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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멕시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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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포스터

멕시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Like Water For Chocolate),1992>은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현대 여류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squivel)이 쓴 동명의 장편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브리엘 바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훌리오 코르타사르(아르헨티나), 이사벨 아엔데(칠레)의 등장 이래 중남미 문학의 중요한 개성으로 자리 잡은 몽환적 세계관과 현실 언어에 대한 변용 등을 절묘하게 스크린에 옮긴 수작으로 평가된다. 전통 소설양식에서 벗어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이 복잡다단한 소설을 용감하게 영화로 만든 것은 원작자 에스키벨의 남편이었던(!) 알폰소 아라우 감독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에 이르는 시기. 영화는 여주인공 띠따의 어머니인 엘레나 부인(레지나 토르네)이 부엌에서 양파를 썰다 그녀를 낳으면서 시작된다. 세 딸 중 막내인 띠따(루미 카마조스)는 아들이 없을 경우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를 돌본다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일찍부터 하녀의 손에 맡겨져 부엌을 놀이터 삼아 자란다. 이제 띠따에게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하녀와 다름없이 시중을 들고, 평생을 부엌데기로 지내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랑 앞에 무력하기만 한 띠따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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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아름답게 자란 띠따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정열적이고 자상한 남자, 페드로(마르코 레오나르디)를 만난 띠따는 자신의 신산한 운명 앞에 찾아온 사랑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긴다. 하지만 띠따에 대한 아들의 마음을 확인한 페드로의 아버지가 엘레나 부인(레지나 토르네)을 찾아와 두 사람의 결혼을 청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일언지하의 거절뿐이다. 멕시코 명문가인 자기들은 막내딸을 결혼시키지 않고 부모를 돌보도록 하는 가문의 전통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 그녀는 또한 띠따에게도 사랑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네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막내딸인 네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

상심에 빠진 띠따를 못 본 척 하며 엘레나 부인은 페드로에게 차라리 리타의 언니인 로사우라(야렐리 아르즈멘디)와 결혼할 것을 제의한다. 자신을 돌봐야할 막내딸만 아니면 된다는 이유. 페드로는 사랑하는 띠따와 한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제 형부와 처제가 되었다고 해서 서로를 향한 갈망이 완전히 지워질 수는 없다.

사실 부엌데기 띠따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신기한 재능이 있다. 음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마법 같은 요리 실력이다. 페드로와 언니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띠따는 여느 때처럼 정성들여 케이크를 만들지만 케이크를 맛본 하객들은 불행한 결혼의 전말을 짐작하겠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토하며 괴로워한다. 사랑을 잃은 띠따의 슬픔이 절로 케이크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띠따는 페드로를 쉽게 단념할 수가 없다. 더욱이 페드로의 진심어린 고백을 들은 뒤로는 그녀도 이제 어머니의 강압이 없는 다른 세상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엘레나 부인은 두 사람을 향한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으며 띠따의 목을 옥죈다.

가엾은 띠따가 어머니의 멸시와 강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부엌뿐이다. 요리를 하는 동안만은 더 이상 어머니의 명령으로 사랑을 단념해야만 했던 자신의 나약한 처지를 잊을 수 있다. 부엌을 지배하고, 그들이 먹을 요리를 만드는 건 오로지 그녀 자신뿐이다. 그럴수록 띠따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뜻하는 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사랑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띠따의 처지에 대한 은유적 표현도 된다.

욕망을 전달하는 12개의 멕시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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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띠따는 결국 ‘사랑의 열기가 없는 영혼은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란 자각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요리에 대한 띠따의 애정은 전과는 전혀 다른 욕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녀에게 이제 요리는 자신의 감각과 욕망을 투사하는 매개체가 된다. 영화는 띠따의 심정 변화를 분기점으로 멕시코 요리 특유의 냄새와 맛을 통해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띠따가 겪는 감정의 변화들을 그녀가 만든 요리로 설명한다. 이를테면 1월 크리스마스 파이, 2월 차벨라 웨딩 케이크, 3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4월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 5월 북부식 초리소, 6월 성냥 반죽, 7월 소꼬리 수프, 8월 참판동고, 9월 초콜릿과 주현절 빵, 10월 크림 튀김, 11월 칠레고추를 곁들인 테스쿠코식 굵은 강낭콩 요리, 12월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 등에 대입하는 식이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띠따가 만들어낸 먹음직한 멕시코 요리들이다. 실제로 원작 소설에는 각 챕터의 마지막에 요리 레시피들까지 자세히 실려 있다. 요리책의 형식을 빌려 진행되는 이 작품은 그래서 ‘요리 문학’ 혹은 ‘새로운 페미니즘 문학의 출현’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요리 자체가 완벽하게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띠따는 이제 스스럼없이 자신의 감정을 요리에 담아 표현한다.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꽃을 이용해 만든 소스에도 페드로를 향한 감정이 그대로 담겼다. 페드로 또한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향한 그녀의 욕망, 그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요리를 통해 띠따와 페드로는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불사르고, 관능적인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으로 서로에 대한 욕망을 달랜다.

