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 테이스터] 음료 그 이상의 무엇이 되기까지

커피, 그 가치와 은유에 대하여

커피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우선 커피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커피를 단지 음료라고만 하기에는 허전하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적지 않은 돈을 들이면서까지 습관처럼 들이켜는 것을 봐도 그렇다. 커피에게는 분명 인류를 매료시킨 무엇인가가 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혼란스럽다. 커피의 마력이라는 게 커피 자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커피를 도구로 삼은 모종의 세력에 있는 것인지…. 커피에 대한 진실 규명은 마땅히 탄생의 비밀을 푸는 데에서 시작된다. 애초 커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일까? 커피의 역사에서 최초의 지점들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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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자라고 있는 북예멘 고산지대의 계단형 커피밭. 예멘은 인류가 커피를 최초로 경작한 국가이다. 출처:《커피인문학》

17세기 카페는 ‘만병통치약 판매소’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은 역사적으로 커피의 초기 모습과 그것에 대한 인류의 대응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에 적절하다. 중동의 국가들이 연합해 2015년 세계유산에 올린 ‘너그러움의 상징, 아랍 커피(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는 ‘커피의 진귀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랍 커피’가 시작된 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커피를 볶아 추출해 나눠 마시는 내용을 보면 14~15세기에 형성된 문화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에티오피아 세리머니’로 알려졌지만, 정작 세계유산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의 전통문화인 것으로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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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너그러움의 상징, 아랍 커피(Arabic coffee, a symbol of generosity)’. 손님을 정성스레 대접하는 중동의 환대문화를 상징한다. 출처: 유네스코(https://ich.unesco.org) )

생물학적으로 아라비카, 카네포라 커피가 발생한 곳은 아프리카이지만, 인류에게 다가와 문화를 만들고 대중화한 곳은 서남아시아의 아랍권이다. 자연적으로 열리는 것만 따는 것으로는 양에 차지 않아 경작을 시작했던 곳이 예멘이고,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곳은 지금의 이란이다.

구전에서 커피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최음제, 건강식, 주술의 도구 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9~10세기부터 중동과 독일, 영국 등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기록들을 보면 커피는 약이다. 라제스는 위장병 치료를 위해 커피를 처방했고, 16세기에서야 처음 유럽에서 발견되는 독일 의사인 라우볼프의 기록에도 커피는 위장약으로 묘사됐다. 약의 속성 중 하나는, “쇠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처럼 희소성이다.

이슬람권에서 커피는 잠을 쫓아 줌으로써 수피교도들에게 금욕주의의 실천을 돕는 역할을 했다. 신을 직접 만나고자 했던 무슬림들에게 황홀경으로 이끌어주는 커피는 ‘신의 음료’였다. 이즈음 커피는 이데올로기의 도구로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종파와 부족장들은 비싸고 귀한 커피를 확보해 나눠 마시는 것으로 리더로서 위상을 높이고 세를 결집했다. 커피는 마실수록 정신을 또렷하게 만드는 효능 덕분에 ‘깨어 있는 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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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전파에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분파인 수피교(Sufism)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세마(Sema) 의식을 치렀다. 수피댄스 또는 데르비쉬(Dervish)로 불리는 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출처: 유네스코(https://ich.unesco.org) )

이로 인해 아랍의 커피는 외교의 도구로까지 발전한다. 17세기 오스만튀르크는 합스부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에 술래이만 대사를 파견했는데, 커피로서 프랑스 귀족을 홀렸다. 커피는 희귀성과 함께 이국성(exoticism) 덕분에 음용자에게 권력을 누리는 기분을 선사했다.

1652년 런던에서 처음 문을 연 카페의 광고를 보면 ‘만병통치약 판매소’처럼 보일 정도이다. 몸에 찬 화를 빼주고, 부종과 통풍을 없애주며, 괴혈병과 폐 질환과 위장병을 없애준다는 등 음료보다는 치료제로서 호객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거대 시장이 되자 커피의 가격은 내려갔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에서 생산한 커피들이 대량 수입된 덕분이다.

이성을 일깨우는 묘약 ‘아라비아의 와인’

이처럼 커피가 대중화되고도 높은 위상이 꺾이지 않은 비결 중 하나는 지식인들의 은유 덕분이다. 문학적인 표현은 커피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사실 커피를 은유한 것은 13세기 중동에서 시작됐다.

