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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원시의 생태환경 간직한 영세중립국

영화 <쥬라기공원>의 무대, 코스타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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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공원> 포스터

1990년 어느 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출판 에이전트로부터 흥미로운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이제 막 인쇄를 위해 교정쇄를 뽑아놓은 한 소설의 판권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1975년 식인상어와의 혈투를 그린 <죠스>로 데뷔한 이래 <레이더스(1981)>, , <인디아나 존스(1984)> 등의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로 재능을 뽐내던 스필버그는 당시 모든 영화제작자들이 탐내는 헐리웃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다. 그런 스필버그에게 서점 판매는커녕 인쇄도 되지 않은 소설의 교정쇄를 보내면서 판권을 팔겠다고 나선 에이전트 또한 대단한 강심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작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자신의 공식 일정을 모두 중단한 채 직접 판권 경쟁에 뛰어들어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손잡고 거금 15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판권을 손에 넣었다. 경쟁에 나섰던 워너브라더스와 팀 버튼, 소니픽처스와 리처드 도너, 이십세기폭스와 조 단테 콤비는 스필버그라는 강적에 밀려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1994년 NBC를 통해 방영돼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TV시리즈 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던 스필버그는 판권을 구입하자마자 무엇에 홀린 듯 시리즈 작업일정을 중단한 채 곧바로 소설의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작가 마이클 크라이튼(John Michael Crichton)의 <쥬라기공원(Jurassic Park)>은 그렇게 해서 소설이 출간된 지 3년 만인 1993년 마침내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무대가 된 중남미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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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의 자연풍광
[저작자] by Ted Murphy [출처] www.flickr.com/photos/25182329@N02/3433091382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에 헐리웃 최고의 흥행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거기다 유니버설스튜디오의 엄청난 기술력이 집약된 이 블록버스터 영화는 한마디로 좀처럼 흠을 잡기 힘든 매끈한 상업영화였다. 개봉 전부터 마이크 크라이튼과 스필버그라는 이름만으로도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쥬라기공원>은 예상대로 전 세계에서 9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들 사이에도 때 아닌 ‘공룡 열풍’을 불러 일으켜 피규어, 완구, 캐릭터 상품 등 부가상품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국내 흥행스코어 역시 독보적이었다.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서울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서편제(1993)>의 흥행돌풍 속에서도 이 영화는 전국 관객 31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랭킹 2위에 오를 만큼 압도적인 성공을 거뒀다. 기발한 상상력과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할 만큼 현란한 <쥬라기공원>의 그래픽은 그만큼 당시로써는 ‘영화 혁명’이라 부를 만큼 충격적이었다. 40여 년의 작가생활 동안 25권의 소설을 통해 모두 2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1천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원작의 인기와는 별개로 영화로 만들어진 <쥬라기공원>에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버드대학원 의과대학 출신인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인간의 모든 질병은 인간 자신에게서 기인한다’는 믿음 때문에 과학기술에만 의존하는 의학계에 회의를 느껴 의사로써의 삶을 포기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자주 다뤘던 소설의 주제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의 문제였다. 과학에 대한 인간의 맹신과 자만이 초래하는 섬뜩하고 암울한 미래 이야기는 초기작인 <안드로메다 스트레인(1971)>, <터미널맨(1974)>을 비롯해 90년대 중반 이후 쓴 <콩고(1995)>, <트위스터(1996)>, <스피어(1998)>등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영화 <쥬라기공원> 역시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지칠 줄 모르는 프로 정신이 빚어낸 스토레텔링이 압권이다. 이 영화는 6만 5천년 전 멸종된 공룡을 복원해 돈벌이를 위한 생태 테마공원을 만들겠다는 존 해몬드라는 사업가의 야심과 지칠줄 모르는 탐욕으로부터 출발한다. 해몬드 회장의 초대로 고생물학자 앨런 그랜트(샘 닐) 박사와 그의 애인이자 고식물학자인 엘리 새틀러(로라 던) 박사,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 박사 등 일단의 전문가들이 코스타리카 연안의 작은 섬 ‘이슬라 누블라’로 초대된다.

사실감 넘치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전세계 흥행 돌풍

섬에 도착하자마자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놀랍게도 거대한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다. 해몬드 회장은 고대 도마뱀의 피를 빤 모기가 담긴 호박 화석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한 뒤 양서류의 DNA를 결합해 각종 공룡들을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세계 유일의 테마파크 ‘쥬라기 공원’을 개장할 계획이다. 살아 움직이는 공룡들의 모습에 압도된 전문가들은 다음날까지 공원 안에 머물며 계획대로 안전 진단을 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유전자복제 기술을 이용해 모두가 한번쯤은 꿈에 그려보았던 공룡을 현실에 복원하는 일은 과연 과학기술의 축복이기만 한 걸까? 해몬드 회장은 유전자 조작으로 암컷 공룡들만 만들어냈다며 전문가들을 안심시킨다. 그의 장담처럼 겉으로 보기엔 공룡들의 번식을 제한하고 활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쥬라기 공원’은 완벽한 테마파크이자 보호구역이다. 하지만 이안 말콤 박사는 ‘카오스이론’을 떠올리며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불안정하고, 불안한 듯 보이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는 공원 안의 공룡 세계가 하나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과 개입은 기어이 불행한 결과로 나타난다. 공룡의 DNA와 섞인 양서류의 DNA가 생태환경에 따라 성별을 바꿔 수많은 새끼 공룡들을 낳을 수 있는 돌연변이로 진화한 것이다. 급기야 돈을 받고 공룡의 수정란을 외부로 빼돌리려던 엔지니어의 실수로 공원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마비되고, 전기 철창이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 우리를 탈출한 공룡들은 이제 도리어 맹수의 본능을 드러내며 인간 사냥에 나선다. 극대화된 시각적 공포를 통해 스필버그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도리어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세중립국이라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코스타리카 군대에 의해 섬이 폭격을 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영화의 엔딩장면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기만 하다.

