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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엘살바도르의 비극, <살바도르(Salvador)>

우리는 제 삶을 ‘기록하는 자(記者)’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13년 전 세계가 주목할 폭로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국 정보기관의 불법 감시, 감청 등을 입증할 대량의 일급 기밀문서가 공개된 것이죠. 문서에는 CIA(미국중앙정보국)나 NSA(미국국가안전보장국) 등의 미 정보기관이 테러 방지라는 명분하에 테러 용의점이 있는 혐의자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한번이라도 연락을 했던 주변 사람들, 나아가 무고한 일반인들까지 무차별로 감청, 감시를 일삼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욱이 미 정보기관이 국익을 앞세워 불법 감찰, 도청을 일삼아온 대상에는 자국 민간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상들까지 포함돼 있어 파장이 더 컸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자행된 미 정부의 불법을 폭로한 이는 미 CIA 출신의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서른 살에 불과하던 그는 이전까지 누구보다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특수부대에 자원해 다리 부상을 입고 의가사제대까지 했던 스노든은 그런데 왜 국가의 적이 되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문서를 공개해버린 것일까요.
그 이유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인정받아 일하게 된 CIA에서 미 정보기관의 추악한 이면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나 정부 기관을 비난하는 사적 글까지 찾아내 감시하는 불법 프로그램과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무제한 열람할 수 있는 전방위적 사찰은 그가 발견한 ‘진실’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불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스노든은 마침내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홍콩의 한 호텔에서 이뤄진 폭로 기자회견 이후 그는 미국 정부의 1급 수배자로 낙인 찍혔고,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해 가까스로 러시아로 망명한 후 지금까지도 모스크바 모처에 은신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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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감독의 ‘문제작’

세계를 경악시킨 이 사건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자 영화팬들은 이 반골 영화의 연출 적임자로 일제히 한 감독의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오랜 세월 사회비판적 영화에 천착해온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입니다.
예상대로 ‘반골 감독’ 올리버 스톤은 미 정보기관의 불법 정보 검열을 비판하며 개인의 자유 의지를 수호하려는 스노든의 고뇌를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해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2012년 <파괴자들>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올리버 스톤은 <스노든(2016)>으로 “또 한 번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절묘하게 파헤쳤다”는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감독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노장의 저력을 입증했습니다.

개봉 전부터 이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모은 것은 올리버 스톤의 연출력이 가장 크게 발휘될 수 있는 장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1946년생인 올리버 스톤은 헐리웃에서 활동하는 상업영화 감독 가운데 가장 ‘삐딱한 인물’로 평가되어온 문제적 인물. 1986년부터 시작된 그의 필모그래프만 살펴봐도 사회고발 소재에 대한 애착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데 <플래툰(1986)> <7월 4일생(1989)> <JFK(1991)> <하늘과 땅(1993)> <닉슨(1995)> 등이 문제작들이 모두 그의 손을 빌어 세상에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죠.  

‘젊은 거장’이었던 올리버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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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개봉한 영화 <살바도르 Salvador)> 또한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올리버 스톤의 문제작으로 평가됩니다. 엘살바도르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고발과 라틴아메리카의 폭압적인 파시스트 독재를 후원한 미국의 절름발이 외교를 비판한 이 영화는 1980년 실제 일어났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피살 사건’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술과 마리화나에 빠져 밑바닥을 전전하고 있는 삼류 프리랜서 기자 ‘리차드 보일(제임스 우즈)’의 암담한 현실로부터 출발합니다.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질려버린 아내가 ‘Fuck you’라고 쓴 메모 한 장만 남긴 채 집을 나가버리자 보일은 방탕한 생활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엘살바도르 취재를 자원합니다. 하지만 술주정뱅이에 사고뭉치인 그에게 기자증을 선뜻 내줄 신문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엘살바도르에 가면 단돈 7달러에 처녀를 살 수 있다”는 거짓말로 의사 친구를 꾀어 현지로 날아갑니다.

보일의 눈에 비친 엘살바도르는 혼란과 부조리로 펄펄 끓는 용광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국민 모두의 희망이 군부독재라는 용광로에서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는 엘살바도르의 비참한 현실엔 관심조차 없는 보일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마리아(엘피디아 칼리로)와 사랑에 빠지고 하루 빨리 그곳을 떠나 그녀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에만 몰두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인 그의 눈에도 조금씩 그 부조리한 현실이 눈에 가시처럼 박히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엘살바도르 정부군이 혁명군을 무혈 진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피를 뿌리며 죽어간 수십 명의 사상자와 3,000여 명의 실종자들은 부인할 수 없는 일방적 살육이었죠. 그럼에도 보일은 취재 중 알게 된 <뉴스위크> 프리랜서 사진기자 존 케세디(존 세비지)의 취재 열정을 비웃을 만큼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현실을 외면합니다.  

