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모두의 테라스
[커피시네마] 베네주엘라 영화 <신의 전사(God’s Slave)>

그들은 모두 신의 대리자인가?

베네수엘라 영화 <신의 전사>는 그들의 신(神)이 부여한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아랍인 테러리스트 ‘아메드’와 목숨을 걸고라도 이를 막으려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요원 ‘다비드’의 숙명적인 만남과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실제 1994년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협회 본부빌딩(AMIA)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 85명의 사망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AMIA건물 테러 사건은 지금도 최악의 테러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무슬림 무장 세력의 소행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여러 정황 증거로 볼 때 이 사건이 무슬림의 소행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스라엘 역시 같은 방식으로 테러범을 응징하고 있다는 것. 돌고 도는 ‘피의 보복’은 대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두 세계의 평화적인 양립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암살당한 부모의 복수를 위해

커피시네마1.jpg

이 영화는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의 오랜 갈등을 배경으로 한 첩보스릴러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갈등이 빚은 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한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수십 년 간 세계 도처에서 공공연히 살인, 납치, 암살, 테러 등의 섬뜩한 살육전을 벌여온 게 공공연한 비밀인 것처럼, AMIA건물 테러 사건 역시 물과 기름 같은 두 세계의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건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무슬림과 이스라엘 간의 깊은 갈등이 낳은 역사적인 테러사건을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드라마로 담아낸 이는 2014년 어바인국제영화제에서 가족드라마 <맥섬(Machsom)>으로 대학영화상을 수상한 조엘 노보아 감독이다. 2012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 젊은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필모그래피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두 집단의 대립과 역사의 소용돌이에 발을 담근다. 신의 섭리를 증명하기 위해 잔인한 희생을 감수하는 개인들의 슬픈 운명은 스릴러와 드라마를 표방한 이 젊은 감독의 영화를 통해 보다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영화는 1994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사는 아랍계 외과의사 아메드(모하메드 알칼디)의 평범한 일상을 훑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천진난만하기만 한 귀여운 아들이 있다. 그의 일상은 누가 보아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조직에서 중남미에 파견한 급진적인 무장 테러 조직의 일원. 상부의 지시에 따라 4년 전 고향 레바논을 떠나 중남미 베네수엘라로 이주했던 아메드는 조직의 결정에 따라 신분을 세탁하고 새로운 임무가 부여될 때까지 애써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조직은 머지않아 아르헨티나에서 모종의 자살 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다. 약 3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중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대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어 아랍인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곳.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은 유대인들의 행복한 일상에 균열을 만들고, 자신들의 성전에 걸림돌이 되는 이스라엘 첩보부대 ‘모사드’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유대인 밀집 지역에서 대규모 폭탄 테러를 감행할 예정이다. 그 성스러운 임무의 수행자로 제발 자신이 지목되길 아메드는 간절히 기도한다.  

아메드는 어린 시절 레바논에서 유대인 첩보원에 의해 부모가 암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을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자신의 손으로 피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온 모하드는 이제 자신에게 부여될 신의 사명을 완수할 일만 남았다.  
 

DSC0046.jpg

테러리스트를 막으려는 모사드 요원

한편 그 무렵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책임자 다비드(반도 밀라밀)는 유대인 거주민이 많은 이곳에서 무슬림의 테러 징후를 탐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정보력을 집중한다. 자살 폭탄 테러라는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벼랑 끝에 선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집중하던 영화는 이제 참혹한 자살 폭탄 테러를 선택 할 수밖에 없는 테러리스트, 아메드와 테러를 막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친 비밀정보기관 요원, 다비드의 쫓고 쫓기는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서 유대인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正義)의 사도로 그려지고 있는 모사드(Mossad)는 현실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요인암살, 납치 공작으로도 악명이 높다. 아랍인들이 공공연히 ‘아랍의 적’으로 규정하는 이 비밀 정보기관은 1948년 ‘정보조정연구소(the Institude for Coordination)’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후 이스라엘의 주적인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한 비밀 작전을 수행해 왔는데, 모사드라는 명칭은 ‘Institud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독음으로 알려져 있다.  