영화 초반부, 어드벤처 영화의 외형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기존의 스톱모션 대신 디지털특수효과 회사 ILM에 맡겨 작업한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이다. 수만 년 전 멸종돼 버린 공룡이 현실에서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한 사실감을 위해 스필버그는 무려 2년 동안의 사전 제작기간을 거쳐 벨로시랩터, 티렉스,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등을 스크린에 완벽히 재창조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코스타리카

3 이슬라 누블라 섬 by Henrique Zimmermann Tomassi (CC BY-SA).jpg

이 영화에 생생한 사실감을 높인 또 하나의 장치는 작품 속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코스타리카의 ‘이슬라 누블라’ 섬이다. 기반시설이나 육지와의 접근성,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실제 촬영은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주로 진행됐지만 이 가상의 섬이 서양 관객들의 현실감을 높이는 극적 장치로 작용된 것은 코스타리카라고 하는 중미의 작은 나라가 가진 원시적 매력 때문이었다.

스페인어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해변’이란 뜻을 가진 코스타리카는 북쪽으로 니카라과, 남쪽으로 파나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대서양의 카리브해로 통하고 서쪽은 태평양과 접해 있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1509년 에스파냐(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던 이곳은 1821년 과테말라 독립 시기에 그 일부로 독립하였고, 1823년 중앙아메리카 4개국과 연방공화국을 결성했다가 5년 후 연방에서 탈퇴한 후 1848년 정식으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남한 면적의 절반 크기에 인구 역시 475만여 명에 불과한 중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는 서양인들에게는 ‘생태관광의 낙원’이라 불릴 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사랑받는 세계적인 휴양관광지이다.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25%가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도시 외곽으로 조급만 나가도 울창한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프리카 대륙보다도 단위면적당 식물 종수가 풍부한 이곳은 육지면적의 0.3%에 불과한 대신 세계 산림면적의 5%를 차지할 만큼 생태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전력생산량의 91%가 재생에너지일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난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을 표방한 코스타리카에는 또한 군대가 없기 때문에 해마다 많은 예산을 주민들의 복지에 사용한다. 미성년자의 병원 치료 역시 무료로 운영된다. 다양한 생물자원과 관광자원을 가진 덕분에 영국 신경제재단의 행복지수조사에서 2009년, 2012년 두 번이나 1위에 오를 만큼 행복지수도 높은 편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하필 공룡들이 뛰어노는 원시의 낙원을 코스타리카로 설정한 이유는 이렇게 국토 전체가 울창한 원시삼림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자연환경과 태초의 인간들이 살던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복지선진국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코스타리카는 원래 식민지 모국인 스페인조차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곳이었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희귀 광물도 없고 노동력으로 쓸 수 있는 원주민의 수도 많지 않아 원래부터 식민지 지배권력이 매우 취약했다. 독립 이후 일부 엘리트들이 대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대신 비옥한 경작지를 바탕으로 커피 재배가 성행하면서 이곳에는 남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르게 중소 자산계급이 형성되었다. 커피는 지금도 코스타리카 국가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3대 수출품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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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커피 역사, 지금도 국가 3대 수출품의 하나

1779년 쿠바를 통해 처음 커피를 받아들인 코스타리카는 식민지 시절인 1808년부터 재배를 시작해 1820년부터 커피수출을 시작했다. 국토 대부분이 무기질이 풍부한 화산토양과 온화한 기후로 이루어져 있어 커피 생산국 중에서도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가장 많은 코스타리카는 커피의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커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아라비카(Arabica)만을 재배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커피 품질에 영향이 적은 습식가공법(Wet Method)만을 고집하는 것도 코스타리카산 커피의 특징이다. 2008년 기준 커피생산량은 9만 5,640톤으로 세계 14위이며, 대표적인 커피 산지로는 수도인 산 호세(San Jose) 남쪽의 타라주(Tarrazu)와 태평양 연안의 트레리오스(Tres Rios), 브룬카(Brunca), 투리알바(Turrialba) 등이 유명하다.

코스타리카는 바다 연안은 열대성, 내륙 산악지대는 온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어 생산지에 따라 커피 맛에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큼한 과일류의 신맛과 산도를 가지고 있어 고급 스트레이트 커피(straight coffee)나 블렌드 커피(blended coffee)용으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커피 원두의 크기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다.

재배지의 고도에 따라 8등급으로 나뉘는 코스타리카 커피는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일교차가 커 생두의 조직이 단단하고 향미가 짙어 커피애호가들의 특히 즐겨 찾는다. 이 가운데서도 해발 1,200∼1,600m 사이에서 재배된 커피는 ‘SHB(Strictly Hard Bean)’로 표시하며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수확 시기는 매년 8,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이다.

타라주(Tarrazu) 지역의 라 미니타(La Minita) 농장에서 생산한 ‘카투아이(Catuai)’와 ‘문도 노보(Mundo Novo)’는 최상급의 타라주 커피로 유명하다. 또한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변종 커피인 ‘카라콜리(Caracoli)’와 ‘피베리(Peaberry)’는 역시 ‘커피의 진주’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해발 1,500m 고지대에 있는 트레리오스(Tres Rios)농장에서 생산하는 ‘코스타리카 SHB(Costa Rica SHB)’나 도카(Doka)농장의 커피도 코스타리카를 대표하는 커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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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의 한 커피 농장에서 생두를 건조하고 있다.
[저작자] by LeafLanguages [출처] www.flickr.com/photos/76708317@N02/8359668902
 
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