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 테이스터] 5가지 속성과 그 너머의 감성

커피를 기억하는 법

어쩌다 맛본 기분 좋은 커피를 다시 만나려면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듯 해야 한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의 점 하나까지’ 세세하게 그리는 심정으로 그 커피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커피 맛에 이름이 없는 탓에 나에게로 와 꽃이 되지 못한다. 무명(無名) 커피에 이름을 붙이려면, 커피를 마실 때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나의 관능에 감지되는 속성을 주욱 따라가며 일일이 소리내 말로 불러주는 게 좋다. 언어를 통해 이름표를 달 때 커피는 비로소 실체화한다. 
 

KKS8125.JPG

아로마

커피를 머금으려 입에 대려는 순간, 코는 아로마(aroma)를 감지한다. 커피가 지닌 가장 가벼우면서도 살집이 있다고 할 정도로 볼륨감 있게 다가오는 물리적 감각이 향이다. 그 아로마가 머릿속에 솜사탕, 딸기잼, 패션프루츠 등 특정 속성을 지닌 사물을 이미지로 떠오르게 한다면 그 커피를 예컨대 패션프루츠라고 불러도 좋다. 

향미

입에 들어온 커피는 미각을 자극해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고, 그것은 다시 아로마가 자극한 후각의 전기신호와 어우러지면서 향미(flavor)가 된다. 

산미

커피가 입에 들어오거든 산미(acidity)부터 따질 일이다. 커피들은 정도와 질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신맛을 지니고 있다. 좋은 커피의 경우 단맛이 주변을 받쳐주는 덕분에 산미는 과일의 모습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입 안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감각되는 탓에 껄끄러움이나 이물감, 때론 마른 느낌과 같은 촉감이 초산이나 유기산과 같은 날카로움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신김치나 시큼한 식초로 불린다면 커피에게 그만큼이나 불행한 이름은 없다. 

바디

다음으로 체성감각(somesthesis)의 결과물인 바디(body)가 인격처럼 커피에 고유의 가치를 부여하는 차례가 온다. 바디는 커피나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보디’ 또는 ‘바디감’이라고 불리는데, 커피가 입안에서 끼치는 물리적인 느낌이 물에 가까운지, 우유에 가까운지를 표현하는 지표이다. 물에 가까우면 바디가 가볍다고 하고, 우유에 가까울수록 무겁고 부드럽다고 한다.
바디를 후각이나 미각보다 둔감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아로마와 향미, 산미가 유사한 수준의 커피인 경우에는 체성감각이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단맛이 좋아도 꿀이나 잼을 연상케 하는 질감이 따르지 않는다면 밍밍하고 향미의 입체감도 떨어지게 된다. 촉감으로 인해 이런 뉘앙스를 주는 커피들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여운

마지막 속성이 커피를 삼킨 뒤 길게 이어지는 향미를 즐기는 여운(aftertaste)이다. 커피가 지닌 속성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거나 단맛이 부족하면 여운은 짧아진다. 그렇게 되면 사유(思惟)가 단절된다.

커피꽃 2. 콜롬비아 킨디오 (2).JPG

111.jpg

커피는 체리처럼 탐스러운 열매에 들어 있는 씨앗이다. 볶은 뒤 나타나는 쓴맛에 앞서 본질적으로 우리를 깊은 사유로 이끄는 좋은 향미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감성

좋은 커피는 우리를 행복에 빠져들게 하는 감성을 만들어낸다. 그 커피가 내 몸으로 들어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나의 관능이 되고 나의 일부가 된다. 감성은 깊은 사유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운 사람을 언제나 사모하는 것처럼 그 커피를 더욱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커피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5가지 속성과 더불어 그 너머에 있는 감성에 닿아야 한다. “입가의 미소까지 그렸지마는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랫말과 다르게 ‘그 마음까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 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했고, 현재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년《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