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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에피소드]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스토리텔링, 커피탄생의 비밀

[커피 에피소드]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는 어떻게 인류가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가 됐을까? 커피의 무엇이 우리를 홀리는 것일까? 생각을 거듭해도 커피는 ‘음료 이상의 무엇’이다. 구체적인 맛이 이끌리지 않아도 습관처럼 찾게 된다. 답을 찾기 위해선, 우선 커피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커피의 마력이라는 게 커피 자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커피를 도구로 삼은 모종의 세력에 있는 것인지…. 커피에 대한 진실 규명은 탄생의 비밀을 푸는 데에서 시작된다. 애초 커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일까?  
 

커피에피소드2_커피 씨앗의 발아(Germination).JPG

커피 씨앗에서 잠들어 있던 생명이 움터 나오기 시작하는 장면

‘에덴동산의 커피나무 이야기’ 

커피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아는 것은 커피 탐구의 출발점이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4가지의 이야기가 회자된다. ‘에티오피아 전사의 전설’, ‘염소지기 칼디의 전설’, ‘이슬람학자 셰이크 오마르의 전설’, 그리고 ‘마호메트의 전설’이다. 여기에 더해 비교적 최근 거론되는 기원설이 ‘에덴동산의 기원설’과 ‘시바의 여왕 기원설’이다.  

에티오피아, 예멘,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유명한 커피 산지들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구약성서를 믿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는 공통적으로 구약성서를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른다.
산지에서 재배자들과 커피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흥미로운 말이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에덴동산의 커피나무 이야기’다. 요지는 이렇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세상 만물이 모두 만들어졌으므로, 커피나무도 태초부터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태초에 하느님이 창조했고, 그것은 모두 에덴동산에 있었으니, 당연히 커피나무도 그곳에 있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커피에피소드3.JPG

 

그렇다면 커피나무는 에덴동산의 어디에 있었을까? 창세기가 적혀 있는 구약성서의 어디에도 커피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에덴동산 커피기원설이 왜 거론되는 건 ‘선악과’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관한 부분은 2장 8절과 9절에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더라.”
여기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음에 따라, 먹을 수 없게 된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먹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인류는 영원히 살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커피? 

커피와 관련해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나무 옆에 심겨져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다. 창세기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 또는 ‘지식의 나무’로 일컬어지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게 된다. 정신적으로 각성을 하는 것이자, 지혜를 얻는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무의 열매 가운데 인간이 먹음으로 해서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각성효과를 유발하는 열매는 커피, 카카오, 과라나 나무 등 몇 종류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사과는 각성효과를 유발하지 않는다.  

‘에덴동산 기원설’의 핵심은 이브와 아담이 뱀의 유혹에 빠져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원인이 된 선악과가 바로 커피나무였다는 주장인 것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기원전 1446년~1406년 모세에 의해 쓰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창세기는 ‘모세 5경(Five books of Moses)의 제1경’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로, 그 열매를 ‘선악과’로 표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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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1509년 그린 <타락과 낙원에서의 추방(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을 보면 선악과가 표현되지 않았다. 존 밀턴이 17세기 실락원을 쓴 뒤에야 선악과는 사과로 묘사됐다.

<실락원>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명기 

선악과가 ‘사과’라고 구체적으로 표기된 것은 창세기가 쓰인 지 3000년이나 지난 뒤였다.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 펴낸 대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창세기의 선악과는 비로소 ‘사과’라고 명기된다. 밀턴 이전까지 선악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나무였다. 그가 선악과를 사과라고 적은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담과 이브를 다루는 작품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그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가인 스튜어트 리 앨런은 1999년 《악마의 잔(The Devil’s Cup)》이라는 책에서 선악과는 사과가 아니라 커피열매였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선악과를 먹은 ‘최초의 인류’가 보인 반응은 카페인의 각성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미스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약성서의 풀이를 두고 16세기, 17세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커피 탄생의 비밀’은 숱한 이야기를 낳고 있다.
 

커피에피소드4_테나 아담을 넣은 에디오피아 커피.jpg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에 ‘테나 아담(Tena Adam)’으로 불리는 허브를 커피에 넣어 마신다. ‘테나’는 ‘건강한’을 의미한다. 건강한 아담을 뜻하는 이 식물은 커피의 향미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커피와 에덴동산의 아담을 연결 짓는 단서일 수 있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 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했고, 현재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커피인문학》, 《이유 있는 바리스타》등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