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로드] 커피가 지나간 자리 ①

에티오피아, 튀르키에(터키), 이탈리아

[커피로드] 커피가 지나간 자리①

커피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고, 커피가 지나간 자리에 저마다 독특한 커피문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알고 마시면 커피가 더욱 맛있겠죠? 커피로드, 첫 번째 여정은 에티오피아, 터키, 이탈리아입니다.

 

코로나로 묶여있던 해외여행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여름휴가 채비를 하며 설레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외국에서 커피를 마실 때 나라마다 커피에 얽힌 문화와 역사를 알면 더 즐겁겠지요. 커피 로드로 떠나볼까요?

먼저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입니다. 커피열매를 처음 발견한 건 오로모(Oromo)족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커피열매를 통째로 말린 뒤 동물 기름과 섞어 끓여 마셨습니다. 오로모족은 이를 의식으로 발전시켰는데 ‘부나 칼라(Buna Qalaa)’라고 합니다. ‘커피를 살육한다(Slaughtering Coffee)’는 뜻인데, 동물 대신 커피로 제물을 대체한 일종의 사육제인 것이죠.

 

에티오피아 커피 세리머니(Ethiopian Coffee Ceremony)와는 다른 건가요?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로 부릅니다. 커피 열매의 씨앗만을 골라내 볶은 뒤 물에 끓이면서 카르다몬이나 정향 등 향신료를 넣어 음료로 마시는 방식이죠. 여기서 분(Bun)은 커피를 뜻합니다. 그런데 커피를 로스팅해서 마시기 시작한 건 16세기경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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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나 마프라트 

터키에서 대중화된 커피, 600년 이어온 추출법

커피 로스팅 역사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해지고, 7세기 이슬람교가 등장하면서 종교 음료로 무슬림 사이에 퍼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 등 아랍국가에 커피가 전파되면서 씨앗에 카페인이 농축돼 있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더욱이 열매보다 씨앗 상태로 운송하는 게 간편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씨앗을 볶아도 각성과 에너지 증진 효과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터키에 가보면 커피가루를 물에 넣고 끓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터키시, 제즈베, 이브릭’으로 불리는 커피 추출 방식입니다. 커피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는 추출법이죠. 15세기에 대중화되어 지금도 애용되고 있으니 600년을 이어왔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바닥이 넓고 손잡이가 긴 도구(제즈베, 이브릭)에 커피가루를 가늘게 갈아 물을 넣고 끓입니다. 커피가 끓을 때 설탕과 향신료를 넣으며 3번 끓였다 내림을 반복합니다. 작은 잔에 따라 주고, 마신 뒤에는 잔을 뒤집어 두었다가 마시는 사람의 운명을 알려주는 ‘커피점’을 칩니다.

터키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 지중해 연안 국가로 여행가는 분들은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중해 방식 커피(Mediterranean Coffee)’라고도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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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역사에서 유럽은 아직 등장하지 않네요. 커피하면 이탈리아 아닌가요?

터키에서 커피가 종교음료에서 벗어나 대중화됩니다. 17세기 들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하거나 지중해 연안의 레반트(Levant) 지역을 탐험한 유럽 여행가들에 의해 커피가 목격되죠. 여행가들이 보기에 와인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검은색’ 음료를 마시는 것을 보고 커피를 처음에는 ‘아라비안 와인’, 커피나무의 꽃을 ‘아라비안 재스민’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니스 상인의 안목, 커피를 수입하다

커피가 종교음료에서 벗어나 대중화했다면 그리스도 국가인 유럽으로 전해지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건가요?

11~13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로 터키를 관리합니다. 터키와 교류가 잦았던 이탈리아 베니스 상인들이 1615년 베니스로 커피를 들여옵니다. 커피가 유럽 땅을 밟는 순간이죠. 1000년간 아랍에 갇혀 있던 커피가 마침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벗어나 유럽 그리스도 국가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커피는 마침낸 에스프레소로 변신한 건가요?

그렇습니다만 에스프레소가 등장하려면 300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터키의 영향을 받아서 모두 커피가루를 물에 넣어 끓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터키시는 아랍 권역에서만 전해지는 특이한 방식인 줄 알았는데, 유럽에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마셨군요. 유럽만의 특이한 방식은 없었나요?

