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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우리 사랑이 그러했나요?

빗줄기와 물방울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카페에 들어왔을 때는 본격적으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젖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생각들이 빗방울을 따라 흐릅니다. 오후에 혼자 오르는 산은 많은 생각을 남깁니다. 호젓한 산길의 그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가 산을 찾는 이유를 다시 새기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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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천천히, 깊이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리를, 산길은 결코 성급하게 펼쳐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금세 오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산은 굳이 에둘러 돌아가게 합니다.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가보라는 것이지요. 산길은 제 몸 스스로 깊어지며 서서히, 서서히 어느새 하나뿐인 정상에 몸을 올려놓습니다.

고민의 출발은 언제나 하나이듯, 고민의 끝도 언제나 하나입니다. 산의 정상이 언제나 하나이듯이 말입니다.  

당신은 제게 결국은, 기다림이었습니다.

당신을 생각해봅니다. 딸꾹질처럼, 어깨결림처럼, 무방비상태의 저를 향해 어디선가로부터 걸어오고 있는 당신을, 저는 엉켜버린 실타래의 실마리를 풀듯이, 헤아려보고 있습니다.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허리통증이나 묵직한 어깨결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몸 속 어딘가에 외면당하고 있던 근육이 소리를 내며 자신을 알리는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왔을 때 불쑥 떠오르는 생각들도 그런 종류의 것들이겠죠. 제 몸, 혹은 정신의 어느 곳에 침묵하고 있다가 ‘여기 나도 있으니 날 좀 봐줘!’라고 말을 건네는 제 삶의 흔적들입니다.  

딸꾹질이 그러하듯, 이런 생각에 휩쓸리면 한동안은 다른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것들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저는 기다려 주어야만합니다. 당신에게도, 저는 그랬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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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시간을 먹고 자랍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이 없고, 크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이에게 시선조차 보내지 않습니다. 혼자 않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어폰과 연결된 노트북을 응시하면서 정물처럼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나는 지금 절박하게 내 시간이 필요하니, 제발 관심을 거두어주시오’라고 말을 할 것처럼, 사람들은 온 몸으로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용하고, 한편으로는 외롭습니다. 꽤나 넓은 공간이 사람들 하나하나의 침묵으로 경계가 구분됩니다.

 

밖을 무턱대고 바라보는 것. 타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저의 시간을 온전히 즐겨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관찰이 되었건, 응시가 되었건, 혹은 무념의 시간 버리기가 되었건 말입니다. 생각도 버리고 비울 때 다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어쩌면 당신에 관한 기억은 이런 시간을 먹으며 자라고 있던, 제 몸 속에 있는 근육과 같은 건지도 모릅니다.

직선의 힘보다 곡선의 반복이 튼튼합니다.

빗물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순간을 바라봅니다. 지상을 향해 내리칠 때는 직선으로 다가오더니 유리에 내려앉는 순간, 방울의 형태로 곡선을 그리며 창문을 타고 내립니다. 직선이 개인적 추구와 자기 선택을 지향하는 욕망의 언어라고 한다면, 곡선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는 성찰의 언어입니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은 더 높이, 더 빨리 오르려는 직선의 생각이 몸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반면, 산을 내려올 때 느끼는 여유와 편안함은 확실히 곡선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직선의 추구가 높이에 닿아있다면 곡선의 추구는 폭과 너비에 펼쳐져있습니다. 그래서 높이 올라가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가파르게도 추락할 수 있지만 곡선의 떨어짐은 완충지대가 생기는 건 아닐까요. 이럴 때 곡선은 휘어짐으로 인한 일탈이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단단한 중심을 만들기 위해 언저리를 계속 매움으로써 보다 튼튼해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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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제가 처음 만나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직선과 직선으로 만났지요. 당신이 가지고 있던 이 불온한 세상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은 분명히 직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돌이켜봅니다. 그때의 저는. 확실히 누구보다도 직선을 닮아있었습니다. 굽힐 수 없다는 자존심과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만든, 날카롭고 상처를 내게 하는 금속성의 직선. 그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유리창에 흐르는 비는 사람을 돌아보게 합니다 .

유리창을 바라보다 잊고 있던 진실을 다시 떠올립니다. 유리창은 단절과 매개의 이중적 속성을 가집니다. 밖과 안을 구분함으로써 단절의 의미를 가지지만 투명하기 때문에 안과 밖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개의 의미도 있습니다.  

직선과 직선의 만남은 결국 어긋나게 되어 있지요. 반면 곡선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 섞이고 엉켜 한 덩이로 뭉쳐집니다. 흩어지며 따로 가는가싶더니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서는 어느새 다시 뭉쳐있습니다. 경계와 경계가 무너지며 이내 새로운 경계를 만드는 물방울을 보며 저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우리의 삶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직선의 빗줄기와 곡선의 물방울은 우리의 사랑을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은 쉽게 기억되는 데 비해 이별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지요. 어느 순간부터 균열이 생기고 엇갈리기 시작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유리창을 보며 느낍니다. 이 아둔함과 어리석음 앞에 저는 또 한 번 고개를 떨구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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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송곳 같은 직선의 모습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일이 없는, 둥글게 안으로 서로를 켜켜이 채워가는 곡선으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아니, 당신이 설사 직선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제가 곡선으로 당신을 너그럽게 껴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있을,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도 비가 내린다면, 천천히 시간을 닦듯이 유리창을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헤어진다는 것도 결국은 엇갈림입니다. 그러나 엇갈린 것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마치 직선과 곡선의 영원한 변증법처럼 말입니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