기록에 등장하는 커피에 대한 최초의 메타포어는 ‘아침의 포도주’이다. 이슬람 마울라위야 종단을 창시한 수피이자 시인인 ‘잘랄 앗 딘 알 루미’가 13세기에 남긴 시 ‘입술 없는 꽃’은 “깨어나라, 아침이므로 / 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라 / 팔을 벌리라 / 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커피의 어원이 포도주를 의미하는 아랍어 ‘까흐와(Qahwa)’라는 주장이 있으며, 16세기 레반트를 여행한 유럽인들도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불렀다. ‘아침의 포도주를 마신다.’라는 것은 수피교 종교의식에서 커피를 통해 잠(또는 죽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상징한다. ‘취할 시간’은 황홀경에 빠져 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이 시기 수피교도들은 커피를 통해 신을 만나고자 했다. 무슬림 사이에서 “커피를 조금이라도 마신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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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당시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그린 작자 미상의 작품. 당시 커피는 만병통치약처럼 간주되며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피의 역사에서 16세기 중반은 ‘종교의 한계를 벗어나 대중화한 시기’로 기록된다. 오스만튀르크의 안방인 이스탄불에서 커피에 대한 은유는 신비주의를 벗고 인간의 체취를 풍기게 됐다. 1587년 압달 카디르가 저서에 소개한 아랍어 시는 “오, 커피! / 모든 번뇌를 잊게 하는 그대는 학자들에게는 갈망의 대상 / 신의 벗이 마시는 음료 / 지혜를 쫓는 자들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음료”라고 읊었다. 커피는 금욕주의 실천을 돕는 수도승의 도구에서 지식인의 이성을 일깨우는 묘약으로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음료 그 이상의 무엇

일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효과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18세기가 저물 때까지 커피 효능의 정체를 알 수 없던 탓에 비유 역시 두려움과 찬사의 양극단을 오갔다. 바흐를 통해 커피는 마침내 예술의 영역에까지 들어갔는데, <커피 칸타타>에서 아버지 쉬렌드리안은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딸이 몹시 걱정스러워 “커피를 끊지 않으면 결혼식을 취소하겠다”라고 위협한다. 하지만 딸 리첸은 “커피는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와인보다 달콤하다”면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에 들어서 프랑스 총리에 오른 탈레랑은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고 정의하면서, “지옥처럼 뜨거우면서도 천사와 같이 순수하다”고 덧붙였다. 과학혁명의 시대를 지나 산업혁명의 한 복판에서도 커피에 관한 은유는 신앙고백과 같은 중세 분위기를 맴돌고 있었다. 이러한 굴레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주역이 1819년의 괴테였다.

칠순에 접어든 괴테는 검은 커피에 분명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직관했다. 파우스트 1부를 탈고한 지 어느덧 11년. 후속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던 그는 ‘악마의 유혹’이란 곳곳에 깔려 있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괴테의 부탁에 따라 스물다섯 살 젊은 화학자 프리드리히 페르난드 룽게가 카페인을 찾아냈다. 커피가 지닌 유혹의 근원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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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가 주는 행복은 다채롭고 종종 예상을 벗어난다. 유리잔에 비치는 색상이 향기와는 다른 영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제 커피를 향한 은유는 추상의 자리에서 현실로 내려와 사실주의 문학의 이정표를 세운 발자크에게 밤을 지켜주는 벗이 돼 주었다. 1830년대에 쓴 수필 ‘커피의 즐거움과 고통‘에서 발자크는 커피가 위장으로 들어가 활약을 펼친다고 적었다. 그는 “(커피로 인해) 기억은 살아나고 두뇌의 논리적 활동은 사색을 더욱 촉진한다”라며 카페인의 메커니즘을 꼭 짚어냈다.

커피의 가치는 현실을 넘어 저 멀리 정신세계에 있는 게 아니다. 실존주의 시대에 커피는 향기로 인해 우리를 사색으로 이끌어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하루 40여 잔의 커피를, 그것도 각설탕을 잔뜩 넣어 마신 키에르케고르는 커피를 마시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색상에 더 집착했다. ‘피아노맨’을 노래한 빌리 조엘은 “커피잔 속에 위안이 있다”고 고백했다. 커피가 그에게는 멜로디였던 까닭이다.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은유처럼 ‘커피는 음료 이상’이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