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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기행] 레모네이드 Lemonade

상큼하고 시원한 ‘희망 에너지’

[음료기행] 레모네이드 Lemo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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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 음료는 재료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사진은 새남F&B의 타코 ‘핑크레모네이드’로서, 레몬과 백년초 분말을 이용해 만들었다.

풀스 가든(Fool's Garden)이 부른 <Lemon Tree>와 이를 리메이크한 박혜경의 <레몬트리>는 가사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풀스 가든은 “아무 할 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너를 기다리지만 난 너무 외로워(I'm wasting my time I got nothing to do. I'm feel so lonely I'm waiting for you)” 라고 노래한다. 음은 경쾌하지만 남자 가수의 목소리는 우울하다. 이런 광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커튼이 처진 반지하 방, 술병이 이러 저리 뒹굴고 한낮인데도 방은 어둡다. 사내는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힘겹게 커튼을 연다. 햇살이 날카롭다. 사내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외롭다.

반면 박혜경의 노래는 다르다. 답답한 일상이지만 여자는 맘을 추스른다. “나의 맘을 상큼하게 할 거야.” 그러자 여자에게 놀라운 변화가 뒤따른다. 햇살은 부드럽고, 세상의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똑같은 거릴 걸어가도 난 즐거움에 빠져 버리는 그 신비함에 놀라 웃었죠.” 레몬은 눈 꼬리가 가늘어지도록 시어서 그냥 먹는 경우가 드물다. 레몬을 깨무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금세 침이 가득 고인다. 참을 수 없는 신맛 때문에 레몬은 주로 과즙을 짜서 이용한다. 생선회, 육류요리 등에 곁들여 나오는 레몬 조각은 음식의 맛을 한층 살려준다. 신맛은 다른 맛과 어우러지며 제 역할을 다하는 셈이다. 홍차와 레몬은 특히 궁합이 잘 맞는다. 홍차에 없는 비타민 C를 보충해주고 홍차의 맛과 향을 더욱 깊게 한다. 요리를 부각시키는 조연 역할에 머물던 레몬이 주연으로서 제 색깔을 드러낸 것이 바로 레모네이드(Lemonade)다.

요즘은 오렌지에이드, 핑크레모네이드, 블루베리에이드, 라즈베리에이드, 머스캣에이드 등 사용한 재료별로 에이드 종류가 다양하지만 에이드의 원조는 레모네이드이다. 에이드(Ade)는 레몬, 오렌지 등의 과즙에 설탕을 넣고, 물이나 탄산수로 희석시킨 음료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물을 넣은 것을 에이드, 탄산수를 넣은 것을 스쿼시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에이드는 여름철 음료의 대명사이지만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인기를 얻고 있다. 레몬 특유의 신맛과 찬물, 설탕이 어우러진 청량감이 몸 안의 세포를 깨워주는 느낌을 선사한다. 

 

레모네이드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한다. 버지니아 외버 울프(Virgina Euwer Wolf)가 쓴 <레모네이드 마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옥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전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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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주 가난한 여인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여인은 장님이었습니다. 여인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오렌지 한 알을 샀습니다. 집에서 굶주린 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말입니다. 오렌지를 사서 집으로 오는데, 나쁜 아이가 여인의 오렌지를 레몬과 바꿔치기 했습니다. 여인은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인은 지혜를 발휘합니다. 레몬즙에 설탕과 물을 타서 레모네이드를 만든 것이지요. 이래서 레모네이드가 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이 전설에서 레모네이드는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의지와 지혜를 상징한다. 오렌지는 희망을, 레몬은 절망을 상징한다.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번역가 김옥수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고통에 찌든 채 세상에서 도망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레모네이드 마마>는 15세 소녀 라본과 18세 미혼모 졸리가 레모네이드, 즉 희망을 품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생명은 희망이다. 라본과 졸리도 저마다 희망의 ‘오렌지’를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자라면서 오렌지는 레몬으로 바뀌었다.

레몬은 절망이다. 그냥 먹기엔 너무 시다. 고통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설은 말한다.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가난한 동네에서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라본은 대학에 가는 게 가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라고 믿는다. 라본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기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라본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18세의 미혼모 졸리이다. 일찍 부모를 여윈 졸리는 세 살짜리 아기와 간난 아기의 엄마다. 아기의 아빠는 저마다 다르다. 미혼모가 된 사연은 라본에게 했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놈이 아무 곳에서나 너를 쓰러뜨려도 임신하지 않을 것 같아?” 라본은 아이들을 돌본다. 레몬 씨앗을 화분에 심으며 큰 아이에게 말한다. “기다리고 햇볕 쪼아주고 말을 걸어야 해.” 기다림, 정성, 관심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15세 소녀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을 울린다.

