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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인간극장] ‘봉화 아연 광산’ 박정하의 221시간

광부의 하늘

전국 돌아다니며 밥상 구경하는 프로그램에 와서도, 참 뜬금없는 기획을 많이 했다. 지난해  가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나라는 온통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뭔가로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 하고 싶었다. ‘무엇이 위로가 될까’ 온통 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던 때였다.
어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와의 인터뷰를 듣게 됐다. 주인공은 이태원 참사가 있기 3일 전 봉화 아연 광산에 고립된 광부 박정하 씨였다. 후배 광부와 함께 지하 190m 수직갱도 아래서 만 9일하고도 5시간 만에 생환한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암울하기만 했던 세상 분위기를 한순간 바꾸어 놓은 그나마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감동했던 건 구조됐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확신에 찬 한마디가 내 마음을 두들겼다.  
“누군가 구조하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 안하셨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걱정을 안 하죠?”
“저희는 동료가 갇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러 갑니다.”
“광부들은 그렇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광부들을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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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화면 캡쳐

끝까지 같이 해줄 누군가가 있는 건

걸으며 라디오를 듣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가 갇히면 동료들이 반드시 구하러 온다.’ 너무도 굳건한 믿음이었다. ‘이거다! 누군가 도탄에 빠졌을 때, 끝까지 같이 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 이걸 밥상으로 구현하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곧바로 수소문에 들어갔다. 우선 시사 프로그램 취재작가들과 연락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을 취재 중인 팀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취재작가에게 노조나 단체 등을 찾아보라 했다. 저렇게 똘똘 뭉쳐있는데, 단체가 없을 리 없었다. 그렇게 찾아낸 팀이 바로 <광산진폐권익연대>였다. 강원도 정선의 퇴직 광부들이 만든 단체였다. 알고 보니, 박정하 씨는 봉화의 광부가 아니라 강원도 정선의 탄광에서 잔뼈가 굵은 30년 넘은 베테랑 광부, 정선의 탄광이 폐광 된 후에도 광부로 여러 탄광에서 일했다. <광산진폐권익연대> 대표인 성희직 씨도 우리의 연락을 받고 무척이나 의아해했다.

“한국인의 밥상이 왜 우릴 찍어요?”
대뜸 이런 답이 왔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걸 만들고 싶어서 연락했는지 세세히 설명했다. 그제야 그의 경계가 풀어졌고, 주인공인 박정하 씨를 연결해 줬고, 그 역시 우리의 뜻에 공감해 아주 특별한 밥상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답사를 위해 우리는 곧바로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다. 

처음 우릴 맞은 건, 성희직 씨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곳 말로 ‘뼝대’라 불리는 기암절벽과 동강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강원도 정선, 그중에서도 500년 나무가 지키고 있는 가수리 마을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게다가 음식을 하기로 한 성희직 씨의 집은 마치 한국인의 밥상을 위해 새로 지은 세트처럼 아주 적당했다. 