아메드의 반대편에서 피의 성전(聖戰)을 막아야 하는 다비드 역시 이렇듯 신의 사명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영화에서 다비드가 몸담고 있는 모사드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안전하게 이주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됐다. 하지만 모사드는 이후 중동전쟁 등을 거치며 대 아랍 첩보활동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져 지금은 거의 모든 첩보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비밀정보기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1979년 이전에는 서방세계에서도 모사드의 존재를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또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인 구석이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모사드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단초는 1979년 이란에서 벌어진 주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때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히기 직전 문서파쇄기를 이용해 몇몇 기밀문서를 폐기했는데, 진압부대와 대치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던 인질범들이 파쇄기로 갈기갈기 찢겨진 문서들을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가며 복원한 끝에 모사드라는 비밀정보기관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사드는 오로지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비밀 정보기관이라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들에게 모사드는 이미 완벽한 공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유대인 강제수용소 설치와 학살을 주도했던 나치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15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한 일과 생체 실험의 주역이었던 요제프 멩겔레의 생사를 확인할 때까지 40여 년을 쫓아다닌 일은 모사드의 정보력과 끈기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아 있다.
 

커피시네마2.jpg

2001년 미국 뉴욕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via pixabay

신의 노예인가, 전사인가?

<신의 전사>는 이렇듯 신념과 확신 속에 자신이 신을 위한 복수의 도구로 쓰이기 원하는 두 남자의 쫓고 쫒기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문득문득 극 중에서 긴 침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던 테러리스트 아메드가 드디어 조직의 부름을 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와 자살 폭탄 테러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참혹한 자살 폭탄 테러를 앞둔 조직원들은 은신처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TV를 보고, 웃고 떠들며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조만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게 될 그들이 폭력적이고 냉혹한 테러리스트의 가면을 벗어버린 채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우리에게 신이 필요했던 진짜 이유를 곱씹어보게 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무슬림 조직원들의 자살폭탄 테러작전이 시작되고, 이윽고 아메드에게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차례가 돌아온다.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며 폭탄 제조기술자로 성장해 이제 복수를 눈앞에 둔 아메드와 테러리스트 집단의 신상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뒤를 쫓는 다비드. 이제 두 남자의 비극은 절정으로 치달아간다. 

대체 그 자비로운 신은 왜 이들에게 이렇듯 가혹한 사명을 던져준 것일까. 그리고 신의 내린 사명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다행히도 아메드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꿈꿔왔던 복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부질없는 피의 복수를 포기한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것이 조직의 리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더 이상 되풀이되는 피의 보복을 중단하기로 마음먹는다.

“알라는 나에게 명령한 적이 없어! 네가 명령한 거지!”
순교를 거부하고 뒤돌아선 아메드는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찾아 서둘러 베네수엘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로써 오랜 시간 발목에 채워져 있던 아메드의 족쇄는 끊어져버렸다. 가족에게 돌아간 아메드는 과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관객들은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가슴을 옥죄어 오던 복수에 대한 강박을 벗고 과연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복수의 완성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체로 당당히 서는 것은 아닐까. 그때 우리는 누구에 대한 복수를 완성한 것일까. 이 영화의 원제가 ‘신의 노예(God’s Slave)’인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글 | 김정현

 

베네수엘라의 커피산업  

커피시네마3.jpg

베네수엘라는 과거 백인 농장주들의 운영하던 대규모 농장 ‘아시엔다’를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남아메리카 북부 카리브 해를 접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과거부터 순하고 부드러운 커피가 생산돼 전 세계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커피는 한때 베네수엘라의 주요한 국가산업 중 하나로까지 인식되었지만, 1960년대 이후 유전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석유 위주의 수출정책이 지속된 탓에 현재는 전체 산업규모가 급격히 위축되어 있다.  

양질의 커피 산지는 콜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부 산악지역에 밀집돼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커피는 근처에 있는 항구의 이름을 따 통상 ‘마라카이보(Maracaibo)’란 이름으로 불린다. 한때 마라카이보 항은 콜롬비아 ‘쿠쿠타(Cucuta)’ 커피의 선적지로도 유명했는데, 마라카이보의 대표적인 커피로는 메리다(Merida), 트루히요(Trujillo), 다치라(Tachira) 등이 있다. 

베네수엘라 동쪽 해안산맥에서 생산되는 커피들은 수도의 이름을 따 ‘카라카스(Caracas)’란 이름으로 불린다. 카라카스 커피는 항구도시인 라 과이라(La Guaira)를 통해 수출되며, 카리브해 부근에 있는 산지에서도 ‘카리페(Caripe)’라는 이름의 부드러운 커피가 생산된다. 콜롬비아와 함께 주요 커피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던 베네수엘라의 커피 생산량은 현재 전체 커피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커피시네마] 베네주엘라 영화 <신의 전사(God’s Sl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