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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탱자 가라사대] 맑은 날의 풍경

제주에서 보이는 낯선 섬들

 제주해안을 돌다보면 여러 개의 섬을 만날 수 있다. 제주 본섬과 바짝 붙어있어 해안 풍경을 보다 멋지게 살려주기도 하고, 배로 몇 분 안에 닿을 수 있어 섬 속의 섬에서 바다 건너 우뚝 솟은 한라산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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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부속 섬으론 동쪽에 가장 큰 우도, 남쪽에 바다를 바라볼 때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무인도인 지귀도·섶섬·새섬·문섬·새섬·범섬, 남서쪽엔 청보리로 유명한 가파도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서쪽에 차귀도와 비양도가 있다. 제주시에서 보이는 추자도는 제주시 추자면으로 부속 섬이긴 하나 거리도 꽤 떨어져 있고 예전엔 전라남도였기에 풍경과 사람들의 말씨도 제주보단 호남스럽다.

그런데 가끔 쨍하게 맑은 날 제주시나 동쪽 해안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떡하고 보이는 작은 섬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 마치 UFO를 본 것처럼 궁금증이 샘솟는다. 과연 어떤 섬들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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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에서 보이는 섬, 여서도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문을 연다. 내가 사는 세화바다 넘어 저 멀리 꽤 큰 섬 하나가 보인다. 여서도다. ‘흠 여서도 여서도가 보이니 오늘은 미세먼지가 괜찮군.’ 내게 여서도는 대기질 측정의 바로미터다.

‘아름답고 상서로운 섬’이란 뜻의 여서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해있어 완도에서 배를 타고 청산도를 거쳐 갈 수 있다. 직선거리로 완도보다 제주가 조금 더 가까운(완도에서 40km, 제주에서 41km),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척박하고 바람 많은 외딴 섬이다.

재밌는 건 여서도의 50명쯤 되는 주민 중 여자들은 대부분 제주 해녀 출신이라는 점인데, 예전 여서도 근처로 물질을 갔다 풍랑에 묶여 몇 주 동안 여서도에 머물다 현지 남자와 눈이 맞아 정착하신 분들이란다. 그래서 제주 해녀들 사이엔 ‘여서도 가면 애 배야 나온다’라는 재밌는 속담이 있다. 미세먼지가 아예 없는 날이면 여서도 뒤편으로 청산도가, 왼편으로 보길도·노화도·소안도 세 개의 섬이 중첩되어 보일 때도 있다.

조천·김녕·함덕에서 보이는 섬, 사수도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김녕이나 함덕 해안을 달리다 멀리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건 사수도다. 전라남도에선 ‘장수도’라 부르는 무인도인데 제주도와 오랜 기간 영토분쟁(?) 끝에 2005년 대법원 판결로 제주도 추자면에 귀속되었다. 풍족한 해양자원을 두고 사수도를 사수하려는 북제주군(현 제주시)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다.

제주시에서 보이는 섬, 관탈도

제주시에서 육지 쪽으로 크게 보이는 섬은 당연히 추자도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 점의 섬이 보인다면 그건 관탈도다. 추자면 부속 섬 중 최남단 섬으로 제주로 오는 여객선이나 비행기 안에서 제주 도착 직전 만나는 낯선 바위섬이 바로 이 섬이다.

‘관을 벗는 섬’이란 뜻인 관탈도는 대관탈도와 소관탈도로 두 개인데 아주 작은 무인도지만 제주항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맑은 날엔 쉽게 눈에 띈다. 예전 귀양 오는 관리들이 이 바위섬을 만나면 제주 상륙이 임박했다는 걸 직감하고 관을 벗고 북쪽을 향해 임금님께 절을 드렸다 해서 관탈도라 불린단다.

여기서부터 관을 벗고 죄수복으로 갈아입었을 당시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비장감이 든다. 논산훈련소에서 연병장에서 지인들과 마지막으로 헤어져 코너를 돌고 나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조교들처럼, 당시 죄인을 압송하는 관리들도 관탈도를 기점으로 전직 고관대작을 아작 내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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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 섬을 봤다면 거문도

우도나 성산 쪽에서 북동쪽으로 보이는 섬은 전라남도 여수의 거문도다. 여수와 제주 중간 지점에 위치한 다도해 국립공원 중 최남단인 이 섬은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무단으로 점거한 ‘거문도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거문오름처럼 색이 검어 거문도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옛 이름은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이었으나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거문도가 되었단다.

한라산에 올랐다면 가거도

지면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 가시거리는 약 30~40km라 한다. 그래서 북서쪽으로 110km나 떨어진 최남서단 섬인 가거도는 제주 바닷가에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가거도 독실산에서 제주를 찍은 사진이 있는 걸 보면 한라산 위에선 맑은 날 가거도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청산도 범바위에서 제주가 보였을 때 신기했듯, 이곳 제주에서 미세먼지 없는 날 육지 쪽으로 가끔 보이는 작은 섬들을 만나면 반갑기만 하다. 공기가 깨끗하니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건, 섬이 주는 덤이다.

글. 지준호
지준호 님은 전직 광고맨(오리콤, 제일기획 등)으로 일하다 8년 전 제주이주민이 되었습니다. 구좌 세화리 부티크 제주민박 <살롱드탱자>와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을 운영 중입니다. ‘바삭한 주노씨’란 작가명으로 브런치(httP://brunch.co.kr/@junoji)에 재치 있는 에세이와 패러디 광고를 연재하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