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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포엠]

당신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있습니다
영주에 가시면 제 눈동자 좀 찾아 주세요
영주 부석사 초입 길
단풍나무숲을 걷다 왼쪽 너머를 보시면
사과나무들이 쭈욱 서 있을 텐데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을 겁니다
첫걸음마 떼고부터 여태 걸어온 길들을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서 있을 겁니다
그 사과나무를 따라 몇 걸음 부석사 방향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바위 하나가 나오는데요
당신만 들어 줄 수 있는
바위 아래를 들추면
어느 해 여름 끝물에 묻어 둔
한 사람만 바라보던 눈동자가 있을 거예요.
덜 익은 푸른 사과처럼, 어쩌면 사과 반쪽처럼 생겼을
눈동자를 좀 찾아 주세요
그 사람이 지금 떠나가고 있어
이제 아무것도 볼 필요 없는 그 맹목盲目을 좀 가져 가세요
그 사람이 떠나가는 곳에서도 그 사람만 바라보라고
함께 떠나보낼 것이 그것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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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클로징 포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