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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포엠]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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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너무 딱딱한 빵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생각이 발효되지 않았거나 발효가 너무 지나쳐
어떤 빵들은 잠바 속에 너무 많은 비밀을 넣고 다닌다
이렇게만은 살 수 없어, 누군가 중얼거릴 때
오븐의 타이머처럼 바람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달콤한 빵을 굽지 않는다
발효된 프랑스 양과자 크림 장식물이
저녁 가랑비에 하얗게 녹아내리고 있다
그녀의 실업이 결정되던 날
사거리의 낙엽은 이력서의 행간처럼 쏟아져 내렸다.
창밖의 네온은 전기오븐의 타이머처럼 깜빡거릴 뿐
두 아이의 눈망울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뿌옇게 잠을 청하리라
그녀가 창백한 손으로 가로등 하나, 둘 밝히면
폐업을 준비하는 가로수는 옷깃을 바스락거리며 떠나갔다
실업의 뿌리가 깊어져도 마른 꽃잎이라도 피어오르겠지,
얼마 남지 않은 케이크를 마저 꺼내놓을 때
사람들은 이런 추억도 파느냐고,
팔아도 되는 거냐고 혀를 차며 되물었다
저 거리의 불빛 너머로 나도 건너갈 수 있을까,
그녀가 중얼거릴 때
거리에는 너무 딱딱한 빵들이
늦은 저녁 가랑비 사이를 건너가고 있었다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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