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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농부 유투버’ 성덕 씨

“내가 두더지 마음을 알아서…”

[인간극장] ‘농부 유투버’ 성덕 씨.

5월, 천안시 구대동의 한 육묘장이 번잡스럽다. 묘목이나 모종을 키우는 육묘장이 가장 바쁜 시기는 3월에서 5월까지, 밭농사에 필요한 모종을 사러 온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육묘장엔 유난히 주인장의 손님이 많다.  

우리가 찾아간 그날엔 오래된 지인이 그를 찾아왔다. 30여 년 전 이웃으로 살던 부부였다. 옛 이웃은 무척 들떠있었다. 반가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주인장 안성덕 씨를 다시 만난 사연이 절묘해서 더욱 그랬다. 10년 전부터 작은 농장을 시작한 부부가 인터넷으로 농사법을 알려주는 유투브를 보다가 귀에 익은 목소리를 포착했다. 바로 성덕 씨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주소를 알아봐 찾아온 것이다. 목소리만 듣고 단번에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꽤 독특해 수긍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개그맨 최양락씨의 말투 같다고 할까?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와 구수한 사투리가 묘한 리듬감이 있는 말투였다.  

지인들이 다녀 간 후에도 그는 여전히 분주하다.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하루 평균 30통에서 40통. 전화가 왔다 하면 전화통을 붙들고 족히 20분 이상 그 목소리로 통화를 하니, 열 명이 있어도 스무 명이 있는 듯, 육묘장 안이 더 복잡스럽다. 밥 해먹을 시간이 없어 김밥을 사와 대충 끼니를 때울 정도다.  

어느 날 터진 잭팟! 400만뷰 

이처럼 성덕 씨가 바빠진 건, 모두 인터넷 때문이다. 작년 그는 느닷없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농부 안성덕의 일상을 소개하는 동영상 채널. 가족들은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타박을 했다. 특히 눈살을 찌푸렸던 건, 함께 육묘장에서 일하는 아들 내외였다. 일도 많아 죽겠는데 성가시게 그런 걸 왜하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그는 혼자 사고를 쳤다. 어떤 날은 고추 모종 심는 것도 보여주고 어떤 날을 토끼 먹이 주는 것도 찍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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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씨가 운영하는 유투브 <성호육모장> 화면 갈무리

그러던 어느 날 잭팟이 터졌다. 고구마 캐는 도중에 나온 두더지를 찍어서 올린 게 인기 동영상으로 등극을 하고 신문기사에까지 실린 것이다. 농사를 지어도 두더지 볼 일이 별로 없으니 이 기회에 두더지 습성을 알려주고 싶어 찍은 콘텐츠였다. 유튜브의 인기를 측정하는 조회수가 무려 400만뷰(지금은 더 늘었을 듯)! 아직도 재미난 댓글이 달리고 있어 밤마다 그거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빨간 고무 대야 위에 두더지 기어 다니는 게 뭐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야단을 하는지, 그게 힐링인지 뭔지가 된다고 하니 당최 알 수 없는 요즘 사람들이지만, 자기가 올린 동영상을 이렇게 봐 주고, 자신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으니, 그에겐 요즘이 바빠도 신명나는 하루하루다. 게다가 부수입이 월 200만 원 정도라니, 절로 신이 날 수 밖에.  

그가 이런 동영상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귀농인구가 많아져서였다. 농사짓겠다고 농촌에 온 사람들 중에 고추 모종도 구분 못하는 이가 허다했다. 모종 사러 와서 엄한 소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농사를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의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그런 초보 농사꾼들이다. 모종을 심었는데 퇴비는 언제 얼마만큼 줘야 하느냐, 파는 얼마 간격으로 심어야 하느냐…. 농작물이 많은 만큼 질문의 종류다 다종다양하다. 성가실 만도 한데, 미주알고주알 설명이 늘어진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전화 서비스를 하는지 물어봤더니, 그의 답이 꽤 멋졌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까진 뭐 그래도 대충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런데 다음 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50년 농사를 지었으니, 고추 마음을 알잖아. 그래서 어떻게 해주면 되겠다 알려줄 수 있는 거지요.”  

