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모두의 테라스
[커피 in 가요] ‘노래하는 음유시인’ 조동진

수채화처럼 스며들던 노래

[커피 in 가요] ‘노래하는 음유시인’ 조동진.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가수입니다.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로 추앙받기도 하는 그는 1962년 음반 <밥 딜런((Bob Dylan)으로 데뷔한 뒤 1963년 발표한 <Blowin in the Wind>과 1965년 <Like a Rolling Stone>, 1973년 <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명곡을 통해 음악 장르의 예술적 지평을 몇 단계 높여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커피인가요-2.JPG

시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랫말

하지만 그가 처음 노벨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1997년부터 과연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 자격을 가진 ‘작가(作家)’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추천서를 통해 “그의 언어와 음악은 시와 음악 간의 핵심적이며 오랜 기간 존중되어온 관계가 회복되도록 도왔고,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킬 만큼 영혼에 깊이 스며들었다”며 반대 의견을 일축합니다.
결국 밥 딜런은 노벨상 후보로 처음 이름을 올린 지 이십여 년 만에 미국 음악의 위대한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로써 다만 ‘시적(詩的)’이라고 칭송되던 그의 노래 가사는 새로운 전형의 문학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죠. 

알다시피 노벨문학상은 한 작품이 아니라 생애전반에 걸쳐 이룩한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하는 상입니다. 밥 딜런 역시 데뷔 이후 2012년까지 31개의 정규앨범에 실린 288곡의 노래와 비정규 앨범에 수록된 99곡 등 모두 387곡의 자작곡을 통해 ‘신의 칼날처럼 듣는 이의 가슴을 관통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이들은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의 가사는 풍부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문학작품 못지않게 잘 짜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음악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들을 충돌시키고 새롭게 파편화합니다.  

포크로 시작했던 그의 편력이 컨트리와 복음성가를 거쳐 일렉트릭까지 나아간 것처럼 그의 노래가사 역시 저항과 서정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갑니다. 인권과 반전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감미로운 연애시인이기도 했습니다. 포크와 록을 넘나든 뮤지션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만큼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가수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밥 딜런이 평생에 걸쳐 새롭게 창조한 그 영역을 하나의 문학적 업적으로 인정하다는 뜻이지요. 조금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멜로디를 제거한 노래 가사 차체가 뛰어난 시(詩)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는 또 ‘노래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밥딜런’…아련한 추억을 남긴 <제비꽃>

멋진 가사를 쓰고 싶은 건 멜로디 못지않게 뮤지션들의 마음을 추동하는 열망일 겁니다. 우리 가요사에도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명곡들이 많습니다. 2017년 8월 28일 지병으로 작고한 ‘포크계의 대부’ 조동진(1947∼2017) 역시 고요한 듯 몽환적인 멜로디와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가사로 사랑받아온 뮤지션입니다. 

조동진의 노래들은 대개의 포크 가수들이 드러내던 저항적 이미지보다는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서정적인 노랫말이 특징입니다. 그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3집 수록곡 <제비꽃>은 싱어송라이터 조동진의 음악적 역량과 그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죠. 음반은 그 후 다섯 번이나 재발매 되었고 약 30만 장의 판매고룰 올렸습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커피인가요_제비꽃.jpg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식물 ‘제비꽃’은 보랏빛의 은은한 꽃잎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제비꽃의 꽃말 중 하나는 ‘나를 기억해주세요’라고 합니다. 조동진은 한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저렇듯 담담한 어조로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곡이 발표되던 당시에 가요팬들 사이에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돌았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가사 속의 소녀가 실제로 조동진과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의 딸이며,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아이의 병문안을 갔다 온 뒤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죠. 물론 조동진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동진의 노랫말은 대부분 이 노래처럼 곱게 그린 수채화를 연상시킵니다. 마치 노래 속으로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서 조용히 늙어가는 인생을 끌어다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수채화는 기교를 배제한 채 몇 번의 꼼꼼한 붓질로 담백하게 그려낸 수채화 같은 여백의 미가 느껴집니다.  

