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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대한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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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을 크게 다치고 나니 
비로소 왼손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한다
다치기 전에 칼질을 하거나 손톱깎이를 쓸 때 
부득이 왼손을 쓸 때가 있었다
날카로움이 불안함을 증폭한 결과이거나 
오른손으로는 오른손의 손톱을 깎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들 모임에 가면 좌파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돌을 던져야만 했던 시절에도 늘 오른손으로 그것을 조준했다
처음부터 왼손을 썼다면 
사람을 처음 만나거나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왼손으로 머릿결을 넘겨줄 일이 있었을 테고 
왼손으로 눈물을 훔칠 일이 있었을 것이다
좌우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을 테니
헤어진 이유는 따져보면 다 있는 법이다
 

당신의 왼손에 대하여 이력서를 쓰시오, 
겨우겨우 문장을 써서 이어붙인다
사실과 진실의 거리는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거리만큼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기에  
왼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만 
붕대가 풀리면 습관은 기억을 되돌리겠지
세상에는 왼손이 너무 많다
왼쪽 손이 아니라 한쪽 손이라고 부른다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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