왠지,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바바 부단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분은 인도에 사는 이슬람, 그중에서도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수피교의 학자였습니다. 1670년 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멘에 들러 커피 씨앗 7개를 몰래 숨겨 들어와 고향인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서 재배에 성공합니다. 그 주변은 현재 고급 커피 산지로 유명한 마이소르(Mysore)입니다. 그보다 300여 년 전에 목화씨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문익점 선생 같은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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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커피하면 몬순 커피라고 해서 숙성커피가 유명하잖아요.
마이소르에서 남서쪽으로 승용차로 8시간 정도 떨어진 말라바르(Malabar)에서 생산되는 커피입니다. 인도양에 접한 곳이지요. 바바 부단이 커피를 들여온 지 거의 200년 뒤의 일입니다. 발효가 박테리아가 관여해 산이나 알코올을 만드는 것이고, 숙성은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맛이 온순하게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커피 생두를 습기가 많은 바닷바람을 맞게 해 숙성시킨 게 몬순 커피입니다. 커피 수확시기 말라바르에는 습한 남서 계절풍이 불어오는데 이를 몬순 기후라 합니다. 몬순 커피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왔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한 1869년 이후 유명해졌습니다.
운하 개통 전에는 인도에서 유럽으로 커피를 싣고 가려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6개월이 소요되었고, 그 과정에서 커피가 자연스럽게 해풍을 맞아 숙성되었던 거죠. 하지만 운송기간이 줄어들어 숙성이 되지 않아 예전의 맛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소비자들이 요구에 따라 인위적으로 바닷바람에 숙성시키는 몬순 커피가 탄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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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칸타타3_by Nicahlp, modified by Dr. Blofeldwikimedia(CC BY-SA).png
인도의 커피산지는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 by Nicahlp, modified by Dr. Blofeldwikimedia(CC BY-SA)
 

- 인도로 전해진 커피는 이후 어느 나라로 펴져갔나요.
커피가 일단 아라비아 반도에 밖으로 나오자 거침없이 세계로 펴져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엔 네덜란드의 공이 컸습니다. 이때가 1650년대쯤인데요.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한 발 앞서 인류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아시아 곳곳을 누빕니다. 사실 향신료를 찾아 나섰던 것인데, 커피의 가치에 먼저 눈을 떴습니다.  

- 네덜란드는 그 커피를 어디서 얻었나요. 바바 부단에게 조금 달라고 했던 건가요.
하하. 네덜란드에도 우리나라의 문익점, 인도의 바바 부단과 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피테르 반데르 부뢰크라는 직물상인이 1616년 예멘에서 묘목을 몰래 빼내 암스테르담에서 성공적으로 키워냈지요. 네덜란드는 1658년부터 1796년까지 138년간 당시 식민지였던 실론(지금의 스리랑카)로 가져다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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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론은 ‘실론티’로 유명한 곳인데, 차보다 커피가 먼저 재배되었군요.
실론은 1796년에 네덜란드에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데요. 1860년대에는 전 세계 커피 생산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커피 대국’이었습니다. 하지만 1869년에 커피 녹병이 번집니다. 철에 녹이 슨 것처럼 커피나무의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말라 죽는 무서운 병입니다. 영국은 실론의 커피나무를 모두 뽑아버리고 대신 차나무를 심게 됩니다.
커피와 차는 서식환경이 비슷합니다.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윈난성에 커피가 대규모로 재배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영국으로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커피보다는 차가 더 비싸게 팔렸거든요. 영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차가 만병통치약으로서 한 참 주가를 올리던 시기였습니다.  

시나몬 커피, 후추 커피?…나무들의 공생(共生)

- 실론의 커피는 어떤 맛이었나요. 인도의 몬순 커피처럼 어떤 특성이 있는지.
입으로 전해질 뿐이지만 시나몬 원산지답게 향신료의 느낌이 나는 커피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커피애호가들이 시나몬 나무 사이에 자란 커피나무가 시나몬의 향을 품고 자란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커피나무가 함께 자란 나무의 영향을 받고, 실제 한 잔의 커피에서 그것을 느낀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 그럼 후추로 유명한 인도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후추 향미를 갖나요?
이런 사연을 아는 커피애호가들은 인도커피를 마시면서 후추의 면모를 찾으려고 집중하지요. 그럼 실제 후추의 향이 나는 듯하거든요.  

- 곁에서 자란 향신료 나무가 커피의 향미를 풍성하게 해준다! 진위 여부를 떠나 참 낭만적이네요.
이런 사실을 알고 커피를 마시면 다 즐겁고 행복해지지요. 커피나무는 그늘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도나 실론에서는 커피나무 곁에 팜나무나 시나몬처럼 큰 나무를 함께 심었습니다. 그 큰 나무를 타고 넝쿨나무인 후추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다음에 계속)

글. 커피비평가협회(www.ccacoff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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