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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에세이]

치매 걸린 아버지와 보낸 닷새

“저것이 저기 세워져 있으니 네 엄마가 꼭 집안에 있는 것 같다.”
유독 보행기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나시는 듯하다. 몇 해 전 엄마가 고관절을 다친 이후로 다리가 불편해져 밖에서는 보행기를 밀고 다니신다. 며칠 째 한 자리에 서 있는 보행기를 보며 엄마를 생각하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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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허리를 다쳐 입원하신 후, 아버지의 어깨는 갈수록 움츠러든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잔뜩 주눅이 들었다. 치매가 시작된 지 7년째,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라 말 붙이기도 어려웠던 아버지는 점점 아이가 되어 간다. 

며칠 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우리 가족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엄마가 허리를 다쳤는데 검사해본 결과 골절이라고 했다. 뼈가 더 이상 부러지지 않게 시술을 해야 하는데 며칠 입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다친 엄마보다 아버지를 걱정했다. 엄마야 입원해 치료하면 된다지만 오로지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계시던 치매 걸린 아버지는….
평상시 자식 집에 오셔도 답답하다며 하루를 못 버티시고 집에 가자고 엄마를 닦달해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하루 지내다 가시는 게 고작이었으니 도시의 자식 집에서 닷새를 지내시는 건 무리.
자식, 며느리들 모두 직장에 다니는 터라 선뜻 나서기가 힘든 상황에서, 내가 나섰다. 평소 언니 오빠가 주말에 번갈아가며 자주 찾아뵙곤 했기에 멀리 산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며칠만이라도 내가 돌봐드리겠다고 했다. 치매가 시작된 이후 아버지는 엄마 이외의 사람은 경계하시는데 그나마 막내인 나는 여전히 막내딸로 편하게 대하신다는 것도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오빠 집에서 이틀 머물고 계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집에 도착하니 한밤중. 아버지는 집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뻐서 엄마가 함께 오지 못했다는 것도 그다지 신경 쓰시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거실 커튼을 치시고 방과 거실을 오가며 안절부절 엄마를 찾으시다 마당안팎을 뒤지고 다니신다. 병원에 계시는 엄마와 영상통화를 연결해드리고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입원한 이유를 차분하게 알려드리자, “알았네. 내 걱정하지 말고 치료 잘 받고 오게.” 멀쩡한 사람처럼 말씀하신다.

집에 오신 날부터 아버지의 일과는 마당의 풀 뽑기. 잔디 깔린 마당에서 하루 종일 풀을 뽑으신다. 식사 후 즐기시던 낮잠도 줄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조는 듯하다가 마당으로 나가 풀을 뽑고 나무 밑을 정리하신다. 나와 함께 지내던 며칠 동안 수행을 하듯 그렇게 엎드려 풀만 뽑으셨다. 풀을 뽑다가 의자에 잠깐 앉아 출입구를 바라보기를 반복하신다. 엄마와 두 분이 계실 때는 하셨던 말 또 하시고 물었던 것 또 물으셔서 엄마에게 시끄럽다고, 말 좀 그만하라고 구박을 받곤 하셨는데 나와는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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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고도 짧은 입원 5일 만에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다. 순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눈꼬리에 힘이 들어가고 슬슬 오기도 부리기 시작했지만 엄마 없는 며칠이 힘드셨구나 싶어 밉지만은 않다. 
당신이 평생 살아온 집에서 고락을 같이한 엄마와 삼시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사시는 아버지. 그렇게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와 돌봄에 지쳐가는 엄마. 하루에도 몇 번씩 미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시간을 몇 년째 보내고 계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식의 이기심일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감내하겠다고 하시지만 엄마의 절대적인 헌신이 있어야 이 생활이 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문요양 서비스로 방문 목욕과 가사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간이 잠시나마 숨통이 트일 때다.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치매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 앞에만 앉으면 잊어버렸던 집주소도 기억나고 이름도 또박또박 써내서 엄마 혈압이 치솟는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말이다. 
칫솔로 머리를 빗어 놀라게 하고 전등 켜는 법을 잊어버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며 속상해 하시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애써 가꾼 꽃밭의 새싹을 잡초로 알고 몽땅 뽑아버리거나 과일나무 싹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엉뚱한 옹고집을 피울 때는 요양원에라도 보내드려야 하나 갈등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1년 365일 거실 커튼 여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저녁으로 개똥 치우고 집 안팎을 단속해 말끔하게 정돈한 후 산책하고 잡초를 뽑으며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노후를 당신 집에서 보내실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감내하는 엄마. 

나이 들어 잦은 병치레로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파도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고, 웬만한 병쯤은 무시하고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늙은 부모.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문제지만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어 감사하다. 당신 혼자 입원했지만 그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쳤다고 생각해 미안하기만 한 엄마. 
“엄마, 괜찮아. 맘 편하게 아파도 돼.”

그림, 글 | 조경숙
[드로잉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