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찻잔 스토리텔링
[카드스토리] 카페와 비스트로

프랑스 근대혁명의 주인공이자 목격자

프랑스어로 ‘카페(café)는 커피를 뜻하기도 하고, 음료와 음식을 파는 곳으로도 불린다. 하나의 음료가 공간 이름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카페는 ‘비스트로(bistro)’로 불리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자를 양산하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프랑스의 카페는 근대 시민사회가 싹튼 곳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사상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왜 카페 하면, 프랑스일까. 프랑스 카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참고문헌>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카페의 역사》. 김주헌 옮김. 효형출판(2002)
위키미디어 https://en.wikipedia.org

이태리 청년의 안목

카드스토리1.jpg

이태리 시칠리아 출신 프란시스코 프로코피오 코텔리(Francesco Procopio dei Coltelli ; 1651~1727)는 20대 초반 새로운 사업을 위해 파리로 간다. 
레모네이드, 커피 등을 팔던 가판대의 사장 파스칼(Pascal) 밑에서 일을 배웠다. 사업이 신통치는 않자 사장은 가판대를 그에게 넘겼다. 프로코피오는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살롱(사교 공간)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점포를 구해 크리스털 샹들리에, 대리석 테이블, 벽 거울로 꾸며보자.’  

최초 카페는 목욕탕을 개조해서

카드스토리2.jpg

 

프로코피오는 생제르맹데프레에 있던 목욕탕 건물을 구입했고,
1686년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 프로코프(Café Procope)를 열었다.
카페라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 최초 카페라는 타이틀의 의미는 최초로 공간에 ‘카페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뜻이다.

사실, 그는 젤라토 기술자였다

카드스토리3.jpg
by Alessio Damato, wikimedia (CC BY-SA)

할아버지가 물려준 아이스크림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성능을 개선해 젤라토(이탈리안 아이스크림) 머신을 개발한다.
그가 파리로 온 것도 젤라또 사업을 위해서였다. 카페를 열고 처음 집중한 것은 냉음료와 젤라또였다. 커피는 그 다음에 추가했다. 
그는 ‘젤라또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젤라또를 프랑스에 처음으로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물 만난 커피

카드스토리4.jpg

 

카페 프로코프 이전에도 ‘커피 마시는 집’이 있었지만 인기가 없었다.
1643년 파리에 ‘르방탱(Levantine)’이라는 커피하우스가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커피가 전해진 남부 마르세유에서도 마찬가지.
근대 카페의 모델로서 카페 프로코프는 커피 음용문화를 프랑스에 확산시킨 장본인.
카페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의 신조어가 된다.   
 

대체 저곳에서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 건가?

카드스토리5.jpg
카페 프로코프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계몽주의자들. 손을 든 사람이 볼테르. 맨 오른쪽이 디드로

프로코프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이를 본뜬 카페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식인과 시민들은 카페에 모여 사회이슈에 대해 토론을 벌었다. 프랑스 절대왕정은 긴장했고,
카페를 감시했지만 혁명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789년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 위해 프랑스 민중들이 출발한 곳이 카페 드 발루아(Café de Valois)였다.
훗날 발자크(1799~1850)는 이렇게 카페를 정의한다.  
“카페는 민중의 의회이다.”

서민들은 비스트로에서

카드스토리6.jpg
19세기 중후반 비스트로의 풍경

카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비스트로(bistrot). 
파리의 카페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도시 서민과 농민을 겨냥해 생긴 주점이다.
동네 허름한 대폿집이었던 카바레(cabarett)가 발전된 형태. 술, 음료, 간단한 음식을 판매했고,

즉흥연주회나 무도회도 열렸다. 서민들은 이곳에서 술 마시고 떠들며 고된 심신을 달랬다. 
“요즘 농부들은 카페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견실한 농부까지 말입니다.” 
- 조르쥬 뒤비&아르망. 《프랑스 농촌의 역사》

술독에 빠진 사람들

카드스토리7.jpg
고흐의 <아를의 밤의 카페> 

19세기 비스트로에서 과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알코올 중독이 만연했다. 1877년 출간된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세태를 그렸다. 한때 아를에 머물렀던 고흐(1853~1890)는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 단골이었다.

1888년에 그곳을 그린 <아를의 밤의 카페The Night Café in Arles>에 대해 설명하기를 “나는 사람들이 파멸해가는 곳, 미쳐가는 곳, 범죄를 저지르는 곳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커피보다 압생트

카드스토리8.jpg
드가(1834∼1917)가 1876년 ‘카페 누벨 아테네(Café de la Nouvelle-Athènes)’에서 그린 <압생트>

사람들은 비스트로(카페)에서 술에 취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즐겨 마셨던 술, 압생트(absinthe). 
화가, 소설가,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도 압생트를 즐겼다. 
그러나 환각을 일으키고 중독성이 강했다.

고흐가 압생트 중독 탓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제조가 금지되었다가 1981년에서야 합법화되었다. 

형편없던 커피 맛

카드스토리9.jpg
by David, flicker (CC BY-SA)

19세기 중반, 퍼콜레이터percolator가 등장하기까지 커피 맛은 형편없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카페는 대부분 대리석 테이블, 거울, 크리스털 샹들리에 등으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져 있고 그곳을 찾는 선량한 시민들은 대화를 즐기면서 새로운 소식들을 알게 되지만,

그곳에서 제공되는 커피는 집에서 끓인 것보다 훨씬 못한 실정이다.”
- 자크 사바리 데 브륄롱. 《거래 사전》 

그래도 카페는 영감의 원천

카드스토리10.jpg
어니스트 헤밍웨이

고흐는 카페를 전전했고, 로트렉은 ‘카페 탕부랭’에서 반 고흐의 초상화를 그렸다. 에밀 졸라는 1898년 발표한 『나는 고발한다』를 카페에서 집필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부부는 카페에서 철학을 논했다. 헤밍웨이도 1921~1926년 파리에 머물렀을 때 카페에서 작품을 구상했다.

카페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밀크커피를 주문하고는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헤밍웨이(1899~1961). 《파리는 날마다 축제》

주인공이자 목격자인 당신에게

카드스토리11.jpg
by Gideon, flickr (CC BY)

“내 집에서 살고 내 집에서 사색하며 내 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 내 집에서 고통을 견디며 내 집에서 죽는 것, 우리는 그런 삶을 지루해해고 심지어 불편한 것이라 생각한다.(중략)

우리는 주인공이 되고 목격자가 되기를 좋아한다. 함께 어울릴 사람들, 우리 삶을 지켜봐줄 증인을 갖고 싶어 한다.” 
- 알프레드 델보. 《파리의 즐거움》 

글 | 손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