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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이야기] 지중해와 북유럽의 전설

바다 심장을 닮은 아쿠아마린

[보석 이야기] 지중해와 북유럽의 전설.

오래전 호주에서 공부하던 때 일입니다. 같은 집에서 유학하고 있던 프랑스 친구와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호주 북쪽 케언즈에서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레이트 샌디(Great sandy) 국립공원을 따라 쭉 뻗은 해안가 길을 따라 누사(Noosa) 해변까지 걸었습니다.  

호주의 날씨는 남반구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대략 2월까지는 한국의 여름 날씨를 보이다가 3월 말부터는 가을이 완연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복장은 다양해집니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이들은 반팔을 입고 있고, 서둘러 가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은 모자 달린 후드티셔츠를 많이 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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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 호주 바다, 지치지 않는 삶이란

여행길에 나섰을 때는 우기의 막바지인 3월쯤이었습니다. 잿빛 구름이 탑처럼 쌓이더니 주변이 어둑해졌습니다. 이내 무거워진 구름이 부풀어 오르며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래킹 중에 마주한 소나기는 더위를 식혀줄 만큼 시원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죠. 한참을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다시 파란 하늘에 선명하게 태양이 드러났습니다.  

쉬어갈 겸해서 동행한 프랑스 친구와 벤치에 앉았습니다. 호주 바다는 정말로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일상의 걱정도 여행길의 배고픔도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등 뒤로 나뭇잎으로 모인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습니다. 바다는 한적하고 무척 조용했습니다. 구름 지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여행길에 나섰던 처음의 목적을 생각해 보았죠. 공부 이후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일정과 계획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는 잔잔하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지치지 않고 움직이듯이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리라’ 호주의 바다는 제게 그렇게 다짐하라고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생각에 빠져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프랑스 친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Le Ciel, Oh… Le Ciel(바다여, 오! 바다여)”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 친구는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답니다. 너무 감동받아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때 저도 속으로 외쳤지요. ‘바다여, 내 삶에도 당신의 지치지 않는 푸른 물결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청춘을 품은 푸른 물빛, 3월의 탄생석

지금도 ‘아쿠아마린(aquamarine)’이라는 보석을 보면 호주 누사에서 본 바다가 떠오릅니다. 금하나 가지 않은 그 강렬한 푸른 물빛은 제 청춘의 빛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아쿠아마린은 바다를 품고 있는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아쿠아마린은 그리스어로 물을 뜻하는 ‘아쿠아(aqua)’와 바다를 의미하는 ‘마레(mare)’의 합성어입니다. ‘바다의 보석’ 또는 ‘바다의 혼’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 이유로 아쿠아마린은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주 먼 옛날, 햇살이 화창한 봄날 지중해 연안에서 뛰놀던 인어들이 서로의 미모를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던 보석 상자를 열어 몸을 치장하다 한 인어가 그만 보석하나를 바다에 떨어뜨렸습니다. 한참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죠. 바다 깊숙이 떨어진 보석이 바로 아쿠아마린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의 심장에 떨어져 박힌 아쿠아마린 때문에 바다는 영원한 젊음을 갖게 되었고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 빛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은 북유럽의 선원들에게 구전되는 이야기입니다. 바다가 처음 시작하던 때 보석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는 고래가 있었습니다. 고래의 심장은 바로 아쿠아마린이었습니다. 고래가 지나갈 적마다 바다는 아쿠아마린의 하늘빛으로 채워지고 바다는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 전설 때문에 지금도 선원들은 오랫동안 배를 탈 때는 아쿠아마린을 몸에 지닌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쿠아마린은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하는 3월의 탄생석이 바로 아쿠아마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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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렬한 바다 빛 ‘산타마리아’

아쿠아마린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사파이어나 블루토파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베릴’계통의 보석이지요. ‘베릴’계의 대표적인 보석에는 에메랄드가 있습니다. 아쿠아마린은 에메랄드의 사촌쯤 되는 보석이라 할 수 있지요. 에메랄드는 녹색이고 내포물이 많아서 불투명한 보석입니다. 반면 아쿠아마린은 내포물이 거의 없는 매우 투명한 보석이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둘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쿠아마린은 투명하기 때문에 세 단계 이상의 스텝컷(Step Cut), 즉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커팅으로 깎거나 카보숑(Cabochon : 커팅을 하지 않고 머리 부분을 갈아놓은 보석), 즉 반달 모양의 커팅을 많이 합니다. 최대한 맑고 투명한 본연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화이트골드(백금)’나 ‘실버(은)’ 재질의 보석에 많이 사용됩니다. 하얀색에 파란 빛이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아쿠아마린의 색은 연한 바다 물빛이 기본이지만 농담에 따라 진하고 연하고 차이가 생깁니다. 컵에 물을 부어놓고 파란색 수채화 물감을 떨어뜨린다고 상상해보시죠. 한 방울과 여러 방울은 농담 때문에 다양한 색감이 나옵니다. 옅은 색에서 짙은 색으로, 무겁고 깊이 있는 색에서 가볍고 밝은 색으로 바뀝니다. 마치 사람들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색감을 보여줍니다.  

아쿠아마린에서 가장 좋게 평가받는 색은 짙은 하늘색입니다. 이는 유명한 아쿠아마린 광산인 산타마리아(Santra Maria de Itabira)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채광되는 아쿠아마린은 이 광산의 이름을 따서 ‘산타마리아(Santa Maria)’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보석은 최상급의 아쿠아마린을 의미합니다. 루비나 사파이어의 강렬한 색깔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쿠아마린의 편안한 파란색을 좋아할 것도 같습니다. 바다를 가슴에 품는 느낌일 수도 있고, 시원한 얼음을 탄 주스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새 퇴근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정말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네요. 지하철은 여전히 수많은 인파로 붐빕니다. 손잡이를 잡고 온몸을 버티는데 이내 눈이 감깁니다. 20년 전 그해 여름, 호주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고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지납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바다로부터 불어와 머리칼을 간지럽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새근거리는 아가처럼 평온합니다. 햇볕은 파란 바다에 하나 가득입니다. ‘Le Ciel Oh my Le Ciel.’

글 | 이승우
이승우 님은 보석과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보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문예지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현재 보석회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국 보석감정사(Graduated Gemologist)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