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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노래] 마지막회

너의 것이 될 거야

[산티아고 길노래]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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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휴게실엔 프랜치스 혼자 앉아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공립 알베르게는 예전 대학 건물을 개조한 곳이다. 전날 산티아고에 도착한 나는 규모도 있고 시설도 만족스러운 알베르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이 휴게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고풍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해서 고급스런 살롱 같은 분위기가 났다. 나를 본 프랜치스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라뇽(Granon)에서 프랜치스를 처음 만났다. 그라뇽의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환대 문화가 살아있는 대표적인 알베르게로 수도원에서 운영한다. 모두 함께 차린 푸짐한 저녁 식사를 앞에 놓고 호스피탈레로가 오늘 생일을 맞은 순례자가 있다고 말하자 박수와 환호성이 일었다. 프랜치스의 생일이었다. 다들 신나게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를 마치자마자 스페인 친구들이 스페인어로, 다시 한 번 생일 축하 노래를 시작했다. 뒤이어 이탈리아어 노래가 이어졌다. 재미가 들린 순례자들은 차례차례 자기 나라의 언어로 생일 노래를 불렀다.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도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우리말로 노래했다. 무려 열두 번, 12개국 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들은 프랜치스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음식은 조금 식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멋진 생일이네요.”
우리도 프랜치스에게 가장 멋진 생일을 선물하게 되어 행복했다. 모두 맘껏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웃었다.  

저녁을 마친 후 기도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좁은 계단과 꼬불꼬불한 통로를 거쳐 쇠장식이 박힌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성당의 오래된 다락방이 나왔다. 호스피탈레로를 포함해서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거룩하고 신비로운 비밀 모임 같았다. 나는 호스피탈레로가 건네준 스페인 기타를 쳤고 사람들은 그 음악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여기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싶은지. 호스피탈레로가 스페인어로 사회를 봤고, 프랜치스가 영어로 통역을 했다.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다양한 언어권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영어로 말하기 어려웠던 한 친구가 양해를 구하고 자기 나라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순간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 이야기를 알아듣는 듯했다. ‘아 그래, 그런 마음으로 이 길에 왔구나. 이 길에서 무엇을 얻고 싶구나.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응원하고 있구나’.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마치 바벨탑을 세우기 전의 사람들 같았다. 프랜치스도 통역을 그만두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스무 명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함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호스피탈레로의 간단한 축도가 이어졌고, 한 사람 한 사람 서로를 안아주었다. 프랜치스와 포옹할 때 ‘생일 축하해 프랜치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마지막까지 편안히 잘 걸어가길’ 하고 마음으로 빌었다. 

다음 날 아침 그라뇽을 떠날 때 프랜치스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 노래 너무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나야말로 이런 공연을 하게 될 거라 생각지도 못해서 기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열두 번 듣는 건 어떤 기분이냐 물었더니 평생 못 잊을 일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일한다고 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게 인생의 소원이었고, 그 소원을 이룬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생일을 맞았지만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서 앞으로 걸어갈 순례길이 더 기대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프랜치스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능통한데다 미리 많이 알아보고 왔는지 순례길의 알짜 정보가 많았다. 어떤 알베르게에 전통적인 환대 문화가 잘 살아있는지, 어떤 식당이 제대로 된 음식을 내놓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나도 가능하다면 산티아고 길의 환대 문화가 살아있는 알베르게에 묵고 싶었기 때문에 잠시 동행하게 되었다. 함께 찾아갔던 알베르게가 듣던 것과는 다르게 좀 실망스러웠을 때 그는 ‘이럴 때도 있는 거지’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고, 그걸 본 나도 금세 기분이 풀려서 ‘그래, 이런 게 바로 길을 걷는 재미지’ 하고 화답할 수 있었다.  

그날 거실에서 혼자 기타를 퉁기고 있을 때, 프랜치스가 슬며시 곁으로 다가와서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 노래를 듣고는 “너의 노래에는 마음에 와 닿는 울림이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큰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순례길에서 몇 번 안 되는 공연을 할 때마다 프랜치스가 있었고, 그는 매번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을 때면 먼저 기타를 찾아서 내게 건네주곤 했다. 나는 그런 프랜치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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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산티아고에서 프랜치스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하루 늦게 산티아고에 들어왔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세상의 북쪽 끝이라 불리는 묵시아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터미널에 갔다 오는 길에 우비를 뒤집어쓴 7인의 순례자가 산티아고 어귀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비 오는 거리 한 복판에서 얼싸안고 손을 잡은 채 펄쩍펄쩍 뛰었다. “정말 잘 왔어!”  

대성당에서 함께 환영 미사를 드린 우리는 그날 산티아고 최고의 맛집을 찾아 해산물에 와인을 곁들인 근사한 저녁식사를 했다. 멋진 저녁을 마치고 알베르게에 돌아오자 다들 곯아떨어졌다. 하루 종일 비도 내렸고 제법 먼 거리를 걷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프랜치스만 잠이 오지 않았는지 혼자 휴게실로 와서 앉아 있었던 거다.  

프랜치스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야, 멋지잖아! 호텔리어에 영어와 스페인어 능통자에 시인이라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직 발표한 것은 아니라고 수줍어했지만, 그래도 멋진 일이었다. 나는 프랜치스에게 계속 시를 쓰라고, 그리고 언젠가 시를 발표하게 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프랜치스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휴게실에 기타가 있었다면 나는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을 것 같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 중 하나. 그리고 이렇게 말했겠지.
“프랜치스, 이 노래는 나 자신을 위한 송가이지만 너를 위한 노래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 계속 시를 쓰렴, 프랜치스. 수줍은 듯 손사래를 쳤지만 시를 쓴다고 말하던 네 목소리는 평소와 좀 달랐어. 그게 뭔지 나는 알아. 그러니 그건, 너의 것이 될 거야.”

 

너의 것이 될 거야 

사람들은 말하지 그건 너무 늦은 일이라고
너를 아는 친구들도 어쩌면 고개를 저을 거야
그래도 네 마음이 움직이지를 않고
너의 그 바람이 네 마음속에 살아있다면  

그건 너의 것이 될 거야 너의 것
그건 너의 것이 될 거야 음~ 너만의 것  

사람들은 말하지 그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너를 아는 친구들도 어쩌면 고개를 저을 거야
그래도 네 마음이 움직이지를 않고
너의 그 바람이 네 마음속에 살아있다면  

그건 너의 것이 될 거야 너의 것
그건 너의 것이 될 거야 음~ 너만의 것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할 수도 있어
그 슬픔과 아픔도 너의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 무엇도 너를 바꿀 수는 없겠지
자유로운 영혼이 너의 것이 될 테니까

 _ 안석희(2002)

► <산티아고 길노래> 연재를 마칩니다. 여행 전과 후, 본 연재에서 다루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는 2019년 출간한 《산티아고 길노래》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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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석희
안석희 님은 ‘유인혁’이라는 필명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바위처럼>을 비롯해 많은 노래를 지었습니다.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여행에서 만든 노랫말에 곡을 붙였고, 2019년 《산티아고 길노래》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