그때까지도 성희직 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동료들이 성희직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여길 왔냐고 성을 내는 바람에 움찔 놀라 그의 기록을 부지런히 찾아봤다. 그러다 만난 시집 표지! 바로 목판화로 묘사한 광부의 웃는 얼굴의 《광부의 하늘》이란 시집의 표지였다. 물론 오래도록 내 책꽂이에 있었고, 1980년대 대학 다닌 사람이라면 하나씩 다 들 있었던 그 책이었다. 집에 없더라도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말 그대로 민중문학 시집이었다. 그는 광부로 일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시위 도중 손가락 세 개를 잘라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강원도 도위원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공직을 마친 후, 그는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을 하며 가수리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박정하 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건 아니었지만, 늘 함께하는 동지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사고 소식을 듣고는 봉화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물론 구조되기 전이었기에 박정하 씨 아내를 위로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이틀 후 구조 소식을 들었고, 너무 기뻐 아내와 얼싸안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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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슬픔을 뚫는 힘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광부 밥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모든 동료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앞에 나서줬다. 정선 광부들과 대략 이야기가 끝날 무렵 기적의 주인공 박정하 씨가 나타났다. 
“어서 와. 몸은 좀 어때?”
우리보다 먼저 동료들이 그를 맞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모두 성한 몸으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쏟아내는 갱도 안에서의 생존 분투기, 가슴 졸이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 당일, 박정하 씨는 오후 4시에 출근했다. 작업장에 들어가서 1시간 반 정도 작업을 하던 도중에 우르릉 쾅쾅 굉음이 들리더니 작업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설치된 수직갱도가 붕괴됐다. 안에서 비상 통로를 열어보려고 동료와 10미터 정도 굴을 팠지만 소용없었다.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붕괴됐던 작업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30년 갱 안에서 갈고 닦은 연륜이 이분들을 살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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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다. 박정하 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 많았다. 모든 곳이 습하고 비 오듯이 물이 떨어지는 곳이 갱 안 사정이다. 그는 광부들이 일하면서 물을 피하고 옷을 말릴 수 있도록 회사 측에 요청해서 전기난로를 설치하고 등을 밝혀달라고 했다. 그리고 비닐 천막을 치고 전기포트를 가져다 두어 광부들이 일하면서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었었다. 또 철재 지주를 세워야 해서 용접기와 나무 자재들까지 준비해 두었었다.
이 모든 건 흔히 말하는 짬이 없으면 준비할 수 없는 것들, 사건이 터지고 나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유용하게 쓰였다. 용접기와 나무판자들로 모닥불을 피워서 온기를 보존해 그 무서운 저체온증을 막았고, 또 쉬는 시간에 커피 한잔씩 할 수 있도록 믹스커피를 30여 개 정도 가져다 두었는데 그게 끼니가 됐다. 같이 갇힌 동료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새내기 광부. 그의 두려움을 다독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221시간이란 시간이 지나니, 그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땅에서 솟아오든 벽에서 밀고 오든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열흘째 되던 날, 처음으로 꺼낸 그의 속내였다. 헤드 랜턴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이마저 꺼지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암흑. 두려움과 공포감이 밀려와 마지막 모닥불을 휘저으면서 후배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때였다. 정말 기적처럼 발파 소리가 들렸고, 빛이 보였다. 그때 들린 동료의 고함! 

“형님!”
그를 부른 건 아들뻘 되는 탈북민 후배 광부였다. 그는 분명 형님은 살아있을 거라 믿고 12시간 이상 구조에 참여했다. 박정하 씨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그 말은 그냥 했던 말이 아니었다. 
“저희는 동료가 갇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러 갑니다.”

생환의 깃발을 흔든 어제의 용사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누군가의 굳건한 믿음이 절망과 슬픔을 뚫고 나올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함께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 비록 큰 힘은 되지 못해도 함께 해줘야 한다는, 그 징글징글하고 끈끈한 정을. 우리는 이를 전우애라고 부른다. 사투의 현장 같은 세상을 살다 보니, 어찌 전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 어찌 전우애 없이 이 험한 고행의 길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더 이상 읽지 않을 거 같아 처분했던 한 권의 시집. 그 시집이 내 책장에서 사라졌듯, 탄광 산업의 쇄락과 함께 존재가 사라진 줄 알았던 어제의 용사들, 그들이 우리에게 생환의 깃발을 흔들었다. 우리는 죽지 않았다고.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살고 있다고. 그리고 긴 암흑 같은 세상을 걷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믿음이 생존의 빛이 될 거라고. 
뜬금없이 차려진 생환 동료 환영회는 성희직 씨의 시 낭송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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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팔고 건강을 팔아야만 몇 푼 돈을 얻는 
하루 여섯 시간 지하 막장 노동이

결코, 서러워서도 아니건만
자꾸만 눈시울이 젖어오는 건

이마에 돋는 땀방울이 흘러들기 때문인가

(중략) 
휘두르는 곡괭이에 힘을 주며
자꾸만 되새김질하는 소리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언젠가는 하늘 한 겹 훌훌 벗고
맑은 공기 가득한 
저 눈부신 햇살 아래로 
돌아갈 그날을 위해서라도-
  

_ 성희직,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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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봉화 아연 광산’ 박정하의 221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