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지상의 쉼표
[수리수리 정가이버] 잇따른 ‘누수 전쟁’에서 승리하다

내 집이 되어간다는 건...

6년 전쯤 작은 마당이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어 주변 시세보다 싸기에 얼른 구입했는데 이사해보니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데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것저것 수리할 것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골머리 아픈 것은 누수였는데 옥상에서 빗물이 내려오는 배관이 새서 고생한 적도 있고 상수도 파이프의 연결 부위가 새서 1층 다용도실의 천정과 벽이 온통 얼룩지기도 했었다. 

2층 다용도실의 바닥에 묻힌 상수도 파이프에서 누수가 돼서 설비업자를 불렀더니 집이 오래 돼서 배관을 전부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공사기간은 한 달 정도 걸리고 수리비는 2천 만 원쯤 든다고 했었다. 엄청난 수리비도 문제지만 바닥을 뜯고 한 달씩이나 공사를 하면 짐들은 어떻게 하고 생활은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누수만 전문으로 하는 분을 소개 받아서 맡겼더니 40만 원에 말끔하게 수리가 됐다. 누수 전문 기술자가 배관 상태를 보더니 튼튼한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 있어서 앞으로도 수십 년은 끄떡없겠다고 했다. 작업 시간은 겨우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이번엔 화장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아파트처럼 관리를 해 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의 설계 도면도 없으니 누수 같은 문제가 생기면 참 막막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1층 화장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2층의 욕실에서는 배수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큰 공사가 되고 얼마를 들여야 할지 걱정도 되고 누구를 불러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서 물이 새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채로 한동안 불편하게 지냈다. 바쁘기도 했지만 업자들을 부르고 또 이리저리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귀찮고 싫었다. 

그러다 시간 여유가 생겨서 옥상의 빗물이 샐 때처럼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옥상의 빗물 배수관이 샐 때도 업자가 해결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직접 수리한 적이 있었다. 배수와 관련이 있으니 상수도는 아니고 하수도와 관련된 문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하수관이 주방의 싱크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식찌꺼기와 욕실의 머리카락 때문에 잘 막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수도에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P트랩이라고 하는 배관자재가 사용되는 것도 알게 되었다.

P트랩은 PVC파이프를 P자실제로는 U자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구조 때문에 음식찌꺼기 같은 것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쌓인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도록 P트랩의 아래 부분에는 나사 방식의 뚜껑이 포함되어 있다. 

 

수리수리1.jpg
P트랩. 화장실 천정 누수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2층의 배관이 바닥을 뚫고 내려온 다음 1층 천정의 마감재 위에 P트랩이 설치되어 있다. 2층의 배관을 청소하기 위해서 1층의 천정을 뜯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아래층의 협조가 없으면 배관을 청소할 수가 없다. 게다가 욕실의 천정 마감재는 모두 못으로 박아놔서 뜯어내려면 마감재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단독주택이야 상관이 없지만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협조하지 않아서 작업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1층 욕실의 천정 마감재를 뜯어내고 보니 생각보다 배관의 구조가 단순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진에서 봤던 P트랩의 뚜껑을 열고 청소를 했다. 상태로 봐서는 최소한 10년 넘게 청소를 하지 않은 듯 찌꺼기들이 엉켜 굳어서 완전히 꽉 막고 있었다(비위가 약한 사람은 청소하기 힘들 만큼). 청소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서 물을 흘려 보니 시원하게 잘 빠진다. 만세! 

수리수리2.jpg
수리수리3.jpg
파이프 연결부위는 실리콘 테이프로 마무리

구석구석 수리의 손길 

배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다 시원하다. 그리고 PVC라는 재질이 얼마나 내구성이 좋은지 30년도 넘은 파이프의 상태가 새 것 같은 모습으로 멀쩡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썩으려면 몇 백 년도 넘게 걸린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파이프의 연결 부위에서 물이 조금씩 새던 것은 실리콘 테이프라는 몇 천원 밖에 안 되는 물건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제대로 수리하려면 파이프를 잘라내고 다시 이어 붙여야 하는 모양인데 하수관이라 수압이 높지 않으니 실리콘 테이프를 꼼꼼히 감아주는 것만으로도 물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재질이 실리콘이라서 내구성도 아주 오래갈 것 같고 만약을 대비해서 텐트 수리용 테이프를 한 번 더 감아서 마무리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신경도 쓰이고 낡은 집이라 그런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씩 수리하며 손길이 갈 때마다 진짜 내 집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구석구석 손길이 안 닿은 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새 집에 살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정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래된 집에서 오래 자란 감나무엔 올해도 맛있는 단감이 잔뜩 열렸다.

수리수리4.jpg

내쫒기듯 한 이사가 전화위복

6년 전 전세로 살던 집에서 2년 계약기간을 채우자마자 비워 달라고 했을 때는 참 황당했다. 집주인이 계약 만료를 겨우 2주 앞두고 갑자기 통보를 하면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이사 준비할 시간을 더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학이 며칠 남지 않은 시기였고 알아보니 전세금도 2년 만에 50% 넘게 올라서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덜컥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집을 사버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되어 폭우가 쏟아지자 거실 한 구석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는데 한 방울씩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물줄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순간 집값이 쌌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했다. 벽지가 얼룩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두 해결했고 이제는 지난 일이 되어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오히려 요즘은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 6년 전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박하게 나가라고 하던 집주인에게 지금도 고마워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겪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모르겠지만 극복하고 이겨낸다면 훗날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 정한섭
1994년부터 통신과 방송 관련 장비를 개발하는 전자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빠로서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 bearfe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