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지상의 쉼표
[탱자 가라사대] 풍향으로 알아보는 제주여행 꿀팁

바람을 알면 제주가 즐겁다

‘요망한 제주 날씨’란 말처럼 좁은 섬 안에서도 제주날씨는 요사스럽고 변화무쌍하다. 머리 위에선 가랑비가 떨어지는데 바다 위 저 멀리엔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린 듯 햇살이 비추기도 한다. 구름 조금이란 일기예보를 보고 제주공항에 내려 파란 하늘을 보며 상쾌하게 제주여행을 시작했는데, 한라산을 넘자마자 먹구름이 밀려오며 세찬 비가 내리더니 여행기간 내내 쨍하게 맑은 날을 못 봐 모처럼의 제주여행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비구름대가 광범위하게 남해안과 제주 전역을 덮을 땐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구름조금이나 약간 흐림 정도일 때 일기예보에서 지금껏 별 신경을 안 썼던 바람의 방향에 관심을 가진다면 분명 효과를 볼 것이다. 

한라산이 부리는 바람의 마술

한라산.jpg


서울 면적의 3배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 제주. 그 한 가운데에는 남한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이라 불리는 커다란 순상화산(중력의 힘으로 마그마가 서서히 아래로 넓게 퍼지며 굳어진 방패모양의 화산형태)이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 전체가 한라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넓은데 최고높이는 해발 1,947m에 육박한다. 

여기서 돌발퀴즈!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산은?’이란 퀴즈에 한라산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함경도 개마고원 주변엔 2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50개가 넘는다. 정답은 백두산 주변 봉우리 중 하나인 관모봉(2,541m)! 만일 관모봉도 넓게 봤을 때 백두산으로 친다면 그 다음 높은 산은 북수백산(2.522m)이다. 그렇다면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남한 산은? 1등만 기억하는 슬픈 세상… (지리산이다) 

제주섬 한가운데 이처럼 높은 산이 떡 자리잡고 있다 보니 제주 날씨는 바람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흔히 바람을 탄 구름은 산을 만나면 마치 힘에 겨워 땀을 흘리듯 산을 넘어가며 비를 뿌린다(구름이 높은 산에 막혀 위로 밀리며 올라가면 고도가 높아지니 기온, 기압이 낮아지고 기온이 낮아지니 수증기가 응결되어 비가 되는 원리). 수증기를 토해내고 산을 넘은 바람은 지면으로 내려오면서 고온 건조해진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들었던 높새바람(푄 현상)이다. 

동풍이 부는 날엔 애월 같은 서쪽이 맑고, 반대로 서풍이 부는 날엔 서쪽이 구름이 많고 동쪽은 쾌청하고 따뜻해진다. 동풍이 부는 날, 바닷가가 맑더라도 한라산과 가까운 중산간 지방은 여지없이 구름이 많아진다. 이런 높새바람의 원리를 염두에 두면서 제주여행 동선을 짠다면 날씨로 여행을 망치는 일을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다. 즉 북풍이 부는 날은 남쪽 여행을, 남풍이 부는 날은 북쪽 여행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푄 현상이 보통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동풍이 부는 날 대표적으로 발생하는데 제주는 한 가운데 산이 있다 보니 동서남북 어디에서 바람이 불던지 다 적용이 된다. 심지어 제주 전역이 태풍주의보가 내려져도 산 넘어 바람의 반대편은 강수량이나 풍향 수치가 상대적으로 적다. 