띠따의 요리가 변하면서 가족들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띠따의 또 다른 언니인 헤르트루디스는 동생이 만든 음식을 먹고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다. 열기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샤워장으로 뛰어 들어가 옷을 벗어던지지만 마음속의 불은 오히려 샤워장의 나무판자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른다. 불길을 피해 알몸으로 뛰쳐나가던 그녀는 때마침 지나가던 혁명군 장교의 말을 얻어 타고 그를 따라가 버린다.

“당신의 성냥을 켤 준비가 되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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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와 로사우라 사이에 태어난 로베르토는 이상하게도 이모인 띠따의 가슴에 안기는 걸 더 좋아한다. 조카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페드로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난데없이 처녀인 띠따의 가슴에서도 젖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로베르토에게 젖을 먹이며 띠따는 처음으로 삶의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띠따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 챈 어머니는 띠따로부터 아기를 떼놓기 위해 페드로 가족을 미국에 억지로 보내는데 그곳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로베르토는 결국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된다.

그 충격으로 띠따는 정신 착란을 일으킨다. 띠따의 욕망과 아픔을 이해하는 건 오랜 세월 이 집을 드나들며 주치의로 인연을 맺고 있는 브라운 박사뿐이다. 억눌린 욕망에 괴로워하는 이 가엾은 처녀에게 브라운 박사는 말한다.

“사람은 모두 한 상자씩의 성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성냥에 불을 당기려면 산소와 초가 필요하죠. 산소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에서 얻어지며, 초는 그 성냥을 켤 수 있도록 촉발시키는 음악, 속삭임, 포옹, 소리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의 성냥도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무엇인가를 제때 찾지 못하면 금방 축축해져버리고 말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돼요.”

브라운 박사의 정성으로 몸을 회복한 띠따는 하지만 끝내 그의 구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산소와 초가 되어줄 상대는 오직 하나 페드로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다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반란군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 어머니는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둘 사이를 감시하고 괴롭힌다. 젊은 시절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사생아인 헤르트루디스를 낳았던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띠따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가까스로 어머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만 띠따에게는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이 된 로사우라가 딸 에스페란자를 낳고 더 이상은 임신할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로사우라는 이제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자신의 노후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집 세고 이기적인 로사우라는 죽은 어머니의 환생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띠따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에스페란자마저 자기처럼 비참한 인생을 살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에스페란자를 지키기 위한 띠따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숭고하다.

슬프도록 아련한 동화 같은 사랑

다시 많은 세월이 흘러 영화는 에스페란자가 브라운 박사의 아들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 사이 로사우라는 소화불량으로 죽었다. 하객들마저 다 돌아간 결혼식장엔 띠따와 페드로 두 사람만 남겨져 있다.

22년 만에야 찾아온 둘 만의 시간.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 페드로는 갑자기 찾아온 심장마비로 숨이 멎는다. ‘사람은 모두 한 상자씩의 성냥을 가지고 태어난다’던 브라운 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띠따는 하나씩 하나씩 성냥을 씹어 삼키기 시작하고, 영화는 두 사람의 몸에 불이 붙어 화염에 휩싸여 버리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사실 이 몽환적인 작품에서 서사나 줄거리, 논리적 개연성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요리에 투영된 한 여인의 욕망을 눈으로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그래서인지 123분의 러닝타임이 잠시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려 22년 동안 이어진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동화처럼 그려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부엌과 음식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부각시켜 영화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93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미국에서 총 2,167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금도 미국 내 개봉했던 외국영화 흥행순위 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글. 김정현

멕시코의 커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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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Driscoll, flickr (CC BY-SA)


멕시코는 국토의 1/3이 고원지대로 이뤄져 있다. 1790년부터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한 멕시코는 현재 세계 9위(2020년 기준 240,000톤)의 커피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재배지는 거의 국토 남부에 분포되어 있다. 화산지대인 멕시코 남부지역은 평균 1,700m 이상의 고원지대가 많아 커피 경작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고 있으며 고지대에서 재배된 품질 좋은 커피는 특별히 ‘알투라(Altura)’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유기농 커피로 유명한 ‘타파출라’ 역시 주로 이곳 남부 고원지에서 생산된다.

재배지의 고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눠지는 멕시코 커피는 보통 9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수확이 이뤄지며, 습식법이 주로 사용된다. 한때 증산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한 탓에 멕시코 커피는 ‘중앙아메리카의 저급커피’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700m 이하 지대에서 생산된 커피 수출을 금지하고, 살충제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과 ‘그늘경작법(shading)’이 시도되면서 비약적인 품질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멕시코산 커피 가운데는 남부 과테말라 국경 인근 치아파스Chiapas 지역의 유기농 커피인 ‘타파출라(Tapachula)’, 동부 대서양 연안 베라크루즈(Veracruz) 지역의 ‘코아테펙(Coatepec)’, 오악사카(Oaxaca) 지역 안에서도 오리자바(Orizaba) 화산지대에서만 나는 ‘알투라 오리자바(Altura Orizaba)’, ‘플루마(Pluma)’ 등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티피카(Typica)의 돌연변이인 ‘마라고지페(Maragogype)’ 품종 중에서도 멕시코산 ‘리퀴담바MS(Liquidambar MS)에 대한 평판도 좋은 편이다. 멕시코 커피는 신맛과 향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있어 블렌드용 커피나 톤을 짙게 로스팅하여 강한 커피를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