유럽의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커피는 더 이상 마호메트를 살린 종교음료가 아니었습니다. 맛을 추구했고, 여기에 큰 역할을 한 게 프랑스입니다. 1711년 프랑스 귀족들이 커피 찌꺼기를 천으로 걸러 마시는 법을 개발한 것이죠. 커피 추출역사에서 필터레이션(여과법)이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이제 커피는 잠을 깨우거나 에너지를 높여주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향미를 추구하는 기호음료로 부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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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니스(베네치아)가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도시군요.

그렇습니다. 마침내 커피가 마호메트의 음료라는 종교적인 색채를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탈리아라고 하면 로마에 교황이 있지 않습니까. 이슬람의 음료가 단숨에 그리스도 국가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를 파고들었네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항간에는 일부 여행자들을 통해 커피가 퍼지면서 악마의 음료라는 논란이 일었지요. 그런데 교황 클레멘스 8세(재위 1592년~1605년)가 커피에 세례를 줍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이슬람교도만 먹게 할 수 없다”며 커피 음용을 허용한 것이죠.

 

교황이 허용을 하니 마음껏 커피를 수입해 팔 수 있던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장사의 귀재, 베니스의 유대상인들이 큰돈이 될 것을 간파하고 터키에서 커피를 들여옵니다.

 

베니스, 로마, 피렌체, 나폴리

그럼 베니스에 가면 커피와 관련해 가장 오래된 뭔가가 있는 것인가요.

베니스에 가면 많은 분들이 산마르코 광장을 찾습니다. 복음서를 쓴 마르코, 마르쿠스, 말구라고 불리는 성인의 유해가 있는 곳인데요. 광장의 남쪽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있습니다. 1720년에 문을 열어 300년 이상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커피하우스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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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플로리안 

 

역사가 깊은 만큼 사연도 많겠네요.

베네치아 출신으로 여성편력가로 유명했던 카사노바(1725~1798)가 당시 카페로서는 유일하게 여성 출입을 자유롭게 했던 카페 플로리안의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37살의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곳을 찾아 글을 쓰기도 했어요. 루소, 바그너, 니체, 모네, 헤밍웨이 등도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로마를 찾는 분들도 많을 텐데, 그곳에서는 어디를 둘러봐야 하나요.

아무래도 1953년 개봉한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 중 하나인 스페인광장이죠. 오드리 헵법이 언덕 위 삼위일체성당으로 향하는 137개 계단 중 13번째 계단에 앉아 젤라또를 먹습니다.

젤라또는 이탈리아 전통 아이스크림인데 16세기 피렌체 출신의 건축가이자 요리광이었던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 1531~1608)가 개발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내려오는 길에 피렌체에 들르면 젤라또 페스티벌도 구경하고 다양한 젤라또 셰이크 카페 메뉴도 맛보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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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 컷 

 

로마에도 유서 깊은 카페가 있겠죠?

스페인 광장 옆에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가 있습니다. 1760년 문을 연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죠. 에스프레소 한 잔이 7유로 정도입니다.

 

- 이탈리아 남부로 가보죠. 나폴리에 가면 무슨 커피를 마시면 좋을까요?

역시 에스프레소인데, 나폴리의 에스프레소는 가장 이탈리아다운 에스프레소라 할 수 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 암반지대를 거쳐 나오는 물이 에스프레소를 만드는데 가장 이상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더운 지역답게 묵직한 맛이 특징입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로부스타 원두를 섞습니다. 13종을 블렌딩한 것도 있습니다.

 

나폴리가 더워서 그런 묵직한 커피를 즐기는 것인지.

커피는 본래 같은 나라라도 위도가 높은 서늘한 지역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쓴맛과 단맛이 강해집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중 가장 강한 맛이죠. 그런데 잘 보면 나폴리는 그리 더운 곳이 아닙니다. 서울이 북위 37도, 백두산이 41도, 로마가 41도인데 나폴리는 신의주와 비슷한 40도 정도입니다. 이탈리아 커피 문화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쓰고 단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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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커피비평가협회(www.ccacoff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