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지상의 쉼표
[인간극장] 슬기로운 효도여행

할매 캠퍼, 흥에 취하다

[인간극장] 슬기로운 효도여행.

취재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 밥상 구경을 다니다 보면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먹어 본 것 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어디가 좋아요?”
그럴 때 꼽는 것이 서천의 주꾸미 샤브샤브, 고흥의 갯장어 초무침이다. 특히 고흥은 워낙 멀어서 여행으로도 가보지 못했다. 취재 삼아 나선 답사길, 역시 명불허전! 한걸음에 놀라고 한걸음에 감탄사가 나온다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유자 향 퍼지는 고흥에서

그렇게 초여름에 면을 튼 고흥엘 이번 가을에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한걸음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는데, 그건 유자 때문이었다. 귤보다 더 밝은 노랑의 황금물결이 넘실댔다. 이 아름다운 고장에 와서 나는 한 할매를 떠올렸다. 2019년 만났을 때 나이가 95세였던 배일엽 할머니. 그녀는 아흔이 넘어서 캠퍼가 됐다. 맞다! 나무 장작 때서 밥 지어 먹고,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녀의 고향이 고흥이었다. 캠핑을 시작한 건, 3년 전. 막내딸 정진 씨의 성화 때문이었다.  

아홉 남매의 막내딸인 정진씨는 어머니와의 캠핑을 작심한 즉시 캠핑카를 샀다. 그리곤 한 달에 한두 번씩 어머니와 캠핑을 즐겼다. 다른 형제들도 시간 맞춰 어머니와의 여행에 동참했다. 그 캠핑카엔 늘 흔히 말하는 ‘뽕짝’이 흘러나온다. 그 흥에 맞춰 어머니는 손뼉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그녀의 노년을 물들인다. 허리도 굽고 무릎도 아프지만, 차에서 내리면 또 부지런히 걸으며 대한민국의 숨겨진 절경을 가슴에 하나하나 도장처럼 새긴다. 
 

GettyImages-jv11196845.jpg

엄마의 흥

이런 흥겨운 캠핑이 시작된 사건은 3년 전 어느 밤거리에서 일어났다. 유난히 우애가 좋은 형제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길이었다. 노래방 앞을 지나는데,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어머니가 흥에 겨워 춤을 추더란다. 자식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나이 90이 넘도록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 흥이 많은 분이었어?” 

놀란 자식들은 사실 확인을 해야 했다. 그 길로 어머니를 모시고 노래방을 갔다. 거기에서 자식들은 지금껏 몰랐던 또 다른 어머니를 만났다. 두 시간 넘도록 어머니는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어머니는 놀 줄도 모르고 흥 같은 건 아예 없는 그저 일만 하는 분인 줄 알았던 자식들은 충격에 빠졌다. 막내딸 정진 씨는 그때 결심했다. ‘엄마의 남은 인생, 즐거움으로 채워드리겠다!’ 

그렇게 캠핑카를 구입했다. 그리곤 방랑 효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경기도에 사는 막내딸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고흥에 내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캠핑을 했다. 언니 오빠들의 찬조 출연도 꽤 쏠쏠한 재미였다. 사실 재미야 있는 일이지만, 캠핑이란 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중년에도 쉽지 않은 일인데, 흥 많은 어머니는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 가자고 하면 언제든 따라나서고 또 캠핑을 온전히 기쁨으로 누렸다.  

여행의 마력

사실 이 모녀 여행은 고생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한 그들만의 치유 여행이며 힐링 여행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여행을 떠나 객지에 둘만 떨어져 있다 보면, 늘 하는 이야기는 고생을 바가지로 했던 옛날이야기가 가장 달콤했다. 또 음식은 그때 먹었던 ‘가난의 맛’이 최고였다.  

때로 막내딸 정진 씨는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기도 하는데, 난데없이 머리를 묶어 달라며 어머니에게 고무줄을 건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머리도 깔끔하게 묶어주고 예쁜 머리핀도 사줬는데, 엄마는 바빠서 한 번도 못 해줬잖아. 지금이라도 해줘.”
엄마도 그 당시의 서운함을 이해하는지, 흰 서리 내린 막내딸의 머리를 말없이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식욕도 어린 시절 그대로 재현됐다. 국수 삶아 맹물에 일명 사카린만 넣어 말은 설탕 국수 맛은 왜 그리 좋은지, 그 옛날처럼 후루룩 단숨에 해치운다. 그것 말고도 팔지 못하는 여름 굴로 만든 피굴, 말린 생선찜, 밀가루 개떡까지. 그들은 수십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밥상 위에 추억의 음식들을 펼쳐 놓았다.  

자식들이 이토록 어머니를 애달프게 챙기는 건, 아픈 가정사 때문이었다. 아홉 남매의 아버지는 여순반란 사건 당시 뭇매를 맞은 후유증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그런 남편 대신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했고, 아홉이나 되는 아들딸을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남편과 자식 아홉, 모두 열 명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어쩌면 배일엽 할머니조차 아흔이 넘도록 자신의 ‘흥’을 몰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나는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을 고흥 할머니를 통해 목격했다. 그나마 씩씩하고 단단한 딸이 너무 늦기 전에 어머니의 또 다른 얼굴을 찾아 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또 여기저기 아프다 방구들 지고 있지 않고, 가자는 대로 따라나서는 어머니는 또 얼마나 멋있는지, 아름다운 모녀 캠퍼를 만났던 기억이 유자 향기를 타고 나에게 왔다.  
 

GettyImages-a12605071.jpg

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나에게도 팔십 넘은 엄마가 있다. 특별히 작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엄마와 엄마 친구들 아홉 명과 같이 여행을 가게 됐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약한 어르신들은 나에게 의존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여행 계획을 짰다. 졸지에 여행지와 맛집을 안내하는 여행가이드가 된 것이다.  

친구들은 오지랖도 열두 폭이라고 핀잔을 줬다. 자신들은 자기 부모님 한 명 모시고 다니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그저 봉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별로 가보지 못한 힙한 카페, 아트 갤러리, 젊은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둘레길! 어르신들이 갈 만한 곳이 아니란 건, 그저 편견일 뿐이었다. 그곳은 아홉 어르신들에겐 신천지였고, 그들은 온전히 그것을 즐겼다.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어느새 그들의 행복한 얼굴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백 년 가까이 살아온 지혜의 눈을 가진 배일엽 할머니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흥에 취해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 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것을.
무 늦지 않게 사랑과 기쁨 받는 법을 알게 되어 나 역시 그 뜨거운 선물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 보령, 강화. 지난 겨울에 시작해 아직 일 년도 안 됐는데, 벌써 3차 여행을 마쳤다. 마지막 여행 때 내가 먼저 외쳤다. 

“다음은 어디 갈까요?”
어머니들이 환하게 웃었다.

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