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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그녀들의 ‘이어도’

동행, 그걸로 괜찮은 인생

[인간극장] 그녀들의 ‘이어도’ |

생년월일이 같은 친구가 있다. 재수를 하고 대학을 들어온 친구라 늘 반말 하는 게 미안스러운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민증을 까보니 나와 생년월일이 같았다. 여태껏 오빠인 줄 알았던 배신감과 함께 뭔지 모를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여기 있다니!’ 왠지 반갑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빌었다. 믿거나 말거나 사주팔자라고 해도, 괜스레 그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나에게도 그만큼 같은 행운이 돌아올 거 같았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흔히 말하는 갑장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데가 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많은 것을 경험했을 거라는 묘한 동질감이다. 그래서 동갑내기끼리는 더 빨리 친해지는 경험을 자주 하곤 한다.  

이름도 나이도 같은 제주 두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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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촬영을 준비하던 중, 새로 온 취재 작가가 제주 해녀를 섭외했다. 워낙 제주 해녀는 섭외가 쉽지 않아, 늘 난이도 중상의 섭외대상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한경면에 사는 한 해녀 어멍이 꽤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해녀 소리인 ‘이어도 사나’를 잘 부르며 요리하는 걸 좋아해, 옛 음식들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출연 후보자였다. 그런데 취재 작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야기를 덧 붙였다.

“그런데 작가님, 친구 분이 있대요. 근데요 이름이 같아요.”
“이름이 같다고? 할머니 이름이 뭔대?”
“이 할머니는 김임생인데요 친구 분은 고임생이래요.”
“임생은 무슨 뜻이야?”
“글쎄요... 그건...”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 동명이라니…. 그런데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부부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의 사랑 이야기는 참 많이 했지만,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는 새로운 아이템이었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취재를 해보니 두 사람은 공통점이 이름만이 아니었다. 다른 마을에서 이곳으로 시집 온 것도 그렇고, 나이도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또 있었다. 10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은 남편을 잃었다. 그 전에도 친하게 지냈지만, 그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친자매보다 친한 동갑내기 ‘임생’ 해녀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하고 섭외를 마쳤다.  

‘저승에서 번 돈 이승에서 쓴다’

드디어 답사를 가서 김임생 어멍을 만났다. 제주 여자들의 강인한 생활력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김임생 할머니 역시 어디 빠지지 않는 억척 어멍이었다. 혼자 사는 집은 깨끗하게 정리해 민박집으로 활용하고, ‘산듸쌀’이라고 해서 밭에 벼를 심어 쌀을 수확했다. 쌀과 온갖 채소들을 심어 수입을 올렸다. 물론 그녀의 가장 중요한 삶의 현장은 ‘제주 바다’, 예순 일곱이 되도록 50년을 하루 같이 바다로 뛰어 들었다. 해녀의 물질은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있는 오래된 노동. 그녀들은 자신들의 밥벌이를 ‘저승에서 번 돈 이승에서 쓴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 한 마디로도 그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다.
한 참 해녀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려니, 동갑친구 고임생이 등장했다. 나타나자마자 두 사람은 우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방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중에 통역을 해보니, 내일 아침 차귀도까지 가서 물질을 하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일찌감치 해녀복을 챙겨 입고 바다로 뛰어든 두 사람, 마치 돌고래 쇼를 보듯 한 명이 들어가면 또 한명이 따라 들어가고, 또 한 명이 나오면 따라서 또 한 명이 수면 위로 치솟아 올랐다. 뭔가 리드미컬한 공연을 보는 듯 했다. 혹여나 큰 녀석이 잡히면 서로 들여다보며 알 수 없는 말들로 수다를 떨었다. 한 시간 만에 뭍으로 나온 그녀들의 망태에는 소라와 제주말로 배말이라는 삿갓 조개가 한 가득이었다. 배말은 어떻게 먹느냐고 물으니, 전복보다 맛있는 죽 재료라고 자랑이 늘어진다. 한 참 해산물 자랑을 하던 두 어멍이 자랑할 것이 있다며 갑자기 해녀들의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우리 어멍 날 날 적에/ 날 날 적에
어느 바당에 미역국 먹어/ 미역국 먹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우리 어멍은 해산 후 어느 바다 미역국을 먹었기에, 내 이리 해녀가 되었을 꼬... 뭐 이런 뜻이란다. 그런데 김임생 어멍의 소리가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몇 해 전에는 캐나다까지 가서 공연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소리꾼이었던 것이다. 고임생 어멍 역시 최고의 추임새로 흥을 돋웠다. 기운찬 소리와는 달리, 가사는 해녀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음 한 켠이 더 짠하게 느껴지는 노동요였다.

물질이 끝난 후, 옛날 음식을 보여 달라고 하니, 기꺼이 부엌살림을 꺼내왔다. 두 임생 어멍이 준비한 음식은 ‘쉰다리’라는 제주도 특유의 음료였다. 제주에는 쌀이 귀해 보리와 좁쌀 밥을 많이 해먹었는데, 여름철에 금세 쉬는 게 문제였다. 궁한 살림살이 때문에 그렇게 쉰 보리밥도 버릴 수가 없었다. 거기에 누룩을 넣고 상온에서 하루 정도 발효를 시키면 쿰쿰하면서도 새콤한 쉰다리라는 ‘발효 음료’가 만들어졌다. 막걸리보다 걸쭉한 쉰다리는 바다일 하고 나온 해녀들의 고단을 풀어주는 소울 푸드였다고 한다.
그거 한 잔씩 마시며, 동갑내기 임생은 열일곱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한 나절을 마무리했다. 자식들 잘 키워 다 대처로 내보내고 이젠 일 안하고 쉬엄쉬엄 살아도 되련만, 평생 일만 하고 산 두 사람은 쉰다리 한 통만 있으면 밭이며 바다며 ‘내 세상이다’ 누비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쉰다리’ 한 사발 같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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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만큼 진한 동질감이 또 있을까? 한 평생 억척스럽게 살아온 두 사람. 서로 비슷한 시기에 남편과 이별을 경험하며, 서로를 더 의지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전화부터 해서 간밤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특히 일이 많아 힘든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고 일을 돕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서로에겐 더 없이 귀한 응원가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니, 멋쩍어하며 입을 뗐다.

“김임생아. 친구야. 우리 좋은 것만 구경하고 좋은 생각만 하며 살자.”
“고임생아. 갑장아. 건강하게 지내고 앞으로 남은 인생 사이좋게 지내자.
우리 싸우지 않게 너도 한 번씩 이해하고 나도 한 번씩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가자.”

이어도는 전설에 나오는 꿈의 섬이라고 한다. 삶이 슬프고 고달플수록 이상향인 이어도가 더 절실했을 해녀들. 그 섬에 닿지는 못해도 그 섬을 그리는 기운 찬 노래 소리가 그들의 위로였고 응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임생, 고임생 두 동갑내기 해녀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도’가 아니었을까? 쿰쿰하면서도 달달하고 새콤한 시원한 쉰다리 한 사발 같은 위로였을 것이다.
사실 고달프지 않은 삶이 어디 있고 서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 험난한 인생 길,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그걸로 괜찮은 인생. 먼 바다 푸른 섬에서 그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