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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음료기행] 상그리아, 모히토

모두의 우정과 청춘을 위하여

[음료기행] 상그리아, 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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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리아(sangria)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료입니다. 포도주를 기본으로 오렌지, 레몬 등을 섞어 만든 칵테일이죠. 여기에 브랜디, 트리플 섹 등 다른 술을 넣거나 복숭아, 딸기 등을 첨가해도 좋습니다. 과일이 없다면 주스를 사용해도 됩니다. 
포도주 향과 상큼한 오렌지, 레몬 향이 어우러져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갑니다. 투우, 플라밍고로 상징되는 정렬적인 스페인 문화를 오롯이 담아낸 듯합니다.   
상그리아…. 몽환적인 느낌이 나지 않나요? 한번쯤 들어봤던 이름이 떠오르지 않나요? 바로 ‘샹그리라’입니다. 

샹그리라(Shangri-La)는 1933년 영국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가상의 유토피아입니다. 작가는 샹그리라를 중앙아시아 쿤룬산맥 서쪽에 있는 곳으로, 외부와 단절된 무병장수의 지상낙원으로 묘사합니다. 단지 금은보화가 그득하고 먹을 게 풍성해서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일 테죠. 샹그리라는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입니다. 어원은 티베트 불교에서 이상향으로 일컫는 ‘샴발라(Shambhala, 香巴拉)’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먹고사는 걱정 없이 지혜롭게 사는 꿈. 그래서인지 샹그리라는 호텔, 리조트, 카페, 음식점의 상호로 많이 애용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홍콩에 본사를 둔 호텔 체인인 샹그리라 호텔을 들 수 있죠. 2001년에 중국 정부는 윈난성(雲南省) 디칭티베트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에 있는 중뎬(中甸)을 바로 소설 속 지상낙원이라며 샹그리라로 개명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상상으로 샹그리라를 묘사한 것인데, 중국 정부는 무슨 근거로 중뎬을 샹그리라라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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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누다…상그리아

다시 상그리아로 돌아옵니다. 상그리아는 스페인어로 ‘피를 나누어 줌(사혈)’의 뜻입니다. 피를 나누어줄 정도로 친한 친구에게 전하는 우정의 선물을 뜻하기도 하지요. 짙은 적색에 딱 맞는 뜻이라 할 밖에요. 

천국과 지옥의 차이에 대해 누군가 그랬다지요. 팔보다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게 했을 때 서로 상대방의 입에 넣어주는 게 천국이라면, 자기 입에만 음식을 넣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하나도 먹을 수 없게 되는 게 지옥이라고. 이 지점에서 상그리아와 샹그리라의 의미가 연결되는 듯하네요.  

이제 맛을 볼 차례. 한 카페에서 상그리아를 주문했습니다. 15분쯤 기다리니 선홍빛 상그리아가 눈앞에 놓입니다. 오렌지, 포도, 사과, 방울 토마토, 청포도 등 토핑물이 그득합니다. 한 모금 머금으니 와인과 과일향이 빠르게 입속을 점령합니다. 탄산음료가 섞여있어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갑니다. 

언젠가 스페인의 한 카페에 앉아있을 자신을 그려봅니다. 중세 유럽풍의 건물 밖에는 지중해의 태양이 하늘 중턱에 걸려있을 테죠. 피를 나눈다는 뜻의 상그리아를 마시며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그저 시간만 오래되었다고 좋은 관계라 할 수 있을지…. 와인과 과일이 만나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들어내듯 사람사이의 관계도 서로에게 좋은 향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상그리아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실 때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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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의 청춘…모히토

그는 쿠바 아바나의 새벽녘을 사랑했습니다. 낮에 달구어졌던 도시는 밤새 아래로 가라앉았고, 파도가 새벽안개를 걷어내고 있는 그 시간을. 톡톡 타자기를 누르며 그는 글을 만들어갔죠. 타자기 소리가 멈춘 틈을 파도소리, 신새벽 바람 소리가 메웠을 테죠. 한 문장 두 문장, 백지가 글로 채워질 무렵 해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고, 아바나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낮 동안 작열했던 태양이 사위어갈 무렵, 그는 바(bar)로 향합니다. 어제는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서 다이키리(Daiquiri) 칵테일을 마셨고, 오늘은 라 보데기타(La Bodeguita)에서 모히토(mojito)를 마실 참입니다. 그 시절 그가 남긴 메모가 아직도 그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 삶은 라 보데기타의 모히토와 엘 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에 존재한다.”

쿠바 특유의 정취가 물씬 밴 모히토(mojito)는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덕에 유명세를 탄 음료입니다. 럼, 라임, 라임즙, 탄산수, 설탕, 민트 잎으로 만드는 모히토는 첫눈에도 시원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잔 위에 올린 녹색의 민트 잎은 하바나 해변의 가로수를 연상케 합니다. 

1960년 쿠바 혁명정부가 그를 미국으로 추방하기까지 헤밍웨이는 제2의 고향, 아바나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1937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1938년 <제5열>,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그가 쿠바에서 완성한 작품들입니다. 특히 <노인과 바다>는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이죠. 새벽의 바다, 저녁의 모히토는 그가 또박또박 타자기 자판을 누르게 한 힘이었을 겁니다. 

쿠바의 바다와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쿠바의 이방인이 아니라, 진정한 쿠바인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전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입양 쿠바인’”이라고 할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그가 사랑했던 쿠바는 그를 미국으로 내쫓습니다. 미국으로 귀환한 그는 자살로 추측되는 엽총사고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고혈압, 당뇨 등 지병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일 거라고 했지만, 아바나 해변과 그곳에서 마셨던 모히토를 잊지 못하는 향수병 때문이 아닐까요. 

그를 추방한 쿠바는 묘하게도 그 덕에 관광수입을 톡톡히 올린다죠? 그가 1932년부터 1939년까지 묵었다는 암보스문도스 호텔(Hotel de Ambos Mundos) 511호, 엘 플로리디타 바와 보데기타 바, 그의 쿠바 저택이었던 핀카 비히아(헤밍웨이박물관), 그의 동상이 있는 어촌마을 코지마 등은 헤밍웨이를 기리는 사람들의 순례코스입니다. 내쫒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헤밍웨이가 그곳에 살았음을 내세우는 모양이란…. 어쨌든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줄 테죠. 모히토도 그렇고요.

모히토 한 모금을 마십니다. 민트의 청량감이 입안을 넓혀주는 듯합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관통하는 느낌이랄까요. 잘게 썬 라임 조각과 얼음이 씹히면서 눅눅했던 기분이 활짝 갭니다. 스페인 내전 참전, 아프리카 여행, 바다낚시 등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던 헤밍웨이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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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녹고 비워지는 잔을 보니 아쉬움과 함께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어도 수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 녹아버리는 얼음처럼 사라지는 법이죠. 그래도 무언가 청량한 울림을 남겼다면, 그 울림이 계속되고 있다면 행복한 삶이겠죠. ‘나는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에잇, 한 잔 더 해야겠습니다. “여기, 모히토 한 잔 추가요!”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