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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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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0 | Vol.11
월간 카페人  /  제6호  /  찻잔 스토리텔링
찻잔 스토리텔링
세상의 질서를 바꾼 전염병의 공포

인류에게 닥친 문명의 부조리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카페 안을 찬찬히 살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실내는 한적하다 못해 거의 사람이 없다. 창가 쪽의 테이블에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을 뿐이다. 종업원은 주문이 없는 틈을 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뭔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주말 이 시간이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환담을 나누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그때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멀리서부터 인사말을 건네자 조용했던 실내가 꿈틀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듯 갑자기 활기가 돈다.

“아, 여기도 사람이 거의 없네. 동네마다 코로나 때문에 난리구나. 별일 없지?”

인문학 분야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는 카페 안이 너무 조용한 게 낯선지 다시 코로나 얘기를 꺼낸다.

“여기저기서 야단이네. 뉴스도 코로나로 도배가 됐더라. 그나저나 전염병 확산이 멈춰야 할 텐데 걱정이네.”

‘세균 공포’ 식민지 확장에도 큰 영향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지 테이블이 진동으로 울린다.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내려놓으며 선배가 걱정스럽게 말을 잇는다.

“인류가 전쟁에서 죽은 숫자보다 전염병에 감염돼 죽은 사람 숫자가 더 많다는 거 알아? 스페인 독감 희생자가 1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사람의 숫자 보다 3배나 더 많아. 전쟁은 사람들끼리 하는 거니까 때로는 적의 관용과 용서가 목숨을 살리기도 하잖아. 근데 이놈들은 달라. 걸렸다하면 인정사정 안 봐준다니까. 최소한의 관용과 인간미도 없는 거지. 자비가 없는 공포 그 자체랄까.”

“무서운 얘기군요. 인류에게 참담한 피해를 준 전염병이 꽤 있죠? 중세 유럽은 흑사병이 창궐해서 붕괴됐다는 얘기도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요”

“흑사병이란 말은 사람이 이 병에 걸리면 새까맣게 타서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1340년대 유럽에서 처음 발생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유럽 인구의 30% 가까이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어. 이 원인균이 페스트라는 게 거의 정설이고. 여하튼 현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가 전염병인 것만은 분명해. 흥미롭지만 충격적인 얘기들이 꽤 많을 거야.”

“유럽을 휩쓸고 간 흑사병 말고도 몇 가지가 생각나는데요. 20세기 초에 스페인 독감으로 많게는 5천만 명이나 사망한 경우도 있었죠. 또 천연두로 15세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30%가 사망한 적도 있었잖아요. 최근의 에이즈나 에볼라바이러스도 마찬가지구요”

얼마 전에 읽었던 《총, 균, 쇠》라는 책이 생각났다. 문명 발전의 차이는 민족의 우열 차이보다는 환경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균’에 관련한 저자의 논증은 그 책의 하이라이트다. 저자는 유럽 문명이 타 지역 문명을 정복하는데 세균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유럽은 환경적 요인으로 일찍부터 동물을 가축화 할 수 있었다. 반면 비유럽 지역에서는 동물을 가축으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못한 환경을 지닌 곳도 있었다. 이런 환경의 차이는 유럽인들이 그 지역을 침략했을 때 뜻하지 않은 성과를 가져왔다. 유럽인들이 이미 내성을 갖고 있던 동물로부터 온 세균들에 비유럽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는 ‘총과 쇠’가 점령한 식민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균’도 무시 못 할 역할을 했다.

(좌) 14세기 중반 유럽의 흑사병 지도. 짙은 부분이 흑사병이 창궐한 지역으로 유럽 대부분이 흑사병으로 초토화되었다.
(우) 고대 교역길이었던 실크로드는 흑사병 전파의 통로이기도 했다.

