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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기행] 아이란 Ayran

요구르트의 원조, 시큼한 짠맛의 오묘함

아이란(ayran)은 튀르키에(터키) 전통음료입니다. 걸쭉한 요구르트(발효유)에 물이나 탄산수를 섞어 묽게 만든 후 소금으로 간을 맞췄습니다. 여기에 허브 등을 넣어 향을 가미하기도 하지요. 요구르트(yogurt)라는 말이 튀르키에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아이란은 ’요구르트의 원조‘라 할 만합니다.
단맛이 가미된 요구르트에 길들여져 있다면 아이란의 첫맛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릅니다. 시큼한 맛과 짠 맛이 오묘하죠. 그렇지만 마실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습니다. 순수한 맛의 끌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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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국가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죠. 튀르키에 국민들도 대체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입니다. 튀르키에는 우리나라처럼 군부 쿠데타로 여러 번 정권이 바뀐 역사가 있습니다. 1960년 1차, 1971년 2차, 1980년 3차의 쿠데타가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쿠데타가 벌어진 시기와 엇비슷합니다. 

매치니코프가 발견한 요구르트 장수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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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는 대표적인 장수식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생물학자 메치니코프(1845-1916)는 오래 전 불가리아인들이 장수하는 비결이 그들이 즐겨먹는 요구르트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요구르트에 함유된 유산균이 유해 세균 등을 먹어치워 장의 부패를 막아주어 장수하게 된다는 거였죠. 그 자신도 노년에 술, 담배를 끊고 매일 유산균 발효유를 섭취했다고 하지요. 당시 유럽인의 평균수명이 40대 후반이었는데, 그는 71세까지 살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장수한 거죠.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 아이스크림전문점을 중심으로 시간과 품을 들인 즉석 요구르트가 등장합니다. 기존 양산 요구르트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요거트’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둘 다 뜻은 같습니다. 아무튼 요거트란 이름을 달고 요구르트는 카페 음료 중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중 상당수는 요구르트를 인스턴트식품의 하나로 알고 있었지요. 편의점, 슈퍼마켓의 진열대에 놓인 요구르트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배수아의 소설 <붉은 손 클럽>에서도 주인공은 요구르트를 인스턴트식품으로 여깁니다. “인스턴트식품 외에는 먹지 않는” 주인공이 요구르트 덮밥을 소개합니다.
“나는 요구르트 덮밥을 만들어먹고 있었다. 그것은 간단하다. 쌀밥을 만든다. 냉장고에 있는 플레인 요구르트를 꺼낸다. 쌀밥 위에 플레인 요구르트를 붓는다. 자극적인 맛을 원한다면 칠리소스를 뿌려도 좋다.”  

글쎄요.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다른 인스턴트식품보다는 몸에 좋을 듯합니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주인공의 취향이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은 두 차례 동거경험이 있고, 육체관계를 자유롭게 맺습니다. 성적 취향도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내용이 다소 그로테스크하죠.
소설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때문에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일 경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그런 혼란한 느낌을 가지길 원했다고 말하더군요. “사람들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인물을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작가의 말을 곱씹어봤습니다. 그건 모호함입니다. 주인공에게 향한 감정이입을 차단하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은 거죠. ‘너라면 어떡할래’, ‘왜? 불편해?’ 하며 질문을 던진 겁니다. 처음엔 주인공을 비난하다가 질문을 궁굴려봅니다. 주인공이 왜 그랬을까? 한 대목을 다시 읽어보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문서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아주 평화롭죠. 그러나 그러한 삶은 많은 것들의 규제를 받습니다. (중략) (우리들은) 이기적이고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는 그건 세계를 원할 수는 없나.” 

생각의 숙성(熟成)에 대하여

작가가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 이유가 이게 아닐까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생각을 숙성(熟成)시키는 것 말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이렇듯 생각을 숙성시키다 보면 반복과 갈등, 충돌이 줄지 않을까요? 제도만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꿈꿔봅니다.

음식은 숙성시킬수록 몸에 좋다고 하지요. 대표적인 발효식품이 바로 요구르트입니다. 동물 젖을 발효시킨 것이죠. 아이란처럼 우리들의 생각도 숙성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란을 마시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글 | 지우람
[음료기행] 아이란 Ay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