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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여행]

교토 에이칸도, 작은 세상을 품은 정원

몇 년 전 늦은 봄, 벚꽃은 지고 반짝거리는 연둣빛 새 잎들이 솟아올라 어느새 어른스럽게 청록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기였다. 일본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그곳, 일본 교토의 에이칸도에 갔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정원은 이것만 봐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광활했다. 단풍이 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에서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도록 넒은 마음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53년에 창건된 에이칸도의 원래 이름은 젠린지(禪林寺)였다고 한다. 에이칸(永観)이라는 주지스님이 에이칸도(永観堂)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데 단풍뿐만 아니라 77㎝ 아담한 크기의 아미타여래와 수많은 국보급 불화 보물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Kyoto_Eikan-do_by Zairon, wikimedia(CC BY).jpg
by Zairon, wikimedia(CC BY)
 

벚꽃철도 아니고 평일 낮이라 한산했던 절 내부로 들어섰는데, 어머나 절 안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 절을 지은 건지, 절을 지으며 연못을 만든 건지, 인공 목조물 안에 자연을 담아 놓은 이들의 정서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동행을 한 언니가 절의 내부를 둘러보자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정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언니에게 15분 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언니가 절을 둘러보고 오는 동안 그림을 그리겠다고.  

혼자 연못 앞 작은 벤치에 앉았다. 펜과 종이가 필요했다. 가방을 뒤적이니 펜은 있으나 종이가 없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여유롭게 그림 그릴 시간은 없을 거란 생각에 노트를 가져가지 않았다. 마땅한 종이가 뭐가 있을지 뒤적거렸다. 그리고 발견한 종이봉투. 아리마욘센에서 받은 영수증 봉투였다. 이거면 충분했다. 앉은 자리에서 봉투 뒷면에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큰 나무 두 그루가 연못을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있었다. 연못에는 아기자기한 연 잎이 피어나 있고 연 잎과 똑 같은 귀여운 청개구리가 그 아래 숨어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피식. 고 녀석 참, 명당자리에 앉았네.’ 아주 작은 세상이 절의 품에 폭삭 안겨 그렇게 쉬고 있었다. 그 세상을 들여다보고 쉬었다 가라고 작은 벤치가 두 개 놓여 있다.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복잡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속세에서 품고 온 근심과 걱정을 다 털고 가라는 누군가의 배려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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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파랗게 맑았던 연못에 짙은 붉은 기운이 점점 물들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고 에이칸도의 작은 정원은 나에게 어서 돌아가라 손짓했다. 부처가 어디 본당에만 있겠는가. 내 마음의 평정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여기가 극락왕생 명당이지. 

에이칸도는 단풍도 좋지만 자연을 품고 사색에 잠기기 좋은 작은 정원 앞에 꼭 앉아봐야 한다. 그리고 혹시 가게 되거든 아기 청개구리에게 내 안부를 부탁한다.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림/글 | 배은정
배은정 님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입니다. 사진보다 그림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