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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여름을 떠나보내는 시 3편

백일홍에 머물다 옥수숫대를 빠져나온 매미소리

자연이 순환하는 질서와 이치를 순리, 섭리, 철리(哲理)라고 한다. 순리가 대자연의 질서 앞에 인간을 좀 더 겸손하게 한다면, 섭리는 종교적 의미가 더해져 인간을 유약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반면 철리에 이르면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던 인간의 이성은 능동적인 주체로 바뀐다. 이치를 스스로 깨우치면서 자연을 사색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비로소 인식의 주체로 스스로가 거듭나면서 인간은 자연이 감춘 내적 질서의 조리를 밝히고 상상력을 통해 물음에 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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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대표적인 질서는 계절이다. 통념에 갇힌 여름의 이미지는 언제나 뜨겁고 햇볕이 쨍쨍하기 마련이다. 또한 여름은 결실과 완성을 위해 담금질이 절정에 달하는 성장의 시절이다. 그러나 과연 이 시절이 그렇기만 할까? 소나기가 이어져 폭우가 되고, 지반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성장이 있는가 하면 소멸도 있고, 빠져 죽는 죽음도 있고, 말라가는 죽음도 있다.  

좋은 시는 성장과 소멸 사이를 들여다볼 줄 안다. 어떤 시인은 한여름 매미의 울음소리에서 사랑의 서늘함을 읽고, 한여름 폭풍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정신을 읽는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절기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여름이 끝나가는 것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처서의 풍경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시인도 있다. 세 편의 시를 읽다 보면 여름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듯하다. 

절정에 오른 매미 울음소리의 공허함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의 소리인 쟁쟁쟁
천지(天地)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_ 박재삼(1933~1997), <매미 울음 끝에>, 《울음이 타는 가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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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묻는다. 아무리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인용한 시의 서늘한 문장들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매미의 울음이 절정을 향해가는 순간, 시인은 사랑의 의미를 찾아낸다.
이 시는 논리적인 관계를 따질 때 사용하는 유추의 방식으로 시상(詩想)을 표현했다. 유추는 이미 알려진 한 상황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다른 상황도 그러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 뜨거운 여름의 절정을 온몸으로 부닥치던 매미의 울음이 때가 되면 그치는 것처럼 사랑의 열정도 어느 순간 식어버리고, 공허함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여름은 순리에 따라 시간이 거두어 가지만 사랑은 단순히 시간 때문에 식지는 않는다.  

시인은 매미가 우는 여름의 한순간을 시로 채집해 포착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표본으로 던져 놓는다.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라는 문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린 공허함이 여름을 한가득 메운 상황을 표현한다. 사랑이 처음 시작할 때의 그 강렬함을 시인은 촉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붓더니’ 얼마 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펼쳐지는 푸른 하늘에서 시인은 사랑의 차가운 속성을 파악한다. 열정이 정적(靜寂)으로 바뀌는 순간의 처연함이 여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드는 게 ‘사랑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폭풍의 시련에도 절망하지 않는 백일홍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_ 이성복(1952 ~ ), <여름의 끝>, 《그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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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폭풍을 이겨내는 백일홍에서 강인한 생명을 느낀다. 이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적 상처를 치유하려는 모습을 표현한다. 이 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절망’이라는 시어 때문이다. 두 번 언급되는 이 시어의 문맥은 각각 이렇게 표현된다. 첫 문장은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이며, 두 번째 문장은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이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있는 ‘그 여름’이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붉은 꽃들의 이미지는 백일홍에서 비롯한다. 몇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붉은 꽃들을 매달고 있는 백일홍의 모습에서 시인은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확인한다. 백일홍처럼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모진 고통에도 불구하고‘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게 된다. 1연의 ‘백일홍’과 2연의 ‘나’는 같은 의미로 조응한다. 백일홍은 폭풍으로 상징되는 고통과 시련에도 붉은 꽃들을 매달 수 있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두 번째의 절망은 3연에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다’고 언급된다. 절망이 장난처럼 끝났다는 표현이 환기하는 것은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여름을 온몸으로 부딪쳐 생명을 끝까지 지켜내는 백일홍이다. 그런 꽃잎이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여름도 끝이 나고 만다. 화자에게는 절망의 끝이 여름의 끝인 것이다.  

여름은 시간성을 지니지만 절망은 시간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여름의 끝이 아니라 절망의 끝이 여름이라는 말은 그 여름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는 뜻이리라. ‘절망이 장난처럼 끝났다’라는 표현에서 어떤 일을 통해 자기 성숙을 확인한 존재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보통 절망은 체념으로 끝날 때가 많다. 그러나 절망을 ‘장난처럼’ 여기게 된 절실한 깨달음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순간적으로 느낀 존재의 무르익은 경지를 느끼게 한다. 

그늘과 그림자로 빠져나가는 여름 

얻어온 개가 울타리 아래 땅 그늘을 파댔다
짐승이 집에 맞지 않는다 싶어 낮에 다른 집에 주었다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떠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체 별처럼 시끄럽다

_ 문태준(1970 ~ ), <처서處暑>,《수런거리는 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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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는 일 년 절기 중 하나로, 입추와 백로의 사이에 있다. 양력 8월 중순쯤으로 대략 이 시기부터 더위가 수그러지기 시작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무렵은 뜨거웠던 여름의 막바지이자 가을의 초입이다. 이 시는 시인의 처녀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시집 뒷면에 실린 추천의 글에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장석남 시인은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라는 한 구절만으로도 이 시는 시적 서정을 획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를 아는 사람들은 그 문장을 많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가을이 오는가, /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라는 문장이 더 눈길을 끈다. 제 몸 빚어 자식을 놓는 존재가 어디 사람이나 감뿐이겠는가. 여름은 온몸을 태우다시피 해서 곡식과 과실을 빚어놓는다. 수확의 기쁨은 온전히 가을에게 넘겨주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를 내주고 스러진다. 허물도 없고, 흔적도 없이 적멸의 세계로 빠져나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지는 ‘소망(消亡)’이다.

글 | 오형석
[문학산책] 여름을 떠나보내는 시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