물론 성덕씨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충청남도의 진한 사투리였지만 그걸 글로 옮기는 재주가 없어, 표준어로 바꾸어 전하는 게 아쉽기만 하다. 여튼 ‘고추 마음을 알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 고추를 키우는 농사꾼은 고추가 목이 마른지 볕이 필요한지 영양분이 필요한지 그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살뜰하게 챙기는 거였구나! 옛날에 어디선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벼가 자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농민에게 벼 이삭이 자식이구나!’ 하는 울림이 있었는데…. 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르침이 마음에 닿았고 흙 한 번 제대로 안 만지고 살아온 나의 50여년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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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없이 업로드…그의 나날이 보인다

직업이 참 무서운 거다. 살아온 대로 습관이 붙는 법, 그는 농사짓는 것처럼 유튜브 활동을 한다. 적어도 하루 하나씩은 반드시 올린다. 그 부지런함을 보면, 그가 살아왔을 날들이 보인다. 우리가 찾아간 날엔 토끼장 촬영이 진행됐다. 토끼장 안엔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새끼 토끼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 어미 토끼는 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주인장이 불안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경계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끼들은 자유롭게 어미젖을 먹으며 돌아 나다닌다. 그 중에 그걸 잘 못 얻어먹어 유난히 몸집이 작은 녀석을 찾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거친 화면과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르신의 오디오가 묘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토끼 촬영을 마친 후, 성덕씨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남 농사 가르쳐주려고 유튜브 촬영을 시작했지만, 이걸 하면서 자기도 배우는 게 많다는 것이다. 토끼만 해도 그렇다. 예전엔 토끼장에 가둬 키워서 몰랐는데, 촬영 때문에 내놓아 키웠더니, 녀석들이 두더지 저리가라 할 ‘굴 파기 달인’이더란다. 한 겨울에도 굴을 파고 거기에서 새끼를 낳는 것도 농사 경력 50년 만에 알게 되었단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농사 50년 만에 이제야 토끼 마음을 알게 된 거일 게다. 뭐든지 마음을 알면, 정이 가고 또 손길이 가는 법. 그 세상 이치를 그는 토끼장에서 깨닫는다.  

촬영이 며칠 진행되면서 출연자들은 곶감 빼오듯 자신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더 내놓는다. 그 역시 다음날이 되니 새로운 자신의 흔적을 내놓았다. 그건 바로 10권도 넘는 노트였다. 수 십 년 써온 농사일기. 농부로의 자부심은 바로 이 노트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뭘 얼마나 키웠고 어떤 걸 먹였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빼곡히 써 놓은 기록이 육아 일기도 그런 육아 일기가 없다. 그 때 깨달았다. 그가 왜 말 끝마다 ‘고추의 마음’ ‘토끼의 마음’ ‘두더지의 마음’ 이야길 하는지를.  

뭔가의 마음을 아는 일은 이처럼 세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또 그에 맞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없이는 마음을 안다고 말 할 수 없는 거였다. 그가 자신 있게 그 녀석들의 마음을 안다고 한 건, 그 노력의 시간이 있어서였다. 몇 해 전 유행했던 말콤 그레드웰이 말한 ‘1 시간의 법칙’이 아니어도, 1만 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일가를 이룬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마음 알기 천재’에게 고개가 절로

다큐멘터리 제작 하는 일이 사람 만나고 그 사람들 이야기 찾아내는 일이라, 그래도 사람 마음을 꽤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성덕 씨를 보고 그게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다시 깨달았다. 내가 과연 누구의 마음을 알기 위해 매일매일 그 사람의 상태를 체크하고, 고생인줄 모르고 누군가를 돌보아 봤던가. 나는 아직도 멀었단 생각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부끄러운 마음을 알았는지, 성덕 씨가 개그로 우리 취재 일정을 마무리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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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내를 다그쳐, 옥수수를 심어 놓은 밭으로 이끈다. 동영상을 하나 더 찍을 요량이다. 오늘의 주제는 ‘옥수수 농사법’. 오늘은 아내가 촬영감독이다. 아내에게 모자를 쓸지 말지 물어보며 카메라 앞에 서는 성덕 씨. 또 잔소리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동영상인줄 아느냐, 촬영할 때 절대 졸면 안 된다. 화면을 기울이지 말고 똑바로 휴대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 걱정이 열두 폭이다. 이리 타박이 심한 건, 아내가 촬영을 하다가 자주 졸기 때문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하고 난 뒤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어느 장사가 안 졸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심하게 타박을 헐 수도 없는 게, 휴대폰 내던지고 가버릴 기세이니 강도 조절을 하며 촬영에 들어간다.  

하여튼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촬영은 시작됐고, 성덕 씨는 늘 그랬듯이 미주알고주알 옥수수 마음 타령을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김없이 육묘장 안주인은 저무는 햇볕을 마주하고 꼬박꼬박 존다. 그렇게 ‘마음 알기 천재’ 성덕 씨의 육묘장의 하루가 저문다.

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