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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시(詩) 당선작 3편을 통해 본 시대감각

‘문청’들의 영원한 로망, 신춘문예

[문학산책] 시(詩) 당선작 3편을 통해 본 시대감각.

이들은 겨울, 특히 새해 첫날을 누구보다 기다린다. 새해 아침 신문이나 신문사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핀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이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글을 쓰려고 하는 뚜렷한 성향을 지녔다. 그리고 남들 다 자는 밤에 이들은 밤을 새우는 일이 잦다. 무엇보다도 큰 특징은 간절함이 성실함과 결합되면 성취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문학을 업으로 하기 위해 표현과 사유 능력을 높이려 애를 쓴다. 

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치는 청년들. 우리는 이들을 문학하는 청년들이라는 의미로 ‘문청(文靑)’이라고 불러왔다. 이들은 문학작품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이때 청년은 물리적 나이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젊고 새로운 감각과 사유로 이 시대를 읽어내려고 하는 많은 이들이라면 성별과 연령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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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각과 문학의 패기

기존 문단에 도전해 자신의 개성을 부여잡으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도전의식과 문학성으로 정면승부를 하기 위해 그들은 등단이라는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여러 문이 있지만 권위와 전통을 따지면 신춘문예가 단연 일순위로 꼽힌다. 
신춘문예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운영하고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다. 제도의 효용성에 대해서나 절차적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말에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통과해 한 작품을 뽑는 것으로는 신인작가의 문학성을 철저히 검증할 수 없다는 게 신춘문예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목소리이다. 이 자리는 신춘문예의 정당성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더 이상의 관련 논의는 언급하지 않겠다. 
중앙일간지를 비롯해 지방언론사 등 거의 모든 곳이 신춘문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그 힘들다는 신춘문예를 통과한 작가들이 1월 1일자 지면에 당당히 작품들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당선 작품에는 소설이나 희곡, 수필, 평론 등의 여러 갈래들이 있지만 시 당선작을 통해 그들의 열정과 시대 감각을 살펴본다. 최근(2022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 3편을 통해 우리 문학의 새로운 기미들을 확인해보자. 여기에 언급되는 작품들은 문학성의 우열보다는 단순히 필자의 선택일 뿐이다. 아름답지 않은 꽃들은 없지만 좋아하는 꽃들이 다른 것처럼 언급되는 시들은 취향의 결과일 뿐이다.  

일상과 만난 역동적 상상력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중략)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_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에서 이미지는 중요하다. 이미지는 글을 쓰는 주체의 체험이 가닿는 시공간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이 시는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사건들을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일상에서 시인은 음식에 관한 기억들을 불러들이고 순간을 구체화한다.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라는 능청스러운 발상은 평범했던 시의 색깔에 역동적인 상상력의 이미지로 화려하게 전이된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라는 진술에서 이해의 실마리가 조금 엿보인다.  

화자는 단양과 충주 사이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첫사랑은 스페인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정기구독이 해지된 상태다. 일정한 주기를 반복하던 첫사랑의 기억은 이제 ‘누군가 멀리 떠나는’ 게 일상인 것처럼 희미해진다. 일상과 사랑에 대해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시행의 운용과 신선한 발상을 보여준 시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의 성별과 나이는 어떻게 될까. 신문 발표에 따르면 1959년도에 출생한 여성이다. 문학에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시인을 문청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어떤 시들을 계속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공간적 변형의 서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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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략)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사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_ 김보나, <상자 놀이>,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 시의 미덕은 공간에 대한 젊은 감각과 현실성의 구현에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으로 자리 잡은 택배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시의 바탕이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쉽게 지나쳐버리는 현실을 예리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수작이다.  

이 시에는 공간성을 표현하는 단어가 몇 번 나온다. 상자, 방, 세계. 이들 단어가 중첩되거나 변주되면서 이끌어가는 시인의 상상력은 여간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시어는 ‘방’이라는 일상의 공간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집이 아니라 방을 꿈꾸기 시작했다. 집과 방은 공간을 넘어서 사회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집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가. 크고 화려하고 깨끗한 집이 기성세대의 욕망이었다면, 방은 보편화된 의미에서 집을 대신하는 젊은 세대의 욕망이다. 놀이방, 노래방, 공부방, 찜질방 등 집을 구성하는 일부였던 공간이 이제 집을 대신한다.  

이 시는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세대의 일상을 방으로 옮겨 표현한다. 번듯한 내 방 하나 가지기를 꿈꾸는 지금 세대의 공간 욕망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정서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는 시인의 진술은 아름답고 발랄한 상상이지만 처연하고 씁쓸하다. 동시대의 감정적 촉수를 한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선된 시인은 1991년 서울 출생의 여성이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문학의 ‘방’은 어떤 ‘리본’으로 묶일지 지켜보고 싶다. 

무심한듯하지만 깊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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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당의 빈터는 앞집에서 농기구를 갖다 놓아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_ 강영선,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202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지는 더 화려하고 현란해지고 있다. 과잉의 경쟁 시대처럼 보인다. 더 튀지 못하면 사라지고, 더 자극적이지 못하면 무능력으로 보이는 세상이다. 이런 시기에 문학, 특히 시는 어떤 자세와 목소리를 가져야 할까. 그 답을 알려준 시 한 편이다.  

당선작을 쓴 시인은 1969년 출생한 여성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현란한 이미지 하나 얹어놓지 않았다. 시인의 표현력이 미치지 못해서는 아닌 듯하다.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와 같은 표현은 한두 번 시를 쓴다고 얻어지는 문장이 아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누군가가 떠오를 때마다 두고두고 생각날 시이다.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이후의 문장은 독자들의 몫이다. 어떤 말로 채우든 좋을 것이다. 이런 시들 때문에 이 과잉의 시대에도 시를 읽고 찾는 독자들이 있는 게 아닐까.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