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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공포와 카타르시스

무섭고 두렵지만 ‘카르페 디엠!’

공포와 카타르시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 자연재해, 죽음, 질병, 전쟁 등 자신을 둘러싼 현재 상황에서 수많은 공포와 대면한다. 《공포의 철학》(유서연, 동녘(2017)) 서두에서 작가는 “당신은 언제 공포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장 오래되고 강한 인간의 정서는 공포, 특히 미지에 대한 공포’라는 공상과학소설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말을 전한다. 시대에 따라 공포의 종류가 복잡해지고 대상을 바라보는 심리와 시각은 다양해졌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공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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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 아레스. 그의 아들, 포보스는 그가 살육을 할 때마다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포보스는 포비아(phobia)의 어원이 되었다.

극도의 병적 공포, 혐오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는 공포의 감정이 특정대상에 결부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증세를 나타낸다.
포비아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포보스(Phobos)에서 찾을 수 있다. 포보스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낳은 아들로, 그의 쌍둥이 형제 데이모스와 함께 아레스가 살육을 할 때마다 수행하면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목축의 신, 판(Pan)도 갑작스럽게 엄습하여 무서움을 불러온 존재로 공포, 공황,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패닉(panic)의 어원인 판은 헤르메스와 드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염소의 뿔과 염소 다리, 전신이 털로 뒤덮여 있었다. 호색가이기도 한 판은 미소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한 여름 대낮에도 목동들과 가축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곤 했다. 또 판은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해 페르시아인을 공포에 떨게 했다.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은 흔한 불안장애 중 하나다. 음식을 먹을 때 체하거나 음식을 흘리는 것,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직장에서 감독 받는 것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는 증세를 나타낸다. 여러 가지 치료법 중 인지치료는 공포를 지속시키는 두려움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좀 더 현실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내가 말을 하면 바보가 될 거야,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인지치료를 통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찮아하지 않는다면 괜찮아’라는 식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 간다.
또 다른 치료법인 노출 치료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는 방법으로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1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차 시간과 듣는 사람의 수를 증가하는 치료법이다. 이 두 치료법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상황을 해결해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자 동경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남에게 전가하고 얻는 경험의 쾌감이며, 자신이나 이웃에게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장치 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비극을 구경하면서 사람들은 연민이나 공포와 같은 감정의 적절한 효용을 배우게 되는데, 적절한 공포는 건강한 것이기에 제어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이지 몰아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영화 속 공포, 호러물에 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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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포영화인 로베르토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시대와 인간 심리를 파악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영화를 통하여 공포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에 의하면 최초의 공포영화는 1919년 로베르토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고 한다. 의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몽유병 환자를 범행과 살인에 이용한다는 영화의 줄거리는 권위에 대한 저항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히틀러의 출현을 예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은 호러(공포) 영화의 주된 범주를 세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는 비자연적인 것, 즉 흡혈귀, 유령, 악마, 마녀, 신체 호러가 해당된다. 둘째는 알프레드 히치콕 1960년 작 <사이코>처럼 심리적 공포이고, 셋째는 1974년 로브 후터 감독 작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같이 피 바다를 만드는 하드코어물이다. 호러 영화의 최초의 유형은 보이지 않는 괴물이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을 수도 있고 흡혈귀와 같이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영화가 정신 분석과 심리학을 받아들여 영화 이론은 정립한 것은 1960년대라고 한다. 그 시기에는 공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싸이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70년대는 공포영화에 상업성을 도입했으며 1980년대는 공포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 메어> 같이 등장인물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슬래셔(Slasher) 무비가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호러 물은 왜 여름철에 집중되는 걸까. 계절과 신체적 요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공포영화를 볼 때 몸은 체온이 떨어졌을 때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공포심과 긴장감을 느낀 뇌가 온몸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면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되어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근육으로 피가 쏠리며 소화기관의 활동이 줄어든다. 또 에너지 방출을 줄이기 위해 피부의 혈관을 수축시킨다. 얼굴엔 핏기가 가시며 창백해지고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근육은 수축돼 한기가 돌며 땀샘을 자극해 식은땀이 난다. 식은땀이 증발하면 몸은 더욱 서늘함을 느낀다.  

물론 공포영화의 매력은 단순히 오싹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생활에서 쌓인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로 마음속 찌꺼기로 남아있는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더 큰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때 신체 변화와 함께 짜릿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음악, 소품 등은 긴장감을 조성하며 공포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화면과 일정한 거리를 둔 관객들의 시선이다. 배우들 등 뒤를 향해 한 발자국씩 접근하는 물체보다 배우들이 곧 닥쳐올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더 큰 공포를 불러온다. 동시에 관객들은 동정이나 연민을 가지고 화면에 몰입하고, 대리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울음

세계적 알피니스트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 등반을 앞두고 울고 싶다며 공포를 토로한다. 소설가 김훈은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에서 라인홀트 메스너가 느꼈던 내면 깊숙한 근원적 공포를 표현했다. “낭가파르바트의 8천 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중략)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울음은 공포를 극복하는 자기 정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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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철학》에서 작가는 가장 두려운 공포가 뭔지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어둠에 대한 공포, 낯선 고립된 공간에서의 공포,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앞에서의 공포, 이외에도 여러분이 공포를 느끼는 여러 가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공포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아무도 동행할 수도, 그 길에 대해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완전한 고독자로 가는 길이다. 《공포의 철학》 작가는, 그래서 공포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라고 한다.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긍정적인 사고와 초연한 태도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혼자이다.
문득,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오늘을 즐기라는 뜻으로 읊었던 라틴어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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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유서연, 《공포의 철학》, 동녘(2017)
2) 게르하르트 핑크, 《후(who)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 예경(2012)
3) Edmund J. Bourne. 《불안 공황장애와 공포증 상담 워크북》, 학지사(2016)
4) 권성훈, 《시 치료의 이론과 실제》 57쪽. ㈜시그마프레스(2011)
5) 김시광.《김시광의 공포영화관》333쪽. 도서출판 장서가(2009)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