기자는 카메라에 어떤 ‘진실’을 담는가

이에 비해 케세디는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파카를 닮고 싶어 하는 열혈 사진기자입니다.
“로버트 파카가 유명해진 건 돈이 아니고 인간의 고통, 삶의 숭고함을 추구했기 때문이야. 나도 언젠가는 카파처럼 찍고 싶어. 진실을 잡으려면 더 가까이 가야 해. 물론 너무 가까이 가면 죽지만…”  

케세디는 위험천만한 취재 현장을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보일의 관심은 여전히 마리아와 안전하게 엘살바도르를 빠져나가는 것뿐, 사진 몇 장으로 ‘진실’을 포착하겠다는 케세디를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내 방관자로 진실을 겉돌기만 하던 보일의 눈에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끔찍한 참상이 포착됩니다. 엘살바도르 군부가 군사독재 정부를 비판하던 로메로 대주교를 백주대낮에 총으로 암살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정부군들이 부상자를 돕던 네 명의 수녀를 강간한 뒤 끔찍하게 살해하는 것을 본 보일의 내면에도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혁명군 대장과 인터뷰를 하게 된 보일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벌이는 미국 정부의 추악한 뒷거래를 알게 되고, 자국의 안보를 위한다는 미명 하에 군부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점점 현실을 직시하게 된 보일은 과연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영화는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당선에 맞춰 대공세를 시작한 혁명군과 이번 기회에 그들을 궤멸시키려는 정부군과의 교전을 다루면서 클라이맥스로 나아갑니다. 보일과 케세디 역시 전투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명분 없는 엘살바도르 내전의 참상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치열한 교전 현장에서 흰 수건을 펼쳐든 그들은 혁명군과 정부군 진지를 분주하게 오가며 전쟁의 양상을 고발하기 위해 힘씁니다.

‘미국의 오판’이 불러온 비극

마침내 그들 앞에 놓칠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혁명군을 향해 기총소사와 포격을 퍼부으며 홀연히 나타난 미군 전투기 한 대. 이로써 미국이 엘살바도르 내전에 개입해 죄 없는 국민들을 살육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명백해집니다. 순간 두 사람은 이 사진이야말로 목숨을 걸고라도 찍어야 할 진실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카메라를 움켜쥔 채 뛰어나갑니다. 그 순간 불행히도 보일의 카메라는 고장 나 버리고, 극적으로 등장한 케세디가 전투기 앞에 몸을 드러낸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댑니다.
영화는 결국 기총소사에 맞고 숨이 멎는 케세디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기자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상징적인 한 마디 대사로 보여줍니다. “결국 내가 찍었어. 필름을 뉴욕으로 보내줘. 오, 하나님, 기어이 찍었어요!” 

영화 제목인 ‘살바도르(Salvador)는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많은 지명과 인명에 쓰이는 성스러운 단어입니다. 그들에게 과연 진정한 ‘구원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영화는 라틴아메리카의 파시스트 독재를 후원한 미국의 비상식적 외교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제3세계 국민들의 참상을 매우 절묘하게 병치시킵니다. 어쩌면 그들이 기다리는 구원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누군가의 작은 용기’는 아닐까요. 눈앞에 놓인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 또한 국가의 거짓말에 동조하는 공모자나 다름없다는 걸 <살바도르>는 담담히 일러줍니다.

누군가를 위해 꼭 밝혀야할 진실을, 또한 그 진실이 불러올 구원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각자 또한 자기 인생을 ‘기록하는 자(記者)’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글 | 김정현

 

엘살바도르의 커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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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연안에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의 정식 명칭은 ‘엘살바도르 공화국’이다.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로 전체 인구 역시 약 600만 명에 불과하다. 16세기 이후 오랫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던 이곳은 19세기 공화국으로 독립한 뒤에도 극심한 내전에 휩싸여 체계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고, 20세기 들어 군부독재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1880년대까지 최고 수출품이었던 엘살바도르의 커피산업은 이후 독재정권이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수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했지만 생산량은 꾸준히 성장했다. 1930년대까지 전체 국가 수출량의 90%를 담당하기도 했던 커피는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기에 커피값 폭락이라는 직격탄을 겪기도 했다.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1970년대 약 350만 자루를 기록하던 커피생산량은 현재 약 250만 자루로 감소되었으며, 커피농가들의 이농도 이어지고 있다.
엘살바도르 커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파카마라(Pacamara)는 풍미가 좋고 향이 과하지 않아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국토 서쪽 지역인 산타아나(Santa Ana) 주변에서도 맛과 향이 균일한 품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고 있다.

[커피시네마] 엘살바도르의 비극, <살바도르(Salv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