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오늘의 카페
[클로징 포엠]

우수 雨水

1.jpg


밤새 찬바람이 불었는지 산수유 열매에 주름이 많이 맺혔다.
가지를 빠져나오는 바람에서 구김살 많은 노인의 밭은기침 소리가 난다. 

혹한이 이어진 올겨울은 둥치의 껍질이 더 많이 갈라져 있다.
감당할 부분을 넘어서면 누구든 헤쳐 나오는 법을 가늠해보는 거라고 믿는다. 

며칠 빌려 쓰기로 한 농가 아궁이에 주인이 마련해 준 장작을 넣는다.
뜨거운 불길과 식어버린 열기의 서늘함이 함께 들어앉은 불구멍, 한참을 쓰지 않았다더니 땔나무를 몇 번이나 뱉어낸다. 나무의 그을음은 아닌데 검은 연기가 올라온다. 아궁이에 채 마르지 못했던 사연이 들어있는 것 같다. 불타 들어가던 집에서 빠져나오던 열 몇 살 무렵의 나를 닮았다. 

어떤 길로 들어서야 하나, 머뭇거리며 살아온 시절이 절반이다. 

단박에 타들어 가지 않는 건 옹이 박힌 나무다. 한동안 버티더니 불씨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아궁이가 제대로 뜨끈해진다. 다른 것들한테 치여서 햇빛 덜 본 것들이 다 옹이로박혀 든 거야, 부업으로 버섯을 키우는 집주인이 부지깽이를 건네며 말을 붙였다.

자신을 밀어낸 다른 가지와 더 단단하게 엮이기 위해 옹이는 둥치 안으로 스스로를 들여놓았나 보다. 그늘을 버티며 살아온 삶이 참 여럿이다. 들여다 보니 옹이는 나이테에 자신을 내친 산을 껴안고 있었다. 등고선을 제 몸에 거두어들이며 옹이는 어떤 산을 품고 싶었을까. 

내 그늘은 무엇이었는지 산 끄트머리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겨울이 그루터기만큼 남았다. 또 한 절기가 넘어간다.
 

DSCN0589.JPG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클로징 포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