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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 에피소드]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서’

초창기 커피는 왜 ‘유럽여성의 적’이 되었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문명권에서 건너온 농작물이 첫선을 보일 때 대개 본래의 맛이나 영양가치보다 약재로써의 효능에 주목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코코아, 담배, 사탕수수 같은 기호품은 물론이고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 역시 유럽에 처음 소개될 때는 병을 낫게 하는 약용식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럽에 커피가 상륙한 초창기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커피는 그야말로 쓰임새가 넓은 신통한 약재였습니다. 17세기 중후반 유럽 중심국으로 커피가 전파될 때 이 낯선 열매는 거의 모든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단기간에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도입 초창기에 커피의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와 재미난 에피소드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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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에서 만병통치약이었던 커피 

1671년 당시 유럽문명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 책에는 커피의 효능에 대한 예찬이 너무 지나쳐 보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커피는 차갑고 축축한 체액을 말리고 간을 이롭게 하며 부종을 완화한다. 옴이나 괴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하며 심장의 열을 내리고 심박수를 조절해 심신을 평안하게 해준다. 복통을 완화하고 식욕 감퇴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심지어 유럽인들은 뜨거운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안질, 이명, 기생충 치료에 탁월하다는 믿음을 가져 실제로 그런 치료법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다방면에 의학적 효과가 뛰어나고 맛과 향까지 탁월한 이 새로운 음료가 대중들에게 확산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커피하우스의 등장을 계기로 커피는 더 이상 약이 아닌 하나의 대중 음료로 완전히 정착되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하나의 완전한 대중음료가 되었습니다. 

‘남성만의 커피문화’에 반기를 든 여인들 

그런데 날로 확산되는 커피가 당시의 유럽 각국의 여성들에게는 큰 골칫거리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남편들이 가정을 등한시 한 채 커피하우스에서 밤을 새고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입니다. 각성효과가 있는 커피는 졸음을 쫒기 때문에 남편들은 피곤을 잊은 채 밤새 커피하우스에서 토론과 유흥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먹을 빵 대신 커피를 사는데 돈을 써버리는 것도 불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부들을 가장 화나게 한 건 거의 매일 밤 집을 비우는 남편 때문에 소홀해진 부부관계였습니다. 

실제로 1674년 영국에서는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서’가 런던시에 접수됩니다. 정식으로 인쇄돼 런던시내에 뿌려진 팸플릿에는 커피금지령을 요청하게 된 이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은 이 청원서에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남자로 칭송되던 영국남자들이 커피 때문에 정력을 잃어 침대 위에서 참새처럼 나약해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불결하고 시커멓고 끈적거리는데다 독한 향까지 나는 이교도의 걸쭉한 오수(汚水)를 왜 그토록 마시려하는가”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60세 미만의 남자에게는 커피 판매를 금지하고 대신 맥주와 코크에일(발효 중인 맥주에 닭고기를 첨가해 만든 영국의 보양술) 판매만 허용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원서는 남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담은 이런 문구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남편들이 단지 턱수염만으로 진짜 남자임을 증명하려 들지 않기를 바란다.” 
 

파리의 커피하우스(위키미디어).png

커피에 대한 여성들의 반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재로 유럽에 소개된 커피는 사람들에게 많이 마셔도 아무 해가 없는 음료로 인식되어 오남용되었습니다. 일례로 파리의 ‘르 프로코프’란 카페의 단골손님이었던 문학가 볼테르(Voltaire)는 하루 평균 약 40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렇듯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다보니 커피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의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가 들어온 후 부부관계가 뜸해지거나 발기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경험한 영국의 주부들은 ‘커피가 남자의 정액을 빼앗는 물질’이라는 새로운 의학이론이 나오자 ‘커피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커피금지 청원 사건은 남자들의 반대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시의 커피 붐(Boom)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줍니다.  

여성들에게 커피가 이렇듯 심각한 적으로 간주된 또 다른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이들이 커피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초기의 커피하우스나 카페는 여성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남자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남녀평등이 인류적 가치로 인식된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은 생산 활동을 돕는 보조적인 노동력이자 남편을 위해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종속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때문에 여성에게 값비싼 커피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사실 어지간한 부잣집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는 ‘사치’였던 것입니다. 

여성들도 커피의 매력에 흠뻑

하지만 커피가 언제나 남성의 전유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기회에 우연찮게 커피를 마셔본 여성들도 곧 이 검은 액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듭니다. 문제는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자기 집 주방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고가의 기호품이 남편에게 들키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요.  

당시를 배경으로 한 한 중세소설에는 오후가 되도록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여주인공의 심리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나가야 주방에서 커피를 끓여 마실 텐데 어쩐 일인지 외출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 온갖 이유를 만들어 결국 남편을 집밖으로 내보내는데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성들에게도 커피는 사교의 도구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웃을 초대해 커피 한 잔을 나누다보면 몇 년 전 자신들이 청원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원래 여자의 전유물이었지만 커피하우스의 남자들에게 빼앗겼던’ 수다의 재미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굴욕은 그때까지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커피 가격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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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오래된 카페 '르 프로코프'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