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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노래] 음악으로 전하는 마음의 흔적

‘그레고리안 찬트’의 울림

산티아고 길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직접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오래된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 ; 전통 로마 가톨릭의 찬송) 악보들이다. 수도원에 딸린 작은 전시실 하나 가득 수도사들이 손으로 그린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들이 있었다.

흔히 보는 오선보에서 선이 하나 빠진 사선보(四線譜)이고, 음표는 대나 꼬리 없이 머리만 사각형으로 찍혀있다. 조금 큰 책자 크기로 묶어낸 두터운 악보책도 있고 궤도 크기의 커다란 묶음 악보들도 있다. 머리글자에 사용한 빨갛고 파란 색깔 잉크가 빛바랜 갈색 종이와 어울려 다채롭게 보였고, 장식이 많은 펜글씨체의 라틴어 노랫말도 사선보의 음표들과 잘 어울렸다. 신비한 기호들로 꼼꼼히 화면을 채운 한 장의 미술작품 같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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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안 찬트 악보

친구와 함께 기획한 그레고리안 찬트 워크숍에서 이 악보를 처음 접했다.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는 말을 꺼내기 전이었는데, 왠지 그레고리안 찬트를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알아보니 멀리 경북 왜관의 폐쇄 수도원에서나 배울 수 있다는 소리에 낙담했다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 대학원에서 그레고리안 성가 수업을 하시는 수녀님을 찾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워크숍을 청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일반인 대상의 수업인데도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스무 명 남짓한 분들과 대학로의 한 공간에서 그레고리안 찬트 워크숍을 열 수 있었다.

그때 보내주신 자료의 표지에 이 악보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가톨릭의 가장 오래된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안 찬트는 노래로 하는 기도라서 꾸밈없는 자기 목소리 그대로 부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어려워한다고도 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기원부터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배우 강동원이 불러 화제가 되었던 <파스카의 희생을 찬미하라(Victimae paschali laudes)>까지 멋진 시범과 꼼꼼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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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짓기까지

어릴 적에는 음악을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초등학교 때 혼자 교실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시험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씩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교과서에 나온 노래 한 곡을 외워서 불러야 했다. 나는 긴장을 많이 한데다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해 몇 마디 부르다 노래를 멈췄다. 반 친구들은 다시 불러보라고 계속 박수를 치며 응원했지만 끝내 입을 떼지 않는 나를 보고 실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전주를 계속 반복해서 연주하던 선생님이 들어가라고 할 때까지 나는 입을 다물고 그대로 서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큰 벌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는 학교 음악시간에 정나미가 똑 떨어졌다.

음악 그 자체를 싫어한 건 아니었다. 음악을 즐겨 들었고 중학교 때 팝송의 매력에 빠진 뒤로는 새 음반을 모으느라 용돈을 몽땅 날릴 만큼 좋아했다. 다만 사람들 앞에서 혼자 노래하는 일이 힘들었던 건데, 그것도 교회를 다니며 여럿이 어울려 노래하면서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음악시간을 싫어하는 대신 묵묵히 혼자 할 수 있는 미술시간을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 한때 누구나 하듯이 공책 귀퉁이마다 낙서를 하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 크로키를 잠시 배운 뒤에는 선을 그리는 일에 더 관심이 갔다. 단숨에 그은 똑바른 선이 풍기는 단정함, 연필을 쥔 손아귀의 힘을 더하고 빼며 만들어내는 굵고 가는 선의 대비, 이런 선들을 겹치고 이어서 만들어내는 형상의 매력에 잠시 빠졌다. 이것이 음악과 만난 지점이 바로 악보를 그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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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첫 음악 선생님은 피아노를 전공한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오르간 건반을 누를 때도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치듯이 연주했다. 긴 더벅머리에 영화배우 찰슨 브론슨을 닮은 외모, 거칠게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에 반해 피아노 치는 남자가 난생 처음 멋지게 보였다.