록그룹 멤버로 활동했던 포크계의 대부

영화감독 조긍하의 아들로 태어난 조동진은 직접 진공관 오디오를 조립할 정도로 오디오에 심취한 큰 형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대광고 재학 시절, 친구들과 교내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한창 유행하던 비틀즈 음악을 주로 연주했지만 점차 종로나 명동의 음악다방을 드나들며 밥 딜런, 레너드 코헨, 비지스 등의 포크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19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던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친구들과 동두천 등 미8군 무대에 서게 되면서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연주한 곡들은 주로 클럽 파티의 흥을 돋우는 신나는 록 음악들이었죠.  

미8군에서 시작된 그의 연주 경력은 당시 유행하던 생음악 무대로까지 이어져 그는 친구들이 모두 밴드를 그만둔 뒤에도 명동의 ‘미도파 살롱’이나 ‘오비스 캐빈의 무대에 오르며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훗날 ‘포크 음악의 대부’로 불리게 되는 그가 당시 미8군 무대 및 종로의 우미회관 등에서 록밴드 ‘쉐그린’의 멤버로 활동했다는 건 좀처럼 믿기 힘든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전문연주자로 남기보단 스스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창작을 위해 연주를 멈추고 골방에 칩거하게 됩니다.  

그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건 연대 앞에 있는 카페 ‘비잔티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가수 이장희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중학교 동창인 윤형주와도 재회합니다. 이 무렵 그는 일렉트릭 기타 대신 통기타 음악에 심취하게 됩니다. 연배가 비슷한 다른 포크 가수들은 주로 종로나 명동, 을지로, 충무로 등의 생음악 무대에 자주 섰지만 조동진이 노래를 부르는 건 비잔티움이 유일했습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그가 어쩌다 머뭇거리며 기타를 잡고 부르던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 등의 팝 계열의 곡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조동진은 이 때 포크 계열의 노래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습작처럼 곡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조동진이 본격적으로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연대 앞 비잔티움 시절부터였습니다.  

1969년 공전의 히트곡인 <작은 배>가 탄생합니다.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던 정릉 ‘청수장’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시인 고은에게 받은 짧은 시에 자신이 아주 단순한 멜로디를 붙여 만든 곡이었죠. 이 노래엔 조동진의 ‘색깔’이 담겨 있습니다. 노래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었죠. 이 노래의 히트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기타 한 대로 록 그룹들의 레퍼토리를 완벽히 소화하기 시작하면서 ‘1인 그룹사운드’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한국적 포크의 전형을 제시한 싱어송라이터

커피인가요-1.jpg

창작에 대한 욕심에 불타던 70년대 중반까지 조동진은 오리엔트프로덕션의 전속밴드 ‘동방의 빛’ 멤버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서유석(<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 김세환(<그림자 따라>), 윤형주(<작은 불 밝히고>), 송창식(<바람 부는 길>), 투코리언스(<들리지 않네>) 등 포크 가수들에게 곡을 만들어주며 ‘조동진표 음악’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제비꽃> 역시 73년 발매된 양희은의 ‘고운 노래모음 2집’에 실린 창작곡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가 뒤늦게 데뷔음반을 만들 게 된 건 1978년입니다. 그의 오랜 동료들인 ‘동방의 빛’ 멤버들이 연주를 맡은 그의 앨범은 뒤늦은 데뷔가 무색하리만큼 탄탄한 완성도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특히 이 음반에는 70년대 초반 가수 김세환에게 주려고 만들었다가 묵혀 두었던 노래 한 곡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조동진의 명곡 <행복한 사람>입니다. 

커피인가요-3.jpg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외로운가요 당신은 외로운가요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아직도 남은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그의 노래들은 담담하고 잔잔하며, 왠지 모르게 텅 빈 듯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단순하고 명료한 멜로디에 실린 가사는 자극적이지 않은 말들로 가슴에 길고 긴 울림을 남기는 명곡이었습니다.  

한편 그는 1980년 이후 언더그라운드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던 선배였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과 ‘시인과 촌장’ 역시 그의 언더그라운드 시절 그에게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라고 하죠. 천성적으로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데뷔 기회를 잡지 못한 후배 가수들에게 유독 사려 깊은 면모를 보여주던 선배였습니다. 그의 주선으로 데뷔 앨범을 낸 후배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살아생전 밥 딜런처럼 화려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지만 최성원, 이규호, 정혜선, 장필순, 조동익, 김광석, 하덕규, 박학기 한동준, 조규찬 등 40여 명에 이르는 ‘조동진 사단’의 후배와 동료들, 그의 노래에 울고 웃었던 팬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