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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사선은 둥근 생각을 품고 있다’

날카로움을 뒤로하고 온화함을 품으려는 당신에게

시인은 발견하는 자입니다. 현재에서 과거를 읽어내고, 과거에서 현재 삶의 의미를 발견해 냅니다. 시인을 대리해 화자는 시 속에서 자신을 읽어내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죠. 발견하려고 하는 의미는 어쩔 수 없이 관념적입니다.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거울이 필요하듯, 시에는 대상물이 존재합니다. 시적 대상이 자신의 삶일 경우, 시인은 성찰합니다. 대상이 시인의 가족이라면 성찰을 넘어 연민과 회한이 드러나기도 하죠. 시야를 넓혀 생태 환경을 구성하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시인은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내려고 하는 자입니다.  

당신이 보내주신 시집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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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행위는 발견된 의미를 확장하거나 비판적으로 공감하는 일입니다. 경쟁하듯이 바쁘기만 삶에서 시가 휴식이 되고, 그늘이 된다면 문학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용하는 셈이죠. 시인이 그려놓은 상상력의 영역에서 의미를 공유할 수 있다면 시의 효용은 극대화됩니다. 칸트가 들으면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어긋난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그건 칸트의 시각일 뿐입니다. 시가 독자를 외면하며 메마른 목소리로 벼랑을 향해 질주한다면 끝에는 절벽이 있을 뿐입니다.  

 

《사선은 둥근 생각을 품고 있다》는 당신이 세상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입니다. 첫 번째 시집을 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집을 발간하는 당신의 부지런함이 놀랍고 부럽습니다. 단지 부지런하기 때문에 시집을 다시 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자신과 주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애정은 관심에서 비롯하는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시집에 수록된 70여 편의 시들은 당신에게는 놓칠 수 없는 삶의 기록일 것입니다. 어떤 시에서는 대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즉물적 사고가 표현되어 있다가도, 어떤 시에서는 고통스러웠던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현실과 마주한 당신의 고백이 다양한 대상을 통해 표현됩니다. 

<사선은 둥근 생각을 품고 있다>는 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의 목소리를 응축해 전달합니다. 사선은 기울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직선입니다. 직선은 꿰뚫고 지나는 속성이 있죠. 날카로운 금속의 이미지입니다. 직선은 두 점의 거리를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공리입니다. 시집 전반에 펼쳐진 당신의 삶은 어쩌면 직선에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쁘고 치열했습니다. 가난과 불우한 환경이 시의 상황으로 구체화한 시들이 시집 곳곳에 실려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지금까지의 삶은 사선을 넘어 직선을 추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핍을 경험한 자들은 삶의 풍요로움을 욕망하기 마련이죠. 다시 결핍을 경험할 수 없었던 당신은 직선으로 반듯하게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당신의 인식이 극적으로 전환되어 나타난 시어가 ‘둥근 생각’입니다. 당신의 눈길이 닿는 곳은 ‘직립의 여느 단풍나무’가 아니라 ‘소요산 절벽 바로 밑’에 있는 ‘비스듬하게 서 있는’ 사선의 단풍나무입니다. 사람의 시선이 무엇을 보는가는 인지의 문제를 넘어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불안하고 무섭지 않을까’라는 사람들의 생각에 당신은 ‘기우다’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직선으로 무섭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를 비스듬하게 꺾어서 부드럽게, 둥글둥글하게’ 받아낸다고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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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의 삶을 추구했던 당신은 이제 ‘부드럽고, 둥근’ 생각을 합니다.

사선은 비스듬히 서 있는 직선입니다. 당신의 눈에 사선이 보인다는 것은 당신의 삶의 여정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수직이 되든, 수평이 되든 직선은 반듯하고 굴곡이 없습니다. 직선의 삶은 드라마가 없습니다. 성공했거나 매우 안온했을 테지만, 이야깃거리가 없지요. 그런 삶은 부럽기 짝이 없지만, 감동은 없습니다. 직선이지만 기울어 있는 사선에는 어떻게든 꺾이지 않으려는 아등바등한 삶의 이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묻어나는 성찰과 발견이 시집 곳곳에서 읽힙니다. <왜가리>, <이명의 감정>, <라일락>, <유빙> 등의 시편들은 당신의 삶의 바탕이었고 체험의 원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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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앞날개에 적힌 당신의 이력을 읽어봅니다.

자신이 마주한 결핍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제주 바다>) 결과를 보여줍니다. 일본 문학을 전공한 당신은 시를 쓰고, 번역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을 거쳐 오면서 당신의 인식은 직선과 사선을 지나 ‘둥근 생각’을 떠안기 시작합니다. 생각의 전환은 삶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둥근’이라는 말은 모나지 않고 원만합니다. 직선과 사선의 시간을 지나온 당신은 좀 더 유연하게 삶에 다가가려 합니다. 대상의 의미를 포용하고 너그럽게 감싸 안기 시작하면서 시는 좀 더 융숭해집니다. 상처받은 존재들에게 당신은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오래된 항아리를 위로하다>)라고 위로를 건넵니다. 특히 당신의 슬픈 가족사를 소재로 한 시들에서 당신은 지나온 시절과 애증이 얽힌 가족들과 화해하려 합니다. 날카롭고 뾰족했던 사선을 거두고 둥근 언어의 목소리로 당신은 가족들을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그걸로 대학을 다닌 아우는
형에게 밥을 사 먹는다고 하고서는
시집을 사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적금통장 같았던
형의 숨결과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며
술 마시다 말고 갑자기
길가에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 조팝나무 꽃을 찍어
훼손되지 않은 꽃향기를 보내온 아우에게  

형은
만기가 된 적금 통장을 찍어
문자 대신 답장으로 보내주었습니다.

_ 오석륜, <적금 통장>에서

사족인지는 모를 말을 하나 붙입니다.

이 시집을 보내준 당신은 저의 친형입니다. 8살이나 차이나는 장형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고, 또 조금은 모릅니다. 결혼하면서 살림을 나눈 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옛일이 떠오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입니다. 참고서 대신 시집을 읽고 있으면 당신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시 읽지 말고 공부를 더 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고등학교 때 시집을 읽으면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는 당신에게 불같이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국문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고등학생인 큰아들에게 시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8살 차이가 나는 동생에게 똑같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형제는 성장해서 각자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시를 읽으면서 비판적인 독후감을 서로 나눕니다. 언젠가 그러했듯이 당신에게 쓴 소리를 한 번 남깁니다. 인식이 조금 더 구조적이거나 상상력이 좀 더 입체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결같은 목소리는 진정성을 보여주지만, 시적 긴장의 재미는 떨어지니까요. 이 말을 듣는 당신의 표정이 금세 떠오릅니다. 형제는 오늘도 전화 통화를 길게 했습니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