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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첩] 호주 횡단 4,610km ①

케언즈의 바다, 펠리컨의 군무

호주 동북쪽 케언즈(Cairns)에서 시작해 서남쪽 퍼스(Perth)까지 4,610km의 여정을 최상혁 작가와 함께 떠나봅니다. 최 작가는 제일기획에서 프로 광고맨으로 일하며 2016년 ≪당신이 남아공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출간해 여행작가로 등단한 작가는 2017년 장기근속 휴가에 맞춰 20일 동안 호주대륙을 횡단했습니다. 삽화와 글로 채워진 그의 여행수첩에는 여행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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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호주에 정착한 후배가 한국을 방문했다. 10여 년 만에 만난 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술잔이 여러 번 오가고 취기가 오를 때쯤 후배와 난 ‘호주 횡단(케언즈~퍼스까지 차량 여행)’을 떠나자는 호기 어린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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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일이 되려니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다. 직장인으로 엄두조차내기 어려운 장기 휴가가 걸림돌이었는데, 때마침 제일기획에 근무한 지 10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래서 근속 휴가(2주)에 연차(1주)를 붙여 총 21일의 휴가를 갈 수 있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후배와 메일과 전화를 통해 ‘호주 횡단’을 준비했다. 우리는 후배가 살고 있는 케언즈(Cairns)에서 렌트카를 몰아 20일 후, 퍼스에서 일정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렌트 비용이 너무 비싸 주요 도시로 이동할 때는 항공기를 이용하고 주변 지역은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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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은 당초 여행계획. 아랫선은 실제 여행 루트


일본 나리타 공항을 거쳐 새벽 3시쯤 케언즈에 도착했다. 입국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나의 캐리어가 세관 검색대에 걸려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하나하나 검색하는 과정을 거쳤다. 2001년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멜번 공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서툰 영어로 하마터면 강제 출국을 당할 뻔했다.
당시 상황을 회상해 보면 우리나라가 IMF 관리를 받던 상황이라 한국의 국가 신용도는 바닥이었고 그래서인지 입국 심사관은 한국 사람들에게 유독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입국 신고서 항목을 잘못 기재하여(불법 물품을 소지하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실수로 ‘예’로 표기)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지만 그간 나의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 했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 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별 무리 없이 세관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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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으로 나서니 호주에 살고 있는 동생이 나를 반겨 주었다. 동생 차를 타고 숙소(YHA이라는 호주 유스호스텔 체인, https://www.yha.com.au)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오랜 비행 시간(일본을 거쳐 케언즈까지 약 15시간 소요)에 지쳐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케언즈를 어떻게 여행할지 계획을 짰다. 우선 후배가 알려준 한국인 마트에 가서 여행 정보도 얻고 휴대폰 사용을 위해 유심 카드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숙소에서 나와 한인 마트로 가는 길에 ‘러스티스 (Rusty’s Market) 마켓’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러스티스 마켓’은 주말에만 문을 여는 곳으로 지역의 야채와 과일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시장 입구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서있어 가보니 즉석 사탕수수 주스를 판매하고 있었다. 문득 ‘러스티스 마켓’에 가면 사탕수수 주스를 먹어보라는 후배의 당부가 떠올라 주스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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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즙에 다양한 과즙(민트, 라임, 라즈베리 등)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데, 신맛을 즐기는 편이라 라임을 추가 했다. 사탕수수와 라임 주스의 조합은 지금까지 먹어 본적이 없는 ‘특별한 맛’을 느끼게 했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은 요즘도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케언즈에 가면 사탕수수주스를 꼭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러스티스 마켓을 지나 한인 마켓에 갔다. 한인마켓에서 20일간 사용할 유심도 사고 라면, 김치를 비롯한 식자재도 구입했다. 참고로 장기간의 호주 여행을 계획한다면 현지에서 프리 페이드(Pre paid) 유심에 데이터를 넉넉히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필자의 경우 30불을 내고 4기가 바이트를 구매했는데 여행 말기 데이터가 부족해서 4기가 바이트를 더 구입했다.)

유심을 장착하니 인터넷과 카톡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케언즈 시내에 있는 ‘라군(Lagoon)’이라는 관광 명소를 찾아갔다. ‘라군’은 케언즈 지방 정부가 만든 실외 수영장으로 주변에 공원과 공연장, 식당이 자리하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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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무료 워터파크 라군
 

‘라군’은 한 마디로 열린 공간이었다. 수영장은 별도의 입장 통로가 없고 주변을 둘러싼 벽이 없어 누구나 쉽게 찾아와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노천 콘서트 장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수영장을 지나쳐 노천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마침 현지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어 잔디밭에 앉아 공연을 감상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앉아 망중한을 즐겼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음악에 취해 있을 때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이게 바로 호주의 여유구나. 행복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치열한 일상을 보냈던 서울을 떠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케언즈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드넓은 해변과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순간 하늘의 반은 회색 빛 나머지 반은 붉은빛으로 물들여졌다. 그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한 무리의 펠리컨이 모여들어 춤추기 시작하자 한 폭의 명화를 보고 있는 듯 했다. 해변 벤치에 걸터앉아 펠리컨의 춤을 감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라는 하늘의 게시 같아 숙소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첫 날 밤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Tip. 최상혁 작가의 여행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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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수기를 피한다. 성수기 때는 모든 비용이 오른다. 반대로 비수기에는 모든 비용이 저렴하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성수기보다 비수기를 추천한다.

2) 숙소는 미리 예약하지 않는다. 비성수기 때 특가 이벤트를 활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고급 호텔에 묵거나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리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도착 후, 2일 정도의 숙소 예약만 진행하고 현지에서 호텔앱(필자는 호텔스닷컴을 선호한다) 특가 상품을 노려보자

3) 구글맵을 적극 활용한다. 외국 여행에서 구글맵은 목적지를 찾는 용도는 물론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으로 제 몫을 해낸다.(남아공 100일 여행 시 구글맵 활용)

4) 트립어드바이져 등 관광정보앱을 활용한다. 필자의 경우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장난감 박물관을 즐겨 찾는다. 관광정보앱을 통해 주변의 유명한 명소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이를 권장한다.

5) 렌터카와 투어 패키지를 적절히 활용한다. 여행을 할 때 렌터카를 활용하면 여러 모로 편하다. 다만 운전이 익숙하지 않거나 운전 방식이 다른 경우(영국령 국가의 경우 운전대 위치가 다르다) 무리해서 렌터카를 빌리지 않도록 하자. 일정, 교통 상황 등을 고려해서 렌터카와 투어 패키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6) 가능한 도보를 이용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멀지 않은 목적지는 도보로 이동한다. 도보를 이용하다 보면 차량을 타고 지나치게 되는 수많은 볼거리를 놓치지 않는다.

7)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은 버려라,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평생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적극 참여한다. 그냥 질러라. 최소한 후회는 남지 않는다.

8)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 여행 중 애매하게 남는 시간을 적극 활용하라,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남는 2~3시간, 체크아웃까지 남는 2시간 등 그냥 숙소에서 머물며 보내는 시간을 주변 산책이나 관광지 방문 등으로 활용해 보라.

글·사진·삽화 | 최상혁
최상혁 님은 20년 이상 프로 광고맨이자 삽화작가, 여행작가입니다. 2016년 《당신이 남아공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출간했고, 이 호주횡단기는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라는 타이틀로 브런치북(brunch.co.kr/brunchbook)에도 수록돼 있습니다.
[여행수첩] 호주 횡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