전염병, 인류의 오만함을 비웃다

1347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의 어느 저녁, 제노바를 출발한 상선 함대가 시칠리아의 항구에 도착했다.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하나둘 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피곤에 지쳤다고 하기에는 그들이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표정이 문제가 아니었다. 동료에게 몸을 기댄 채 내려오는 선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시칠리아에 정박하는 순간, 유럽은 상상도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전염병이 퍼진 것이다. 흑사병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흑사병에 감염된 쥐들이 유럽의 무역선에 올라탐으로써 이 병균은 대서양을 향해 먼 항해를 시작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원균들은 선원들의 몸을 숙주로 건강하게 퍼져나갔고, 살아남았다. 멀고 먼 향해 끝에 병원균들은 비로소 유럽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불과 몇 달 만에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파죽지세였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로 병이 퍼져 나가는 데에는 불과 한 두 해밖에 안 걸렸다. 1350년이 되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까지 퍼져나갔다. 다음 해에는 러시아가 이 병의 희생지가 되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병은 기하급수적으로 희생자들을 만들어 냈다. 흑사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 몇 백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발하고 창궐해 나갔다. 런던 대흑사병과 베니스 대흑사병, 이탈리아 대흑사병은 1629년부터 1679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만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 잔인한 병균은 유럽을 희생지로만 삼지 않았다. 서아시아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에서 시작된 흑사병의 또 다른 숙주로 희생되었다.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모슬에까지 마수를 뻗쳤다. 1351년 이집트를 방문하고 돌아온 예멘 국왕 일행도 결국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오게 된 경로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실크로드와 몽골제국이다. 몽골제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점령해나갔다. 1347년 몽골의 기마부대가 크림공화국을 공격할 때 흑사병이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디뎠다. 몽골군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동원했다. 흑사병에 결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쓸어 담아 모은 후 투석기에 그 시체들을 담아 도시의 성벽 너머로 던졌다. 병에 걸려 죽은 시체가 생화학무기의 매개가 된 것이다.

흑사병의 원인균이 내던져진 곳에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교역소가 있었고, 교역소 직원 중 일부가 시칠리아로 흑사병을 옮겼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전염병의 숙주가 되면서 유럽에는 기하급수적으로 균이 퍼져 나갔다. 현대의학의 기술도 없었고, 사람들의 의식에 공중보건의 개념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이었다. 1315년부터 시작된 대기근은 전염병 확산을 더욱 부채질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했던 북유럽의 피해는 참혹했다. 유럽의 인구 절반이 그렇게 사라졌다.

흑사병, 유럽부터 중국까지 인구 줄여

몽골군에 의해 흑사병이 전파된 중국의 피해도 상당했다. 14세기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원나라는 몽골군이 세운 나라였다. 13세기 후반부터 창궐한 흑사병은 대략 1억 2천만 명이었던 대륙의 인구를 6천만 명으로 급감하게 만든다. 1334년 허베이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인구의 90%까지 사망하게 했으며 중국과 몽골지역에서는 2천5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유럽의 끝부터 아시아의 끝까지 흑사병은 거의 모든 지역을 휩쓸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이다. 다음 세기에까지 영향을 미친 흑사병은 결국 중국의 인구를 30% 가까이 감소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중국에까지 전염된 흑사병으로 인해 인류는 역사상 최악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유럽 지역의 인구는 흑사병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최대 50%까지 인구가 줄었다. 14세기에 유럽의 흑사병 사망자는 작게는 7500만 명에서 많게는 2억 명까지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흑사병을 연구한 어느 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지역의 경우는 인구의 80%가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흑사병 창궐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인류의 오만함을 비웃으며 병균은 염세주의가 가득한 음울한 거리로 인류를 내몰았다. 예술과 문화는 활기를 잃었으며 사람들은 전염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여겼다. 심지어 스스로를 가혹하게 자학함으로써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종교가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은 흑사병의 공포에 떨었다.

인류문명의 피할 수 없는 부조리, 전염병

사람들의 공포는 문학작품에도 각인된다. 세익스피어의 불멸의 희곡인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몬태규가와 캐퓰릿가의 싸움으로 인해 쫓기던 로미오는 성당에서 줄리엣과 결혼 서약을 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 만투아로 도망간다.
극의 절정은 이 장면에서 펼쳐진다.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가 준 수면제를 먹고 죽은 척하고 있다가 로미오를 만나 도망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로렌스 신부가 자신의 계획을 담은 편지를 전할 사람을 통해서 로미오에게 전하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람이 죽은 것이다. 사인은 다름 아닌 흑사병이었다. 극의 전개를 결정적으로 바꾼 사인이 전염병이었다는 것은 런던을 포함한 영국의 도시에서도 흑사병이 유행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는 알제리의 도시 오랑에 페스트(흑사병)가 대유행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이 특히 재미있는 것은 전염병의 원인을 파헤치거나 병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기는커녕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견뎌야만 하는 오랑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전염병들은 어떤 ‘통찰’을 인류에게 요구하는 건 아닐까 싶다. 마치 카뮈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부조리’처럼 말이다. 편하게 잘 살수록 더욱 강해지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류의 또 다른 부조리는 아닐까.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