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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기억의 필름에 세긴 공간

서촌(西村) 기행

[부치지 못한 편지] 기억의 필름에 세긴 공간.

당신은 유독 지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복궁의 서쪽 지역을 흔히 서촌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에 당신은 반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지요. 붕당의 영수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당쟁이 세력화하던 과정을 이야기하며 흥분한 적도 있었지요. 서촌이라는 이름에도 봉건적 신분 사회의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서촌의 이름이 결코 서민들의 삶을 중시했던 이름이 아니라는 말을 구두소리처럼 또각또각 내던 당신의 목소리가 새삼스레 듣고 싶어집니다. 당신과 제가 서촌을 걸었던 때는 지금처럼 한옥마을로 새롭게 정비되고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기 이전의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주말 나들이할 곳으로 알려지기 이전이었지요. 세검정을 거쳐 부암동에서부터 이곳 경복궁 근처 통인동까지, 당신과 산책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중심과 주변, 안과 밖을 구분해 차별화하려는 경계 의식의 결과가 서촌이었다고 하던, 당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당신이 없는 이 길을 혼자 걷습니다. 짧은 서촌 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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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골목으로 사람을 이끕니다.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서촌길은 시간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이 거의 바뀌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통인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맞닥뜨린 골목은 시간을 거슬러 타임슬립을 경험하는 듯했습니다. 그곳의 골목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있었고, 여전히 당신의 흔적과 기억이 일정하게 존재했습니다. 골목은 사람을 고스란히 정지시켜 놓고서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슬며시 부는 바람을 따라 골목을 빠져나오면 길은 또 길로 발걸음을 잇게 하고 골목은 또 한참을 사람을 붙들어놓고 옛이야기를 한동안 합니다.  

통인동 거리 정자에 잠시 앉아 거리를 둘러봅니다.

가끔 드는 생각입니다만 당신과의 추억은 별안간 내리는 소나기 같은 것입니다. 여름비는 너무 길어 힘들고, 봄비는 저를 위해 내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당신을 기억하는 일은 그저, 딱 그만큼만의 시간으로 내리치는 소나기입니다. 힘들면 어디론가 뛰어가 피할 수도 있으니까요. 망연히 서 있다 피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소나기를 맞았구나,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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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때로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 됩니다. 

구기동 육교에서 바라보던 초등학교의 깃발,
부암동 고갯길 구멍가게에서 나눠먹던 아이스크림,
홍지문의 작은 돌의자,
세검정 터,
석파정 별당 기슭을 오르면 언제나 그늘을 내주던 650년을 살았다는 천세송,
<자하슈퍼>의 빛바랜 노란색의 평상,
청운중학교 가는 길로 내려다 보이는 붉은 지붕이 연속되던 주택가들,
통인시장 안에서 땀 흘리며 먹던 떡볶이,
구름빵이 참 맛있던 빵가게와 그 앞의 작은 커피점.
……
그 시간을 저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산책은 공간을 걸으며 꿈을 꾸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결핍된 그 무엇은 어떤 대상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죠. 그 ‘무엇’이 우리를 꿈꾸게 합니다. 당신이 제게 꿈을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망하는 간절한 일을 생각하고 물었을 겁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봐야 소용없겠지만, 저는 그때 다른 의미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현실의 무게감과 채워지지 않는 젊음의 허기가 왠지 세상을 삐딱하게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는 동안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꿈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망함이란 이런 것이겠죠. 들어줄 사람은 없는데 말하는 사람만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오래된 골목에도 변화가 느껴집니다.

서촌은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자그마한 한옥을 손보거나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커피를 팔고 있는 카페에 들어섰을 때 손님 모두가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을 깨우는 건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된 공간에 이십대 청년들이 앉아 있는 모습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집을 못 구한 젊은 세대는 오히려 도심의 밖으로 밀려나가고 기성세대는 도심에 자리 잡는 요즘을 생각하면 이 공간은 뒤바뀐 느낌입니다. 오래된 집에 젊은이들이 있는 모습은 참 낯설더군요. 카페와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젊은 세대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의 장소에 대한 애착은 시간이 결정하기도 하지만 사회 구조가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서촌은 그렇게 익숙한 빵 안에 새로운 재료가 들어가듯,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세대의 시간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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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가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면 수성계곡이 나옵니다.

당신과 이곳을 처음 왔을 때 물길이 흐르고 있던 곳이 지금은 계곡 바닥이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마른장마가 이어진 탓인지 계곡은 아직도 물길이 힘차게 흐를 여름을 준비 중입니다. 인왕산 기슭과 이어진 이 계곡은 세종이 아들 안평대군에게 지어준 집이 있던 곳이지요. 그 사궁의 이름이 수성궁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운영전》의 슬픔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안평대군의 궁녀였던 운영의 비극적 사랑은 이곳에서 몇백 년을 가감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수성궁이 이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신은 운영의 사랑을 말하며,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은 진정한 비극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소설이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사랑의 실패 또한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결정으로 매듭지어야 한다고도 말했죠.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없었던 신분의 궁녀 운영은 봉건 시대의 희생된 인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제한된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운영의 사랑과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이었던 것이죠. 수성계곡은 안평대군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수성계곡은 운영의 운명적 절규가 계곡물을 따라 흐르는 곳으로 기억될 겁니다.
당신이 없는 산책은 여기에 짧은 기행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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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형석