아이는 늘 화분을 보며 말한다. “잘 자라라, 씨앗아.” 어린 엄마의 직장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놈이 덮쳤다.” 성추행하는 놈을 뿌리쳤지만 다음날 날아온 건 해고장이었다. 졸리는 더 이상 라본에게 돈을 지불할 수 없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잠시 빌려달라고 한다. 방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라본은 잠시 갈등하다가 단호하게 말한다. “그 돈은 도움이 안 될 거예요.” 라본은 빈민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은 돈, ‘졸리처럼 살지 않으려고’ 모아둔 돈을 빌려줄 수 없었던 것이다.  

돈을 받지 못해도 라본은 여전히 아이들을 돌본다. 자신처럼 졸리도 레모네이드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더욱이 간난 아기가 “숨을 쉴 때마다 바닥에 있던 곱슬곱슬한 먼지들이 폴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말한다. “레몬 싹이 안나.” 라본은 직장을 잃은 어린 엄마, 졸리에게 라본은 미혼모 자활학교인 ‘엄마 향상 프로그램 교실’에 다닐 것을 권한다. 졸리는 라본의 노력 덕에 미혼모 자활학교에 들어간다. 라본이 심었던 레몬 싹은? 졸리가 말한다.

“우리 집에 귀여운 녹색 식물이 생겼어. 귀여운 레몬 싹이 났거든.” 책장을 덮으며 이 책의 원전 제목이 왜 ‘Make Lemonade’인지를 알게 되었다. 막막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두 소녀의 이야기에 울컥해진다. 라본과 졸리는 오렌지 대신 쥐어진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지혜를 발휘한다. 레모네이드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것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꿈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하는 과정과 결국 꿈을 이루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작가도 50세가 넘은 나이에 등단해 주목을 받았으니 결국 레모네이드를 만든 셈이다. 1937년생인 버지니아 외버 울프는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늦은 나이인 52세에 <아마 여전히 닉 스윈슨(Probably Still Nick Swansen)>을 출간해 국제독서협회상, 서부펜클럽상을 받았다. 평소 책을 사랑했던 그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준비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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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모네이드 마우스> 포스터

미국 패트리샤 리젠 감독의 하이틴 영화 <레모네이드 마우스(Lemonade Mouth)>도 꿈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었다. 2011년 개봉된 이 영화는 다섯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우정을 나누며 밴드를 결성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레모네이드 자판기는 단순히 소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소한 잘못으로 학교 지하 벌칙방에 있게 된 다섯 명은 이 인연으로 밴드를 만들고, 벌칙방 복도에 있는 레모네이드 자판기에 힌트를 얻어 이름을 ‘레모네이드 마우스’라 짓는다.

지하에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레모네이드 자판기가 자신들의 처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자신들을 알아줄 거라 믿으며 그들은 음악적 끼를 발산한다. 뮤지컬 영화답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음악은 상큼한 레모네이드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중독성 강한 비트가 압권인 ‘Determinate’는 그 뜻처럼 ‘확실한’ 인상을 심어준다.

“내 자신을 무대에 올릴 거야. 세상을 바꿀 거야. 확실하게.” 레모네이드를 마신다. 첫 모금은 시면서도 차갑다. 조각 얼음이 입술에 닿고 설탕의 단맛이 뒤끝을 마무리한다. 목젖이 쿨럭 대며 레모네이드가 속으로 넘어간다.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캬~.” 때마침 박혜경의 <레몬트리>가 울려 퍼진다. 

“새롭게 더 예쁘게
온 세상을 상큼하게 할 거야
가슴에 가득히 내 꿈에 숨겨둔
널 위해 가꿔온 노란 빛깔 레몬트리”

레몬 건강백서

레몬의 원산지는 히말라야이지만 지중해 연안,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등에서 많이 재배된다. 1년에 6~10번 수확한다. 과육을 그대로 먹는 경우는 드물고, 과즙을 짜서 레모네이드, 식초, 과자 등의 원료로 사용한다. 껍질을 설탕에 절여 캔디, 젤리를 만들거나 케이크 장식용으로도 이용한다.  

레몬은 수소이온농도(Ph)가 3.2 정도여서 신맛이 강하다. 비타민C가 풍부해 감기예방에 좋고, 구연산도 많아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어 고혈압,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비타민C뿐 아니라 비타민A, 비타민B, 레티놀, 베타카로닌등이 함유되어 있어 피부노화 방지에도 좋다. 레몬 껍질을 잘 씻어서 발바닥이나 팔꿈치에 문지르면 각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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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