그 선생님의 음악시험은 독특하게도 악보를 손으로 그리는 일이었다. 음악교과서의 악보를 그대로 따라 그릴수록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 친구들의 비명과 투덜거림에 아랑곳없이 나는 조금 흥분했다. 내 손으로 악보를 그리는 것은 마치 내 손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업 같았다. 나에게 멋진 감동을 주었던 음악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느낌으로 한 음표 한 음표 똑같이 그려내는 시간들이 좋았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높은음자리표와 8분음표의 꼬리, 그리고 4분 쉼표의 모양을 따라 그리다 보면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노래를 짓게 되면서 다시 악보를 그리게 되었다. 딱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독학으로 노래짓는 법을 익혔는데, 알고 있는 노래를 악보로 그리는 게 좋은 연습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간단한 동요부터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까지 멜로디를 기억하고 부를 줄 아는 노래를 악보에 그리면서 곡 쓰는 법을 익혔다.

처음 악보에 표시할 때는 맞는 음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하다 보니 노래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곡을 쓰는 선배들의 손 악보를 따라서 그려보다가 편안한 내 스타일을 찾아냈다. 내 스타일로 악보를 좀 편하게 그리게 되자마자 컴퓨터 악보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손으로 그린 악보를 쓸 일이 점점 없어졌다.

요즘은 디지털 음악이 대세다보니 더더욱 쓸 일이 없다. 녹음된 음원과 노랫말 파일로 노래를 주고받는 시절이라 악보가 예전만큼 중요한 도구가 아니게 되었지만 새 노래를 쓰면 가능한 한 악보를 그려보곤 한다. 노래 전체의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부족한 부분이나 고칠 곳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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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는 노래로 남아 이어지고

손으로 그린 그레고리안 찬트의 악보를 보고 있으니 저 노래를 하나하나 적어가던 수도사들의 정성스런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수도사들에게 악보를 그리는 일은 기도와 노동과 함께 하루의 주요한 일과였다고 한다. 저 정도 크기의 악보들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싶어서 아득하기도 했다. 수도사들에게 악보를 그리는 일은 노동이기도 했지만 손으로 하는 기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입에서 입으로 노래를 전하던 구전음악의 시대, 음을 기록하는 방법을 고안한 건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 같은 음이름을 정하고, 2줄이었던 악보에 2줄을 더해 음의 높이를 정확히 기록하고, 이를 보며 노래를 익히는 계명창을 고안한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자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 995-1050)는 서양음악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방법이 곧 유럽 전역의 수도원으로 보급되면서 지금까지 그레고리안 찬트가 이어질 수 있었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악보를 그리는 일이 수도사들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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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다레초 동상

만일 전생이 있다면 한번쯤은 하루 종일 열심히 악보를 그리던 수도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렸던 게 모자랐는지 이번 생에서도 제법 많은 악보를 그렸다. 잔뜩 그렸던 악보들이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노래는 남았다. 얼마 전 책을 읽다 만난 독일 민요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음악만은 살아남으리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음악만은 살아남으리

음악만은 살아남으리

음악만은 살아남으리

절대 사라지지 않으리
 

_ 독일 민요

악보가 음악은 아니다. 악보는 음악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도구다. 도구인 악보는 낡거나 사라질 수도 있지만 악보를 그렸던 마음과 노래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악보를 그렸던 이유는 그 노래가 좀 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닿아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니까. 저 수많은 악보들을 그려낸 수도사들의 정성어린 마음을 소중히 안고 다음 걸음을 옮겨갔다.

 

글 | 안석희
출처 | 《산티아고 길노래》(벼리커뮤니케이션, 2017)
안석희 님은 ‘유인혁’이라는 필명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바위처럼>을 비롯해 많은 노래를 지었습니다.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여행에서 만든 노랫말과 기록을 모아 《산티아고 길노래》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