동남 귤, 동북 당근

바람을 알면 제주의 이모저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가령 동남쪽에 위치한 서귀포 남원귤을 제주 으뜸귤로 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귤 수확철인 겨울엔 주로 북서풍이 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많은 제주 동남쪽이 작황도 좋고 당도도 높다. 겨울엔 한라산이 북풍을 막아줘서 서귀포는 따뜻하고 제주시 중산간 아라동과 오등동은 눈이 많이 내린다.
반대로 여름엔 서귀포가 비가 많아 눅눅하고 제주시와 애월읍은 여름철 한낮 기온이 가장 높다. 내가 사는 동북쪽 구좌읍은 계절풍의 바람길 중간에 한라산이 없기에, 바다를 건너온 세찬 바람이 그대로 통과되는 지역이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표층을 덮어 땅이 척박해지다보니 귤은 전혀 자라지 못하고(구좌읍에 귤 가게가 안보이는 이유) 대신 밭작물인 당근, 마늘이 잘 자란다.  

심지어 바람으로 인해 땅이 척박하다 보니 인심도 박하고 성격도 독할 거란 편견에 ‘김녕여자가 앉은 자리엔 풀도 안자란다’란 제주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로 구좌읍 사람들은 다른 제주 지역 사람들에 비해 가혹한 농사환경에서 살아와서인지 생활력이 강하고 기가 쎈(퉁명스런) 분들이 많아 보인다(알고 보면 진국 의리파). 땅이 비옥하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물질을 하시는 해녀 분들이 제주에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항공뷰.jpg


여행 동선을 짤 때 외에 비행기를 탈 때에도 그날 풍향을 알면 하늘에서부터 제주 풍경을 남들보다 먼저 즐길 수 있다. 가령 제주공항에서 서풍이 부는 날엔 비행기가 서쪽으로 이륙한다.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착륙하는 비행기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동쪽으로 선회해 바퀴를 내린다.
이럴 때 A열 창가에 앉으면 비행기 착륙 전 제주 동쪽 해안선과 한라산을 위에서 굽어보며 내리는 즐거움이 있다. 반대로 F열 창가쪽 사람은 바다만 보면서 착륙한다. 그러니 육지공항서 보딩패스를 끊을 때 서풍(북서/남서 포함)이면 A열을, 동풍(북동남동 포함)이면 F열을 예약하길 추천드린다. 참고로 현재의 제주공항은 동서방향으로 놓인 활주로 하나만을 사용하고 있기에 정남, 정북 방향에서 바람이 불 경우엔 이착륙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논란이 많은 성산 제2공항의 활주로가 남북 방향인 이유가 문득 궁금해진다. 

바람의 파이터

첨부한 사진은 ‘Flightradar24’라는 전 세계 실시간 항공기 위치를 표시한 앱이미지다. 이 앱을 비행기 이륙 전에 켜보면 내가 타고 가는 비행기의 이동 궤적을 미리 예측할 수가 있다. 바람 방향이 헷갈리면 그냥 이 앱을 이용하시라. 제주 직전에 선회하는 비행기들의 위치를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또 인터넷이 안 되는 하늘 위를 날다 보면 발아래 지나가는 섬들이 어떤 섬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비행기 타기 전 앞선 비행기들의 궤적을 확대해 가며 미리 공부를 해두면 창밖으로 보이는 섬들과 도시, 지형지물들을 보다 알차게 즐길 수 있다. 
 

레이다.jpg


서울에 살 땐 뉴스에서만 보던 일기예보를 이곳 제주에선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옛날 옛적 김동환 통보관도 아닌데 풍향확인 후 구름사진만 보면 대충의 날씨와 비의 양, 바람세기도 가늠할 정도로 날씨 선무당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날씨에 민감한 이 곳 제주에서 살다보면 누구나 날씨박사가 된다. 그냥 본능적으로 바람을 느끼고 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늘 ‘바람의 파이터’로 살아간다.
 

바람을 알면 제주가 보인다. Must win the wind!

글 | 지준호
지준호 님은 전직 광고맨(오리콤, 제일기획 등), 10년차 제주이주민으로 구좌 세화리 부티크 제주민박 살롱드탱자와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을 운영 중입니다.‘바삭한 주노씨’란 작가명으로 브런치(httP://brunch.co.kr/@junoji)에 재치 있는 에세이와 패러디 광고를 쓰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탱자 가라사대] 풍향으로 알아보는 제주여행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